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륜(吳成崙, 1902[3] ~ 1947 ?)은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투사이다. 중국명은 마천일(馬天一)[4]이며,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할 때는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을 썼다.[5] 항일연군에서는 1로군 사령부 군수처장(軍需處長)과 비서처장(秘書處長)을 지냈으며, 같은 1로군 소속이었던 6사장 김일성이나, 북한 김일성의 상관이었다.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 투항했다.[6]
생애
- 오성륜(吳成崙, 1900 ~ 194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오성륜(吳成崙, 1900 ~ 1947) 두산백과
- 오성륜(吳成崙, 1898년 ~ 1947년) - 위키백과
- 오성륜(吳成崙, 1898년생) 용의조선인명부 p.134
- 國外に於ケル容疑朝鮮人名簿 / 朝鮮總督府警務局 編 京城 : 行政學會, 昭和9[1934] (한국학도서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생년
오성륜의 생년을 알만한 당시 기록은 아래 3가지가 보이는데, 약간씩 차이가 있다.
- 1922년 3월 상해 거사 당시 매일신보에 23세라 하였다.[7] : 1900년생
- 용의조선인명부 p.134에 1898년생으로 나온다.[8]
- 1941년 1월 30일 일제에 투항한 후 찍은 사진에 39세로 적혀 있다.[9] : 1902년생
위 3가지 기록 중에서 본인이 직접 진술한 나이로 보이는 3번 기록이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보인다.
행적
-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김익상(金益相, 1895~1941)[11]과 함께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실패 후 체포됨.[12]
- 거사 때 발사된 유탄에 맞아 미국인 스나이더 부인이 사망함.[13]
- 황포탄의거(黃浦灘義擧)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922년 5월 2일 탈옥하여 도주함.[14]
-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30년 만주의 요녕성(遼寧省) 청원현(淸源縣)에서 공산주의 선전 활동. 당시 그의 처(妻)는 26세의 중국인 두씨(杜氏)라고 함.[15]
- 이후 만주에서 중국공산당과 연계하여 주로 활동.
- 1936년 재만한인조국광복회 발기인
- 발기인은 오성륜(吳成崙), 엄수명(嚴洙明), 이상준(李相俊) 3인이다.
- 1930년대 후반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으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
- 동북항일연군 1로군 사령부 군수처장(軍需處長)과 비서처장(秘書處長)[16]
-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다 1941년 1월 30일 투항, 귀순함.[6][17]
- 귀순 후 그의 말년 행적은 분명치 않다.
기사
The China Press의 다나카 저격 사건 기사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일어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육군대장 암살기도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튿날 3월 29일자 The China Press 에 실렸다.[18] 이 사건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으로 보인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영문 기사 한국어 번역문이며, [펼치기]를 택해 볼 수 있다. 부정확한 번역도 보이므로 원문 참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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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장군 田中義一 폭탄세례, 광신자들의 표적. ° 한국인 해안에서 광분, 미국여인 살해. ![]() 1922년 3월 28일 오성륜 등의 田中대장 저격 때 유탄에 맞아 피살된 미국인 스나이더(W. J. Snyder) 부인.[13] 인디아나(Indiana)州의 브라질(Brazil)[19]에서 온 스나이더(W. J. Snyder)란 한 외국인 부인이 죽고 톰슨씨(H. A. Thompson)가 중상을 당했으며 한명의 경찰을 포함한 세명의 중국인이 경악스런 총격의 소란속에서 부상당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어제 오후 세관에서 일본 전 국방상인 남작 田中대장을 살해하려고 두명의 한국인이 저지른 것이다. 이 총격은 마닐라의 총독 우드(Wood)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상해에 기착한 田中남작과 그의 참모들이 파인 트리 스테이트(Pine Tree State)호 기선에서 거룻배로 항구에 도착하는 순간 발생하였다. 같은 배에 탓던 스나이더 부인은 남편과 세계여행 중이었으며 이틀간 상해에서 쇼핑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살인자들이 총을 발사 할 때 막 세관검사건물을 나오는 중이었으며 가슴에 세발의 총을 맞았다. 즉시 애스터 하우스(Astor House) 화물트럭으로 병원에 옮겨 응급실로 갔으나 몇분만에 숨지고 말았다. 다른 피해자들은 시내에서 광신자들의 총탄에 부상하였으나 결국 두명을 체포하였다. 폭탄은 불발 스나이더 부부는 여행중 다른 한국인들의 체포 ― The China Press 1922년 3월 2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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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문 기사
- 田中大將(전중대장)에게 爆彈(폭탄) 1922.03.30 동아일보 3면
- 狙擊當時(저격당시)의 光景(광경) 1922.03.31 동아일보 3면
- 昨秋京城某事件(작추경성모사건)의 범인도 자긔라하는 김익상. 뎐즁대장 암살범 삼명 인도 將次 長崎裁判所(장차장기재판소)로 護送(호송) 1922.04.01 동아일보 7면
- 金益湘 自白(김익상 자백)은 事實(사실) 1922.04.05 동아일보 3면
- 사진: 상해에서 전중 대장에게 폭탄던진 조선인, (右) 吳成崙(23), (左) 金益相(29)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4월 07일 3면 9단
- 상해에서 뎐중대장을 저격한 김익상(상)과 오상륜(하) 동아일보 1922년 04월 07일 3면 1단
-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
- 氣熖萬丈(기염만장)의 金益相(김익상) 1922.05.09 동아일보 3면
- 總督府爆彈犯(총독부폭탄범)은 上海(상해)의爆彈犯金益相(폭탄범김익상) 1922.05.20 동아일보 3면
- 脫獄 共犯者 田村 逮捕, 오성륜이도 불원 체포?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2일
- 脫獄 田村의 自白, 오성륜과는 항주에서 길을 나눠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3일
-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
- 千號壹覽(천호일람) (續(속)) 1923.06.06 조선일보 7면
- 571 (1922년 3월) 30일 상해에서 전중대장(田中大將)에게 폭탄을 투(投)하다.
- 607 (1922년 5월) 6일 전중대장(田中大將) 저격범 吳成崙(오성륜)은上海(상해)에셔破獄逃躲(파옥도타)하다
-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 그곳에서 만난 한국사람으로는 独立鬪士(독립투사)였다는 吳成崙(오성륜)(中国名(중국명) 馬天一(마천일)),金炯斗(김형두),趙(조)훈등으로 모두 共産大學生(공산대학생)이었는데
- 慶北重大件事(경북중대건사)의其一(기일) 義烈團前後活動眞相(의열단전후활동진상) 1926.11.11 동아일보 2면
- (吳成崙(오성륜))과함께불원에비률빈(比律賓(비율빈))으로부터도라오는길에상해에상륙할 륙군대장 뎐중의일(陸軍大將田中義一)... (吳成崙(오성륜))등이모히여동년안으로조선안에서폭탄과권총으로써관뎡을파...
- 各國人環列(각국인환열)한上海埠頭(상해부두) 田中大將(전중대장)을爆擊(폭격) 1926.11.11 조선일보 2면
- 本町署(본정서)에檢擧(검거)됏든 義烈團事件眞相(의열단사건진상) 1929.11.03 동아일보 2면
- (강비호돌))과 오성륜(吳成崙(오성륜))등의 권유로의렬단에입단하야 최하청(崔河淸(최하청))진공목(陳公木(진공목))등으로더불어선전출판부의 책임을지고활동하다가조선민족의해방을 엇기위하야는 민족운..
동북항일연군 1로군의 궤멸
일본군에 투항할 당시의 사진
노조에 마사노리(野副昌德, 1887~1981) 소장이 지휘하는 노조에 토벌대가 토벌작전이 마감되는 1941년 3월에 작성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조직표[21]. 이름에 X 표시가 된 사람은 이미 전사 또는 투항(귀순)했다는 표시이다. 1941년 1월 30일 투항한 1로군 사령부 비서처장(秘書處長) 전광(全光) 이름에는 X 표시가 되어 있다. 제2방면군장이었던 북한 김일성은 상관의 허락도 없이 그 전해인 1940년 10월 23일 소련으로 도주했다.
참고 자료
- 呉成崙 フリー百科事典
- 황포탄 의거 (黃浦灘 義擧)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준연,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 김준연 - 모스크바에서 공산대학 다니는 오성륜을 만났다고 함.
- [임경석의 역사극장] 독립운동가의 마음에 어린 딸이 떠올랐다 [한겨레21 제1248호] 2019-01-25
- 상하이 황푸탄 의거 주도한 독립투사들의 유언…딸아 아우야 나처럼 살길 바란다
- [임경석의 역사극장] 다나카 저격수의 탈옥 [한겨레21 제1251호] 2019. 2. 22
- ‘황포탄 의거’ 오성륜…맹수 우리 같던 감옥을 어떻게 탈출했나
- [동아플래시100] 탕!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한 한국인의 운명은… 동아일보 2020-09-30
- 오성륜이라고 나와 있는 ②번 사진의 인물은 실제로는 중국공산당 초기 농민운동가 팽배(彭湃, 1896~1929)이다.[23][24]
- 2월의 호국인물에 총독부에 폭탄투척 김익상 선생 한국경제TV 2017-01-30
- 독립운동가 오성륜(吳成崙) 간찰1점 옛날물건 (경매사이트)
함께 보기
각주
- ↑ 1.0 1.1 1.2 《アルバム 謎の金日成 写真で捉えたその正体》, 東アジア問題研究会編 / 編著者 代表 李命英, (成甲書房, 1978) pp.120~121
- ↑ 2.0 2.1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MBC 특별기획. 제48회,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서울 : 문화방송 시사제작국, 2002) p.192.
- ↑ 그의 생년은 1898년, 1900년 등이 기록에 보이나, 1941년 1월 일본군에 투항할 당시 사진에 39세라 했으므로 1902년생이 맞는 것같다.
- ↑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 ↑ 전광(全光)은 때때로 김광(金光)으로 잘못 표기되기도 했다.
- ↑ 6.0 6.1 件名標題 : 第4 粛正の実行 p.3 - 양정우의 비서처장 전광(全光)의 투항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18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 ↑ 7.0 7.1 사진: 상해에서 전중 대장에게 폭탄던진 조선인, (右) 吳成崙(23), (左) 金益相(29)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4월 07일 3면 9단
- ↑ 8.0 8.1 8.2 오성륜(吳成崙, 1898년생) 용의조선인명부(國外に於ケル容疑朝鮮人名簿 / 朝鮮總督府警務局 編, 1934) p.134
- ↑ 파일:1941년 1월 오성륜 투항 직후 사진.jpg
- ↑ 10.0 10.1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위키백과
- ↑ 2010년 0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익상 보훈처
- ↑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
- ↑ 13.0 13.1 스나이더氏의 懇意 독립신문 1922-10-12
- ↑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
- ↑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3 p.86 : 1930년 12월 21일자 길림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3」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04013183600、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I-4-5-2-3_10_009)(外務省外交史料館)
- ↑ 1941년 3월 동북항일연군 1로군 조직표
- ↑ 파일:1941년 1월 오성륜 투항 직후 사진.jpg
-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20권 임정편Ⅴ > 上海共同租界工務局警務處 韓人獨立運動關係文書 > 11. 田中 암살기도사건 관련 문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남미의 국가 Brazil이 아니고, 미국 인디아나(Indiana)州의 Indianapolis에서 50 km 가량 서쪽에 있는 마을의 이름
- ↑ 상해에서 뎐중대장을 저격한 김익상(상)과 오상륜(하) 동아일보 1922년 04월 07일 3면 1단
-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20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件名標題:第5 討伐成果 (C13071220200)
- ↑ 독립운동가 오성륜(吳成崙) 간찰1점 옛날물건 (경매사이트)
- ↑ 불멸의 발자취(29)—해륙풍에서 길림신문 2011.07.25
- ↑ 殺人魔王彭湃成中共第一英模 禍滅家族惡報 阿波羅新聞網 2018-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