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역사 중국사 / 中国史 | |
한자: 周
1. 개요
주나라는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건국된 고대 중국의 국가이다.
2. 역사
본래 주나라는 은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였으나 은나라가 기울자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패권국이 된다.
수도를 천도하기 이전을 서주, 낙읍으로 수도를 천도한 이후를 동주라고 한다.
3. 정치와 사회
주나라는 은나라와 달리 제정분리 사회였으며 곧 신권정치를 하지 않았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치려 할때 점을 보았고 그 결과가 불길하였으나 강태공은 이에 개의치 않고 주나라의 정벌을 감행했다.
주나라는 봉건제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는데 땅을 정복하면 그곳에 제후를 파견하여 봉하고 본디 있었던 토착세력은 등용하여 자기편으로 포섭했다. 이 봉건제는 왕과 혈연으로 연결된 씨족이었고 이는 유럽처럼 왕가와 영주가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이때는 청동기 시대로 교통과 행정의 발달이 미비해서 주나라가 직할통치하는 영역은 매우 좁았다. 수도와 그 주변 정도였다.
근데 주나라가 책봉한 제후들이 주나라와의 이 혈연관계가 멀어지고, 주나라는 수도가 털리는 등 주나라의 질서가 약해진다.
공자의 저서인 춘추에서 따온 춘추시대는 그래도 제후들이 명목상으로 주나라의 질서를 인정하고 각자 후의 작위에 있었지만(이때는 왕은 주나라의 천자만 왕이었다.) 제후들의 우두머리를 자칭하는 패자는 제후들의 모임인 회맹을 결성하고 슬로건으로 내세운 게 존왕양이 였다.(주나라의 천자를 높이고 (주나라 질서 밖인)오랑캐를 물리친다.)
전국시대가 되면 춘추시대 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주나라의 권위는 완전히 무너지고 제후들은 주나라 옛질서 따윈 무시하는 단계에 이르고 각자 왕을 자임하고 총력전으로 서로의 영토를 뺏고 전쟁을 벌이던 시대다.
공자는 전쟁이 많던 춘추시대 사람으로 주나라 질서를 그리워하고 주나라 때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적인 경향이 있었다.
4. 문화
주나라는 상의 역법(歷法)과 제사를 취하여 더욱 발전시킨다. 서주시대에 발달한 주역 또한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