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次世界大戰
영어: Second World War, World War II

개요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치러진 전쟁이다. 유럽전체주의가 휩쓴 시기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1]와 재산 피해[2]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다.


1차세계대전은 승전국으로 도약한 일본등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전장터는 거진 유럽대륙에 국한 되었지만, 2차세계대전 태평양 필리핀 등에서도 전쟁이 벌어졌고, 경우에 따라서 중일전쟁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기에 유럽대륙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등 까지 전장이 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정말 세계구급 전쟁이었다.



현재의 세계질서의 많은 부분이 이 전쟁의 결과이다. 미국이 영국을 넘어 기축통화국 세계최강국이 되었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전체주의 파시즘이 패망하였다. 대한민국 또한 2차세계대전의 결과로 독립하였고 분단된 나라이다.

유엔 또한 이 전쟁에 결과로 생겨났다. 유엔 자체가 연합국이 모체이고, 초기 상임이사국도 2차세계대전의 주요 승전국들이다.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



독일이 왜 패배했는가?

참고로 미국이 독일과 1대1로 붙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독일은 항상 수십개국의 작은 적대국들과 3개 이상의 열강국들을 상대로 사실상 혼자서 대부분의 승리를 기록했다. 독일과 1대1로 붙었던 나라들 중에 독일에게 정복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결국 미국은 그저 지리상의 이점을 이용해서 어부지리를 했을 뿐 특별히 고평가 할 것도 없고 독일을 1대1로 이겨본 적도 없다. 이는 미국의 렌드리스 지원 덕분에 멸망의 운명을 넘기고 대부분의 희생을 대신해준 소련도 마찬가지이고 미국의 유럽 핵심 전진기지이자 첩보기지 역할을 해준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특정 국가의 시스템이 독일보다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독일이 유럽 대륙의 절반만을 가지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와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상대로 싸웠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한으로 국력을 뽑아 쓸 수 있는 시스템이었음에 반박의 여지는 없다.

이탈리아와 일본은 프랑스와 영국보다 체급이 아래이고 미국이나 소련보다는 체급이 많이 낮다. 제1차세계대전만 해도 프랑스와 영국은 거대한 식민제국이었고 여기에 러시아 제국과 미국이 독일을 공격했는데 독일의 동맹은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으니 사실상 머릿수/국토/인구 등을 종합한 체급 차이를 비율로 환산하자면 4대2 정도였음. 2차세계대전은 독일 혼자 수십개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수십개 유럽 국가들을 정복하고 영국 하나만 남겨둔 상황이었으며 독일 혼자서 소련과 1대1 정도는 충분히 압살해버리고도 남을 전투력이었다.

참고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인구는 6,000만이었고 미국의 인구는 1억 3,600만에 달했으며 소련의 인구는 1억 5,000만이었으며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4억 정도 되었는데 독일은 인구 6,000만으로 4억 인구에 6년간 맞서 유럽 대륙을 정복했다.

소련은 소련의 국력으로 버텨낸 것이 아니라 날씨와 운, 그리고 미국의 지원으로 버텨냈다. 2차세계대전 개전 당시부터 독일에게 순식간에 정복당한 폴란드, 프랑스만 해도 독일 인구의 2배에 달했다.

참고로 독일의 총력전 선포는 1943년부터였던 반면 영국과 소련은 1941년부터 총력전을 선포했음에도 독일을 제압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전세를 역전시킨 것은 오직 미국의 렌드리스 지원 때문이었다. 소련의 공식적인 계승국이자 통계상 세계 군사력 순위 2위로 알려졌던 러시아는 미국의 렌드리스 지원 없이 2022년에 통계상 세계 군사력 순위 22위였던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가 참패를 당하고 전쟁 개시 2년 뒤인 2024년에는 우크라이나 육군의 러시아 본토 진입까지 허용해주고 말았다.

물량 좋아하던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게 패망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하나도 못 밀어서 본토 역공 당하고 패망하고 있다. 물량이 질보다 강하다 어쩌구 하던 앵무새같은 헛소리들은 더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음이 직접 입증되고 있다.

참고로 히틀러는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 따위를 정복하는데 독일 국민들의 복지 예산을 줄이고 총력전을 선포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1941년에 총력전 선포를 하지 않는다고 직접 지시한 바 있다. 따라서 독일의 총력전 선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직후인 1943년 초로 미루어졌다. 역사를 판단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며 다양한 관점을 알아야 한다. 애시당초 미국이 왜 2차세계대전 이후 점점 양보다 질에 집중하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현실로 논파당하는 중인 저질 선전가들의 백면서생같은 이론들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따라해서 나열하는 앵무새들과는 대화할 가치가 매우 낮을 것이다.

참고로 독소전쟁 초반에 곡창지대였던 우크라이나를 잃었던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필요한 식량을 자급할 능력이 없었고 이를 구해낸 것은 오직 미국의 렌드리스 긴급 식량 지원이었다. 미국은 소련군에게 무전기 300만개와 두돈반 트럭 50만대와 군용기 기술과 1만여 대에 달하는 군용기들을 지원해 주어 구시대적이었던 소련군을 제병협동과 기동전이 가능한 신식 군대로 탈바꿈시켜주었다. 미국의 렌드리스 물자 지원 이전의 소련군은 제병협동과 기동전 자체가 불가능하여 소련군이 독일군보다 숫적으로 훨씬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군과 맞서면 일방적인 교환비로 분쇄당하기 일쑤였다.

독소전쟁의 소련군 사망자는 1,300만이며 소련 파르티잔/민간인 사망자는 1,700만~2,700만으로 총 3,000만~4,000만에 달하는 반면 독일의 동부전선 사망자는 군인 300만, 민간인 200만으로 총 500만도 되지 않았다.



독일이 2차세계대전을 승전할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전쟁에서 생산 효율의 최적화도 유의미한 요소이지만 본토의 인구가 매우 작은 독일이라는 나라가 전략의 실패를 만회하게 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1941년 당시 독일은 세계 최강국이었지만 세계 최대국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941년에 소련을 끝낸다는 계산에 올인하여 총력전을 선포하지도 않고 독소전쟁을 개시한 독일에게는 소련에 미국의 렌드리스가 지원되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을 벌여 빠르게 승리로 마무리짓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모든 것을 베팅한 독일은 영하 40도에 달하는 날씨라는 변수로 인해 모든 판돈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독소전쟁을 깔끔하게 승리로 마무리지을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또는 최소한 1941년에 레닌그라드나 세바스토폴을 주변 지역까지 완전히 포위하고 세바스토폴과 레닌그라드 순서대로 함락시켜야 더 빠른 총력전 선포나 생산 효율의 최적화로 승전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이보기

각주

  1. 추가바람
  2.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