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reformatio
독일어: Reformation
영어: Reformation
개요
종교 개혁은 서방교회의 개혁을 위한 교회 내부 운동으로 1517년을 기준으로 본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당시 서방교회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으로 출발하여, 오직 성경의 권위와 오직 은혜[1]와 오직 믿음[2]을 강조함으로써 부패한 교황제도 중심의 교회와 교회의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던 서방교회 개혁 운동이다.
이 개혁운동으로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에도 한동안 유럽에서는 구교(가톨릭), 신교(개신교) 간의 학살이나 전쟁 등이 일어난다.
활자인쇄술이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전까지는 성경은 성직자인 사제들만 볼 수 있었다.
일반 신도들은 성서를 볼 수도 없었고, 게다가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 성경(볼가타)이 표준이라 읽고 싶어도 해석 할 수가 없었다.
활자인쇄술로 일반 민중이 사용하는 독일어 성경을 보급 한 것이 종교개혁의 결정적이었다.
(활자인쇄술은 유럽보다 조선에서 빨리 발명되었지만, 조선에서는 활자인쇄술로 지식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고, 서구에서는 지식혁명이 활자인쇄술로 일어났다. 일본만 해도 전국시대 때 로마에 소년들을 보냈는데 그 소년들이 유럽에서 활자인쇄술을 가져와서 책이 엄청나게 보급된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가서 일본에는 책이 바다 같이 있다고 감탄하고 자기가 오사카에서 한 말이 에도를 찍고 다시 오사카에 오니 자기가 한 말을 책으로 출판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
그전까지는 성경을 사제 외에는 볼 수 없었기에, 사제의 말이 절대적이었지만, 이후에는 일반대중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비교대조 가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독일은 남부와 북부의 언어는 꽤나 다른데 마르틴 루터는 딱 중간 지역에 살아서 남부와 북부의 독일어에 모두 능통했다고 한다.(독일은 오랫동안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 있었다. 그래서 방언간의 차이가 큰데 마르틴 루터는 성서 번역과정에서 여러 방언을 취합하여 거진 표준 독일어를 만들어냈다.)
혹자는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이기게 된 계기로 보기도 한다. 기독교 유럽세력은 종교개혁으로 종교를 초월해서 발전했지만, 이슬람에서는 이러한 규모의 종교개혁이 없어서 결국 기독교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능가하게 되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개신교 교회에서는 대개 종교개혁 주간(10월 마지막 주)이라고 따로 이 사건을 기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