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3대황제다. 이름은 아이신기오르 푸린 한자로는 애신각라 복림.


순치제 때 청은 중원으로 들어와 중국전역을 재패했다.


아버지인 청태종 홍타이지가 죽고 원래는 도르곤이나 홍타이지의 장남인 호오거가 서로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대립하다.


순치제가 옹립되었다. 순치제는 5살의 나이로 즉위했고 홍타이지가 섭정을 했는데


황제는 너무 어렸고 홍타이지가 실권을 다 가지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정식즉위만 황제가 아닐뿐 본인이 옥새까지도 가지고 있었을 정도. 사실상 황제는 홍타이지나 마찬가지였다.


야사에서는 순치제의 어머니인 효장문황후와 홍타이지 결혼했다는 설(유목문화에서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재산을 유지하는 전통이 있기도 했다.)도 있는데 이걸 채용하는 대중문화 매체도 많다.

순치제는 어머니인 효장문황후와 여러 갈등이 있었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도르곤은 7년 섭정을 하고 죽었고 12살 때부터 순치제는 친정을 시작했다.


순치제는 이후 죽은 홍타이지 격하하고 부관참시한다.

어머니도 몽골쪽이었고, 원래 청나라에서는 몽골족 과의 관계를 중요시해 몽골족의 여자들과 청나라 황제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순치제는 몽골족의 여자들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고, 순치제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현비 동오씨(이하 동악비)였다.


동악비는 사실상 황후나 마찬가지에 지휘였다. 원래 황귀비는 죽은 비빈에게 수여하는 작위인데 동악비는 살아 있을 때 황귀비에 지휘를 얻었다. 순치제는 동악비를 황후로 하려고 했지만 이건 신하들이 궁중의 법도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여 황후가 되지는 못했지만,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 했기에 사실상 황후나 마찬가지 지휘를 가졌다.

동악비가 아들을 낳자 순치제는 황태자로 임명하려고 까지 했다. 순치제와 동악비 사이에 아들은 매우 어린나이에 요절했다.

동악비가 젊은 나이에 죽자 순치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동악비가 죽은 이후 채 반년도 살지 못하고 그 역시 젊은 나이(23세)에 천연두로 죽었다


야사에서는 죽지 않고 황제의 지휘를 버리고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이 설을 채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동악비가 궁에 들어온 나이가 굉장히 늦은 편이다. 원래 청나라에서는 수녀제도라고 귀족에 해당하는 팔기에 여식들은 특정 나이까지 결혼을 허용하지 않고 먼저 청황실의 비빈이나 궁녀로서 선발 시험에 참가하고(결격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여기서 떨어져야 비로소 다른 남자와 결혼이 허가 되는데


동악비가 궁에 들어온 건 수녀제도의 나이를 훨씬 넘긴 나이다.(수녀 대상의 나이 13~16세, 동악비가 입궁한 나이 18세) 그래서 현비 동오씨는 순치제의 이복형제와 결혼을 했는데

순치제와 동악비와 사랑에 빠져 ntr 이복형제(박복박과이)의 부인인 동악비를 뺏어왔다는 설도 있다.


혹자는 동악비가 한족이라는 데 그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동오씨는 만주족 명문가다) 다만 한족의 소양을 가졌었고, 그것이 순치제의 총애를 받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설은 있다.


하여간 이런 로맨스가 있어서 순치제가 나오는 사극에서는 동악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기록을 보면 굉장히 다혈질 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