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Karl Marx
카를 마르크스
개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유대인 혈통의 독일 시민권자였으며, 공산주의의 창시자이자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이었다.
트리어 출신.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생애
마르크스는 1835년 17세에 아버지의 권유로 본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의 관심은 문학과 철학에 있었다. 그리하여 1936년 베를린 대학교로 전학하였다. 그는 시인동호회에 가입하였는데 그곳은 경찰에 요시찰인물로 찍힌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많은 동호회였다. 또한 헤겔사상 박사동호회에 가입하여 청년헤겔학파라는 극단주의 사상가들과 어울렸다. 이들은 변증법을 이용해 기성 사회, 정치, 종교를 좌익적 관점에서 비판하였다.
18세에 베를린 대학교 철학과로 전학 후 운동권 써클에서 마르크스가 쓴 시인데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에 썼다.
신의 세상은 기억도 없이 다 사라졌다.
나에게 남은 것은 복수 뿐"그는 뒷꿈치로 뛰어올라 분노가 가득 차 포효한다. ...
그는 팔을 쭉 뻗고 사악한 주먹을 불끈 쥐고 쉴 새 없이 분노는 내뿜는다. 마치 마귀 한 마리가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는 듯하다."(pp54)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년 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은 소속된 국가는 조금 다르지만 서로 인종적인 차이가 없는 같은 게르만족 혈통이라서 겉모습만을 보고도 서로 큰 동질감을 가진다. 사용하는 언어도 독일어로 같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의 인종적 혈통은 게르만족이 아니라, 인종 자체가 이질적인 중동 계통의 유대 인종이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시민권을 받았어도 마르크스의 부모가 유대 인종이었기 때문에, 게르만 혈통의 독일인들은 누구나 마르크스의 얼굴과 겉모습만 봐도 마르크스가 독일 민족도 아니고 유럽 인종도 아닌 이질적인 인종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본다. 독일 혈통의 독일인들이 보기에 카를 마르크스는 얼굴부터 이질적인 이방인이었으며 전형적인 중동형 유대인이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얼굴과 진짜 독일 혈통의 독일인들을 비교해 본 한국인들 중에서도 좀 예민한 사람은 이미 카를 마르크스는 얼굴부터도 독일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어릴 적부터 만나는 또래들이나 학우들마다 "카를 마르크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았다. 카를 마르크스가 반국가주의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이고 되고 종교를 광적으로 증오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띄며 정신상태가 이상해진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외양에서부터 게르만족 혈통이 아닌 유대인 민족 혈통이지만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시민권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였고, 이는 이후 카를 마르크스가 만든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증오하던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