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尹伊桑
Isang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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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베를린간첩단사건에 연루돼 독일로 추방된 후, 1995년 베를린에서 타계한 윤이상 씨. ⓒ뉴시스
출생1917년 9월 17일
출생지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사망1995년 11월 4일 (향년 78세)
사망지독일 베를린
본관칠원 윤씨 (漆原 尹氏)
직업작곡가
경력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학력통영초등학교 졸업

통영협성상업학교 중퇴
일본 오사카 상업학교
오사카 음악대학

베를린 예술대학교
부모아버지 윤기현, 어머니 김순달
배우자이수자
자녀딸 윤정, 아들 윤우경

윤이상(1917년~1995년)은 독일에서 살았고, 북한에도 자주 가서 김일성에 음악으로 부역한 음악가다.

북한에서 만든 518을 모략하는 영화(한국내 영화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그렇지 비슷하지만, 황석영도 이 영화에 참여했다. 황석영은 속칭 넘어 넘어라는 유명한 518책도 썼다.)인 님을 위한 교향시(계엄군이 환각제를 먹고 학살을 벌인다는)라는 영화의 작곡가로서 참여했다.

김일성에게 민족의 재간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정희때 독일에서 벌어진 간첩사건인 동백림 사건에도 연관되어 있었다.

(좌파에서는 간첩사건은 죄다 용공조작이라고 이야기한다. 동백림사건도 마찬가지. 혹자는 동백림사건이 최대 용공조작 사건이라고도 하는데 동베를린 사건이라고도 한다. 근데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에서 벌어지고 이들을 송환하는 과정 등에서 서독과 프랑스 등과 심각한 외교적 마찰까지 빚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사실 간첩사건의 대다수는 조작이 아니다. 공안당국에서 실수를 했으면 했지, 쓸데없이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것도 서독이나 프랑스와 엄청난 외교적 마찰까지 빚으면서 그짓을 하겠나)

그가 죽자 김일성은 부인에게 애도를 표했고, 윤이상의 부인은 김일성을 찬양했다.

고려대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 사상이나 행적을 떠나서, 음악적으로는 높은 능력을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런 재능과 음악적 능력을 김일성과 북한을 위해 사용한 게 크나큰 오점이라서 그렇지

문재인의 부인인 김정숙이 윤이상을 존경해서 그의 유해를 비행기로 실어 고향인 통영으로 옮겼고,(문재인은 간첩인 신영복을 존경했다고 한다. 대통령 영부인 둘 다 모두 간첩을 존경한 것이다.)

통영에는 윤이상 기념관과 음악제도 있다. 간첩을 위해 기념관을 만든 경우는 한국이 아마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예로 광주에는, 정율성과 관련된 기념관과 정율성로가 있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nNewsNumb=202310100019

▼ 이하는 월간조선의 기사다

통영국제음악당 뒤편에는 ‘윤이상 무덤’이 있다. 1995년 독일에서 사망한 윤이상의 무덤은 원래 베를린 공동묘지인 ‘가토우 공원 묘지’에 있었다. 2017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씨는 윤이상 무덤에 가서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라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러면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추모 이후 ‘윤이상 유해 국내 송환’ 활동이 개시됐다. 2018년 2월에 국내로 반입된 윤이상 유해는 한 달 정도 공설 봉안당에 있다가 “통영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는 윤이상의 유언에 따라 통영국제음악당 뒤편에 묻혔다.


  윤이상 무덤 입구에는 ‘윤이상 선생 약전’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사전 정보 없이 이를 읽는 사람들은 윤이상에 대해 ‘독재 정권에 의해 핍박받은 ▲천재 음악가 ▲민주화 인사 ▲통일 운동가’란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략) 세계 음악계에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혀가던 선생은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 때 한국 중앙정보부에 의해 서울로 강제 납치되어 험한 옥고를 치렀고 (중략) 1988년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제의하여 1990년 분단 45년 만에 남북한의 음악 교류를 성사시킨 업적을 비롯하여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대의에도 수많은 기여를 하였지만, 조국 대한민국으로의 귀국이라는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1995년 11월 3일 먼 이국에서 영면했다. 베를린 가토우 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선생의 유해는 탄생 백주년을 맞아 통영시와 베를린시의 합의에 의해 2018년 3월 20일 생전에 간절히 염원했던 고향 통영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윤이상 무덤 위에는 묘비 역할을 하는 덮개돌이 있다. 그 돌 위에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글귀가 있다. ‘처염상정’은 ‘탁한 곳에 처해 있어도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통영국제음악당 측은 이와 관련해 “선비의 꼿꼿함으로 일관한 선생의 일생을 대변한다”고 방문객들에게 주장한다. 요즘에는 조롱조로 많이 쓰이지만, 본래 ‘선비’란 “학식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권력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온갖 지원금과 각종 특별 대접을 받고, 독재자를 찬양한 윤이상을 가리켜 ‘선비의 삶’이라고 강변하는 이 주장에 공감할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