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소중화 의식(小中華 意識)은 조선이 중화 문명(中華文明)에 비등한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거나, 명나라 멸망 후 청나라를 배척하며 조선이 중화 문명과 성리학적 세계관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지식인들의 의식을 표현한 말이다.

일본천황제를 중심으로 화이론에 입각한 정치를 하기는 하나 섬나라 특유의 중화주의라 보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역사

예전부터 사대주의는 있어왔으나 병자호란이후 만주족에 의해 대패하고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고 그것에 비해 조선성리학을 유지하고 있는 문명국이라는 소중화 인식이 본격적으로 생겼다.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서 만연한 풍토였으며 그나마 정약용등이 배울거는 배우자는 주의였다. 물론 이들도 유교를 바탕으로 한다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고는 단절된 계보 주나라부터 이어지는 한,당, 송, 명 등의 계보가 조선에서 이어진다는 식의 사고로 발전한다. 대한제국도 이런 사고에 기인해서 만들어진 것.


영조가 조선통신사에서 일본에 갈 때 가장 강조한 게 임진왜란 때 조선왕 묘가 털린 원한을 잊지 말라는 것과 일본에서도 소중화의 기치를 마음 껏 펼치라는 것이었다. 일본 지식인들은 이미 망한지 오래인 명나라를 섬기고, 왜 일본인들이 망한 명나라 황제 이름을 피휘하지 않느냐는 조선통신사의 이야기를 황당해 했다.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라서 청나라 연호를 써야 되는데 명마지막 황제 숭정이나 남명의 황제의 연호를 계속 쓴다는지 요딴 짓도 했다. 숭정 백몇년 이런식으로 연호를 쓴 것.


원래 명나라 때는 중국 황제를 알현하고 조공을 바치러 베이징에 가는 걸 조천(하늘을 알현한다)사라 불렀는데, 청나라가 되서는 이걸 연행사라고 불렀다. 같은 베이징도 청나라의 수도이니 조천에서 연경으로 격하해서 부른 것.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도 연행사에 동행한 것이다. 베이징에 갔는데 건륭제는 정작 황제의 여름 피서 별장인 열하에 있어서 베이징에서 열하까지 또 간다.

사례

인물

  • 노무현 - 노무현 대통령은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1]
  • 송시열 - 조선 사상의 대부 답게 자기묘에 명나라 황제의 신하라는 내용을 넣었다. 물론 이 사람은 숙종 때 명나라가 망하고 한참 뒤에 죽었다.

사례

  • 안미경중 - 미국은 지는 해고 중국은 뜨는 해라는 해괴한 논리와 함께 같이 주장된다.

링크도배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나?

함께 보기


각주

  1. 노무현 대통령은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좌파들이 가장 존경하는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보면 그들 모두는 모택동주의자였다. 중국인이 직면했던 노예와 같은 삶과 집단처형과 학살 같은 사실은 보지 않고 존경을 표하고 모델로 삼겠다는 것이 바로 시대착오의 전형이자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