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냉전, 인도차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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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당시의 월남과 월맹
기본 정보
날짜 1955년 11월 1일 ~ 1975년 4월 30일
장소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결과 베트남의 승리
교전국
베트남 공화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한민국
중화민국
라오스 왕국
캄보디아
크메르 공화국 (1970-)
태국

필리핀
베트남 민주공화국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라오스 파테트 라오
북한
중국

소련
피해 규모
베트남 국기.png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북베트남 & 베트콩
  • 민간인 65,000명 사망
  • 군인 444,000명–1,100,000명 전사, 실종
  • 군인 600,000명 이상 부상

중국 국기.jpg 중화인민공화국

  • 1,100명 이하 전사
  • 4,200명 부상

북한 국기.png 북한

  • 14명 전사

전체 전사자:
510,114명–남베트남
전체 부상자:

604,200명 이하

베트남 민간인 사망: 627,000명–2,000,000명
베트남인 총 사망 : 966,000명–3,812,000명
캄보디아 내전 사망: 240,000명–300,000명
라오스 내전 사망: 20,000명–62,000명
해외군 사망: 65,425명

총 전사자: 1,291,425명–4,211,451명

월남전쟁은 1956~1975년까지 월남민주공화국(북월, 월맹)이 월남공화국(남월, 월남)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이다. 제2차 인도지나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함께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군대가 남월에 파병되어 북월과 싸웠지만 북월을 지원하던 소련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제한적인 작전만을 펼칠 수 밖에 없었고, 남월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조직인 베트콩들에 의해 고전하게 된다. 결국 미국에서 크게 일어난 반전운동과 여론에 밀려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고, 미국의 군사적 명성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 미군의 철수 이후 남월은 고전하다가 북월에게 패망하였다.

한국군이 미군에 합세해 파병된 전쟁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이어 대한민국이 경험한 대규모전쟁이다. 이전의 한국전쟁이 자국에서의 전쟁이었다면, 대규모원정, 파병은 월남전이 시초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썼던 명칭은 월남(越南戰)이며 지금도 국군에서 만든 자료에서 월남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물에서는 M16을 든 미군 병사가 UH-1 헬리콥터를 타고와 정글 속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이미지로 대표되고 있다.

전면전쟁이라기 보다는 전쟁의 대부분은 자유월남에서 호치민 루트를 통해 베트콩들이 벌인 게릴라전을 진압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그렇기에 지리산 빨치산을 진압했던 경험이 있던 한국군이 그 경험을 살릴 수 있었어 선전한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월남이 패망하는 건 파리 강화 이후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 한 이후에 대대적으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쳐들어간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베트남전쟁 이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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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날짜를 알 수 없는 이 사진은 북한 조종사들이 북베트남 공군 사령부의 정치위원이었던 판 카치 히(Phan Khac Hy) 소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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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6일 전쟁 참전 용사인 두옹 반 다우(Duong Van Dau)가 북한 조종사 전사자 추모비를 걸어가고 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북한 조종사 14명의 유해는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위치한 유일한 외국인 전쟁 영웅 묘지에 묻힌 뒤 북한의 요청으로 2002년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북한도 공군 위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월맹의 요청이 아니라 공군 조종사들의 실전 경험 습득과 파월 한국군에 대한 정보 습득 등 북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 참전을 요청하여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패망의 원인

월남의 패망의 원인은 여러 요인을 이야기할 수 있다. 월남은 북월(월맹)보다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앞서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북월의 무수히 많은 간첩들이 월남에 들어와서 사회 곳곳을 장악하였고,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하였으며 여기에 선동당한 국민들이 있었다.

미군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월남을 지원하며 그들과 같이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월남군은 베트콩만 만나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망했고 무기를 팔아먹는 일까지 하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부정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높은 세금으로 농민들의 민심을 드끓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나며 국민들은 정부에 등을 돌렸고, 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시위가 지속되었다. 심지어 월남의 전투기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월맹으로 도주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월맹에 의해서 통일이 된 이후 좌파 지식인들은 월맹 공산당의 숙청의 대상1순위로 정신교육대(?)에 교육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정신교육을 받으며 숨을 거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21년 한국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계, 종교계, 전교조, 민주노총, 문화계, 체육계 등에 모든 곳을 장악한 좌파 세력들은 그들이 원하는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첫번째 정신교육 대상 1순위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관련 자료

월남 내부에서 여론을 뒤흔들던 반체제 인사들이 적화통일 후 ‘완장’을 얻기는커녕 누구보다도 먼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되었다.

월남 패망의 1등공신이었던 쭝딘쥬 역시 공산당에 의해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된다. 쭝딘쥬는 그곳에서 하루 100g 가량의 배급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1980년 중반에 사망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배신당한 통일운동가의 비참한 말로이다.

反美 폭력시위·反共인사 암살
월맹軍 남침 순간 평화협정 휴지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