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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청나라의 5대 황제다.
옹정제는 [[청나라]]의 5대 황제다.


휘는 아이시기오르 인전 한자로는 애신각라 윤진이다. 묘호는 세종이다.
휘는 아이시기오르 인전 한자로는 애신각라 윤진이다. 묘호는 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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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의 4남으로 태어나 수많은 강희제 형제들과 경쟁에서 최종승리하여 황제로 등극했다. (강희제의 유조를 위조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14왕자로 뒤를 잇겠다는 것을 위조해서 4왕자 했다는 것인데.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강희제의 4남으로 태어나 수많은 강희제 형제들과 경쟁(구자탈적 아홉명의 왕자들이 황위를 두고 경쟁)에서 최종승리하여 황제로 등극했다. (강희제의 유조를 위조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14왕자로 뒤를 잇겠다는 것을 위조해서 4왕자로 했다는 것인데.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는 한자 뿐만 아니라 만주문자 몽골문자 세가지 문자를 공식문서에서 썼다 14를 4로 위조하는 것은 한자 하나만이면 모를까 만주나 몽골문자까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청나라]]는 한자 뿐만 아니라 만주문자 몽골문자 세가지 문자를 공식문서에서 썼다 14를 4로 위조하는 것은 한자 하나만이면 모를까 만주나 몽골문자까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강희제는 자식들이 많았고 이들 중 몇명은 후계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기 때문에,
강희제는 자식들이 많았고 이들 중 몇명은 후계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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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과로로 죽는다 라는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독재자는 과로로 죽는다 라는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국가에 크고 작은 대소사를 거의 모두 황제나 독재자 개인에게 보고 되고 독재자 개인이 가부 등을 결정해야지 일이 진행이 된다. 권력이 집중될 수록 개인의 업무량이 막대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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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면이 많아서 사극에도 많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면(형제들간의 왕위쟁탈전, 근면성실, 의문스러운 죽음)이 많아서 사극에도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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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7일 (목) 15:59 기준 최신판

옹정제는 청나라의 5대 황제다.

휘는 아이시기오르 인전 한자로는 애신각라 윤진이다. 묘호는 세종이다.


강희제의 4남으로 태어나 수많은 강희제 형제들과 경쟁(구자탈적 아홉명의 왕자들이 황위를 두고 경쟁)에서 최종승리하여 황제로 등극했다. (강희제의 유조를 위조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14왕자로 뒤를 잇겠다는 것을 위조해서 4왕자로 했다는 것인데.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는 한자 뿐만 아니라 만주문자 몽골문자 세가지 문자를 공식문서에서 썼다 14를 4로 위조하는 것은 한자 하나만이면 모를까 만주나 몽골문자까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강희제는 자식들이 많았고 이들 중 몇명은 후계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기 때문에,

옹정제는 황제가 되고 나서 자신에게 대항한 형제들을 탄압했다.


늦게 즉위했고 과로를 했기에 제위기간(14년)은 그리 길지 않다.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형제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위협이 가는 공신 등등을 잔인하게 탄압한 측면도 있고, 황제로서 매우 근면성실했던 두가지 측면 모두 있다.


청나라에서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3대 성군으로 뽑는다. 이때를 청나라 전성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때를 보통 강건성세라고 부른다.

옹정제는 앞뒤 황제에 비교해 제위기간이 짧고 주로 내치에 신경 쓴 편 전쟁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지만, 변방에서 전쟁에 실패한 이후부터는 재정에 무리가 가는 전쟁을 앞뒤 황제에 비해 거의 하지 않았다. 황제가 직접 전쟁터가 나가는 친정은 아예 하지 않았다. 강희제 건륭제는 강남에 놀러가기도 했는데, 옹정제는 이것 또한 하지 않았다.


재정에 부담이 가는 것은 가급적 하지 않았고 빡세게 관료들을 조였던 게 옹정제다. 강희제 말년에 여러 관료들의 비리나 폐단등을 빡세개 관리해서 해결 했던 게 옹정제다. 앞 뒤황제가 좀 말년에 특히 느슨했던 게 많았는데 그래서 앞뒤 황제는 서로 기록을 쓸 정도로 오래 살았고 재위기간도 길었다.(건륭제는 강희제를 존경해서 강희제의 재위기간의 기록을 넘기지 않게 아들에게 선양을 했다. 하지만 선양 이후에도 실권은 건륭제가 가지고 있었기에 건륭제가 실권을 행사한 실질적인 재위기간은 강희제보다 길다. 하여간 두 황제다 중국역사를 통틀어도 정말 긴 재위기간을 가졌다.)

그에 비해 워크홀릭이라고 할 정도로 옹정제는 밤낮 일을 했고, 관료들은 아주 빡세개 기강이 잡혔지만 옹정제 개인을 오래 살지 않았다. 옹정제 스스로 본인을 위해 천하를 희생할 수 없다 뭐 그런주의 였으니.


독재자는 과로로 죽는다 라는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국가에 크고 작은 대소사를 거의 모두 황제나 독재자 개인에게 보고 되고 독재자 개인이 가부 등을 결정해야지 일이 진행이 된다. 권력이 집중될 수록 개인의 업무량이 막대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빡세개 관료들의 기강을 잡고 부패에 대해 엄단을 했으며, 재정또한 무리하지 않았기에 옹정제 때 청나라는 내실이 튼튼해 졌다. 하지만 그에 아들 대에 다시 관료들이 부패하게 된다.


흥미로운 면(형제들간의 왕위쟁탈전, 근면성실, 의문스러운 죽음)이 많아서 사극에도 많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