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가초프(Pugachev, 정식명칭 Emelyan Pugachev, Емелья́н Пугачёв)」호(號)는 소련의 군용 화물선으로, 8.15 해방 직후 소련군 88여단의 진지첸 대위(김일성) 일행이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할 때 타고 온 배이다.[1][2][3][4][5]
원래 1943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에서 건조하여 소련에 임대한 배이다.[7] 미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미국이 건조한 배를 탔다는 것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개요
이 배는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오리건 조선회사에서 Louis Agassiz 라는 이름으로 1943년 3월 23일 건조를 시작하여 20여일 후인 4월 13일에 건조 완료되었으며, Emilian Pugachev라는 이름으로 4월 21일에 소련에 인도되었다.[7]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화물선 다수가 독일의 어뢰와 U보트에 의해 침몰 당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규격화하여 양산한 모듈들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속성으로 건조하던 Liberty Ship[8] 중의 하나였다.
건조할 당시의 처음 이름은 Louis Agassiz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쿠바로 출동하였다.[9] 1977년 폐선되었다.[7]
- 배의 이름은 러시아 농민반란 지도자 Yemelyan Ivanovich Pugachev (Russian: Емелья́н Ива́нович Пугачёв; c. 1742 – 1775)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이 건조한 배가 소련으로 인도된 배경
미국은 2차대전 중 1941년 3월 11일 발효된 무기대여법(Lend-Lease)[10]에 따라 유럽의 연합국과 소련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 대소 지원 물자 수송 경로는 크게 북극해(Arctic Convoys), 페르시아만 회랑(Persian Corridor) 및 태평양 수송로(Pacific Route) 3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통해서는 일본 북쪽으로 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갔다. 일본이 태평양 루트의 전쟁물자 운송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1941년 4월 체결된 일소중립조약[11] 때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소련 배를 공격해서는 안 되나 무기를 실었을 경우는 검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경로로는 무기가 아닌 다른 군수물자들이 주로 지원되었다.
푸가초프호는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미국이 속성으로 건조했던 Liberty Ship의 하나로 일소중립조약에 의해 일본의 저지를 받지않고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배가 소련국적이라야했으므로 소련으로 임차된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중에는 미국의 대소 지원물자를 실어날랐고, 종전 후에도 소련에 매각된 것인지 양여된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소련이 계속 사용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전쟁물자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은 독일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 했고[12], 1945년 8월 일소중립조약을 파기하고 대일본전을 벌일 형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
- 무기대여법의 손익계산서 서울경제 2016-03-11
- Lend-Lease wikipedia
- Pacific Route wikipedia
- World War II Allies: U.S. Lend-Lease to the Soviet Union, 1941-1945 주소 미대사관 자료
- 'We Would Have Lost': Did U.S. Lend-Lease Aid Tip The Balance In Soviet Fight Against Nazi Germany?
-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로 향하던 소련군 화물선 Pugachev호가 10월 20일 LA 서편에서 포착되었다.[9]
김일성이 푸가초프호로 원산에 입항할 당시 모습
- [Why]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조선일보 2009.06.20
- 고려인으로 北문화선정성 차관 지낸 정상진(鄭尙進)씨 증언
그는 김일성의 귀국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1945년 9월 19일 추석날 오전 8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해군함 '푸가초프'를 타고 원산항에 왔어요. 나와 원산시 인민위 부위원장 태성수, 시 공산당 조직부장 한일무, 시 상공부장 박병석 4명은 소련군 25군 정치부의 명령을 받고 마중 나갔지요. 저는 당시 시 인민위 문화부장으로 정율(鄭律)이란 이름으로 불렸지요."
정씨는 놀랍게도 '김일성'이 없었다고 했다. '푸가초프' 함에서 내린 일행은 김성주와 부대원, 유성철을 비롯한 고려인 등 10여명이었다. 정씨가 선두에서 서서 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을 접견하자 그는 '김성주입니다' 하고 악수를 청해왔다는 것이다.
"정치부에 '김일성이란 자는 없다'고 하자 '김성주가 있더냐'고 물어요. '예'라고 했더니 '바로 그자가 김일성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33살에 붉은 군대 장교 복에 카피탄(대위) 계급장을 달고 적기 훈장을 달고 내린 자가 김일성이라니…."
-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 元山(원산)까지 수송" : 45년 당시 蘇(소)해군중위 니주니코프 證言(증언) 1992.08.30 동아일보 4면
북한의 원산항에 보존되어 있나?
푸가초프호는 폐선 후 "개선호(凱旋號)"로 명명되어 북한의 원산항에 보존되어 있다는 설이 있으나 검색에서 잘 확인이 안 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조선으로 쳐들어와 일본을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므로, 그가 원산으로 타고 온 소련 배를 자랑스레 주민들에게 내보일 상황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 [특별기획연재] 극동러시아 및 만주지역 한국독립운동사 재조명 (2) 경기매일 2018.09.26
- 광복 후 김일성은 언제 어떻게 귀환했나 다음 카페 "DJ없는 세상을 위하여" 2003.02.08
당시 이들이 탔던 배는 푸가초프라는 이름이 붙은 군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배는 미국이 건조한 3000t급 트롤선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에 의거해 소련에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배를 넘겨받은 소련 극동선박국은 여제 에카테리나 2세에 의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처형된 18세기의 유명한 농민반란 지도자 예멜란 푸가초프(Emelyan Ivanovich Pugachyov)의 이름을 빌려 이 배를 푸가초프호로 명명했습니다. 폐기 처분을 기다리던 푸가초프호는 공교롭게도 김일성 일행을 태워 나르면서 한낱 고물선에서 일약 '역사적 존재'가 되었고, 현재 원산 앞바다에 정박해 사적선박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개선호'라는 거창한 새 이름까지 부여받고 말이죠.이 배가 원산에 보존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있다고 해도 김일성 우상화 교육 재료로 쓰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배를 타고 귀국했다는 것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북한으로 진격해 해방시켰다는 날조한 주장과 명백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08.26 종합 5면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5년 8월9일 드디어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및 병사들에게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해방을 실현시키는데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
조선인민군혁명군대는 일제 관동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면서 장춘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많은 지역을 해방시키고 진격을 계속해 적들의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했던 웅산만 고개의 방어시설들을 돌파하고 웅기·나진·남양 등을 해방하고 청진방면에 대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조선인민해방군은 지상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더불어 청진·나남·원산일대를 해방하고 공격의 성과를 남쪽으로 확대했다.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도처에서 정예를 자랑하던 일제의 조선 주둔군을 격멸,소탕하면서 진격해 드디어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반세기에 미치는 오랜 일제 식민지 통치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원산의 입항 장소를 1976년 개선동(凱旋洞)으로 개명
북한의 원산시에 개선동(凱旋洞)이 있는데, 원래의 철산 1동을 1976년에 개명한 것이다.[13][14] 이곳이 김일성이 푸가초프호를 타고 입항한 곳이다.
- 원산시 개선동(凱旋洞) : 구글지도
- 원산시 개선동(凱旋洞) : 구글 위성사진
참고 자료
- EMELYAN PUGACHEV, IMO 5103106 balticshipping.com
- EMELIAN PUGACHEV - IMO 5103106 - Ship Photos and Ship Tracker
- Liberty ship launched as LOUIS AGASSIZ transferred to Russia as EMELIAN PUGACHEV 21.4.1943 / Oregon Shpbuilding, Portland OR, Yard # 665
- 665 Louis Agassiz EC2-S-C1 1624 9 24-Mar-43 13-Apr-43 21-Apr-43 20 8 28 To Russia 1943 as Emilian Pugachev, scrapped 1977
- EMELYAN PUGACHEV (IMO 5103106) - General Cargo Vessel Tracking
- 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 Wikipedia
- Liberty Ships built by 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 Portland, Oregon and by Kaiser - Vancouver, Vancouver, Washington for U. S. Maritime Commission 1941-1945
- Tracking Soviet Ships: October 23, 1962 » The Fourteenth Day Emelyan Pugachev : 1962년 가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출동
- Liberty ship - Wikipedia
- 화물선이 어떻게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나? : 리버티 쉽 이야기 Mustard 2017. 11. 14.
다른 푸가초프호
1919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Toledo, Ohio)에서 건조된 Lake Festina호는 1929년 소련에 팔려 Samoied로 개명되었고, 1945년 Pugachev로 다시 개명되었다가 1960년 폐선되었다고 한다.
- Lake Festina (1919) built by American Shipbuilding Co., Toledo Built for United States Shipping Board, | 1921 assigned to Export Steamship Corp., 1929 sold to Russia renamed Samoied, 1945 renamed Pugachev 1960 deleted from Lloyds Register.
- Lake Festina : Later Samoyed 1930, Pugachev 1945, scrapped 1960.
- Historical Collections of the Great Lakes / Vessels / LAKE FESTINA / PUGACHEV
- Steel Shipbuilding Under the US Shipping Board, 1917~1921 - Shipscribe
- p.5: LAKE FESTINA, yard no 157, compl 1919 as O/N 218330. (USSB 19-29)/ SAMOIED (USSR, 29-45)/ PUGACHEV (USSR 45- )/ Presumed S.E.
각주
- ↑ 歷史(역사)는 흐른다 韓民族(한민족)의 同質性(동질성) 回復(회복) 캠페인 <47> 韓国(한국)전쟁 ⑮ -「金日成(김일성)부대」활동 시작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商船(상선)타고 入北(입북) 1986.04.23 조선일보 5면
- ↑ 김일성 대일 해방전 참가 못했다(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 중앙일보 1991. 8. 26 종합5면
- ↑ [Why] "나도 북침인 줄 알고 6·25 참전했어" - 조선닷컴 2009/06/19
- ↑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pp.18~19 / 피 와 눈물 로써 씨여진 [i.e. 쓰여진] 우리들 의 력사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미의회도서관
- ↑ "「蘇軍(소군)대위 金日成(김일성)」元山(원산)까지 수송" 45년 당시 蘇(소)해군중위 니주니코프 證言(증언) 1992.08.30 동아일보 4면
- ↑ EMELIAN PUGACHEV - IMO 5103106 - Ship Photos and Ship Tracker
- ↑ 7.0 7.1 7.2 Oregon Shipbuilding, Portland OR : 665 Louis Agassiz - Delivered to Russia 1943 as Emilian Pugachev, scrapped 1977
- ↑ Liberty ship Wikipedia
- ↑ 9.0 9.1 Tracking Soviet Ships: October 23, 1962 » The Fourteenth Day Emelyan Pugachev : 1962년 가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출동
- ↑ 무기대여법(Lend-Lease, 1940년 - 1945년) 위키백과
- ↑ 소련-일본 중립 조약 - 위키백과
- ↑ 12.0 12.1 'We Would Have Lost': Did U.S. Lend-Lease Aid Tip The Balance In Soviet Fight Against Nazi Germany?
- ↑ 강원도 원산시 개요 북한지역정보넷
- ↑ 개선동(원산)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