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大韓民國-美合衆國間-相互防衛條約,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1])의 약칭으로서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발효된 대한민국과 미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이다.[2][3]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행사함을 삼가할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8]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이상의 증거로서 하기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한다.

본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문과 영문 두벌로 작성되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변 영 태 미합중국을 위하여 존 포스터 덜레스

의의

미국이 굳이 그 당시 최빈국이자 원조가 절실한 우리 나라와 방위조약까지 체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만큼 대한민국에게 업청난 혜택을 가져온 근현대사의 획기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게만혜택을 주는 조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지난 7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단한 이득이 꽤 많아 보인다. 유영익 교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한반도 및 그 주변의 장기적 평화가 유지 되었다.

2) 한국은 1970년대 전반기까지 GNP의 4%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만 쓰면서 경제 개발 우선정책으로써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3) 국군의 비약적 팽창을 이롯다. 대한제국 이 일본에 병탄 되었을 때 보유병력이 8,000명 정도였던 데 비해 한미동맹 조약에 따라 한국은 20개 사단을 현대화했고, 70만 대군을 갖게 되었다.

4) 한국의 민주화를 도왔다. 미국은 남한의 정치적 안정이 동북아권의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남한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를 후원했다.

5) 미국의 지원으로외교 망을 확대했다.

6) 과거 동양에서 가장 폐쇄적이었던 은둔국 한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미국과 맹방이 됨으로써 서구문명에 완전히 개방되었다. 원래 대륙 국가였던 한국은 이 과정에서 해양 지향의 태평양국가로 탈바꿈 했다.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 "주한미군 철수시 10년내 남북간, 한일간 전쟁 우려"

- 전시작전권 이양 반대, "북한군 상대는 핵무장한 미군이 맡아야"

- "북한 비핵화 무산시 한국도 전술핵 보유해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