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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의 설명

만주군 출신 일본인들의 모임인 난성회(蘭星會)가 1970년 간행한 『만주국군(滿洲國軍)』의 김일성 사살 기록. 전사한 김일성을 6사장 아닌 제2방면군장이라 칭하는 것은 오류이다.

討伐指導区域を二地区に分けた。
  1. 臨撫地区 撫松、臨江、濛江
  2. その他の地区

主要作戦地区は臨撫地区であって、各部隊は相互に連繫をとり、包囲攻撃を加え、各地において激戰を交えたけれども、嚴冬の深雪と密林に阻まれ、完全に敵を捕捉するてとができなかった。却って第二方面軍司令金日成の機動力と巧妙なラワ戰のため我が討伐隊はしばしば敗戰の苦杯をなめ、優秀な日系軍官を初め多くの死傷者を出した。
十二年十一月十三日歩兵第七団は金司令を射殺した、当時金司令は金日成と信じられ込・関東軍司令官と、治安部大臣より賞詞と賞金を受けたがみのぢ再度金日成が出現するに及んで、その眞相は、例えは 金司令は金日成であったのか、陰武者であったのか、それとも金々別人だったのか等ついて分らないままてある。

토벌 지도(指導) 구역을 두 지구로 나누었다.

  1. 임무(臨撫)지구 무송현(撫松縣), 임강현(臨江縣), 몽강현(濛江縣)
  2. 기타 지구

주요 작전지구는 임무(臨撫)지구로 각 부대는 서로 연계를 맺고 포위공격을 가하며 각지에서 격전을 벌였지만 엄동(嚴冬)의 심설(深雪)과 밀림에 막혀 완전히 적을 포착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제2방면군사령 김일성의 기동력과 교묘한 라와전(ラワ戰, лава戰)[1][2] 때문에 우리 토벌대는 종종 패전의 쓴잔을 마셨고 우수한 일본계 군관을 비롯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쇼와(昭和)] 12년(1937년) 11월 13일 보병 제7단은 김사령(金司令)을 사살했다. 당시 김사령은 김일성으로 믿어져 관동군 사령관과 치안부 장관으로부터 상사(賞詞)와 상금을 받은 뒤 다시 김일성이 출현함에 따라, 그 진상은 비록 김사령은 김일성이었는지, 카게무샤(陰武者)[3]였는지, 아니면 두 김씨가 별개의 다른 사람(金々別人)이었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없게 되었다.

김일성 기록의 오른편에 제2군 군장(軍長) 왕덕태(王德泰)가 1936년 11월 7일 무송현(撫松縣)에서 만주군 기병 제7단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나온다. 주수동(周樹東)이 대군장(代軍長)이 되었다가 이듬해 1937년 4월 24일 안도현(安圖縣)에서 사살되었다고 하였다. 왕덕태 전사 후 2군의 군장대리가 된 사람은 주수동 아닌 위증민(魏拯民, 1909~1941)이다. 주수동은 1936년 9월 30일 일본 측에 투항한 안봉학(安鳳學, 1909~1937)의 후임으로 2군 1사장(4사장)이 되었다가 이때 죽었다.

蘭星會編, 『滿洲國軍』 (東京, 滿洲國軍刊行會, 1970) p. 350 (국회도서관)

각주

  1. ラワ戦法 /フォーメーションに関する覚書 戦史の探求 블로그 August 09, 2020
  2. Лава (военное дело) Википедии
  3. 카게무샤(陰武者, かげむしゃ) : 대역(代役); 影武者(かげむしゃ)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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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2년 11월 14일 (월) 18:20983 × 822 (389 KB)JohnDoe (토론 | 기여)만주군 출신 일본인들의 모임인 난성회(蘭星會)가 1970년 간행한 『만주국군(滿洲國軍)』늬 김일성 사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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