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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건'''(李奇建, 1919년 ~ ?)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군인으로 한국전 참전 유공자이다. 준장으로 예편하고 대한재향군인회 회장, 내외문제연구소(內外問題硏究所) 소장 등을 지냈다.
'''이기건'''(李奇建, 1919년 ~ ?)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군인으로 한국전 참전 유공자이다. 준장으로 예편하고 대한재향군인회 회장, 내외문제연구소(內外問題硏究所) 소장 등을 지냈다.


그는 해방 직후 서울에서 [[여운형]]의 비서를 하며 [[김일성]]에게 [[여운형]]의 밀서를 전달하러 평양도 들락거리다 월북하여 북조선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폭압적인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에게도 위해가 다가오자 도로 월남하여 국군에 참여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김일성 등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더러 만났으며 당시 북한 정권 중심부의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후일 이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그는 해방 직후 서울에서 [[여운형]]의 비서를 하며 [[김일성]]에게 [[여운형]]의 밀서를 전달하러 평양도 들락거리다 월북하여 북조선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폭압적인 정치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에게도 위해가 다가오자 도로 월남하여 국군에 참여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김일성 등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더러 만났으며 당시 북한 정권 중심부의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후일 이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개요==
==개요==

2023년 3월 20일 (월) 09:14 판

이기건(李奇建, 1919년 ~ ?)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군인으로 한국전 참전 유공자이다. 준장으로 예편하고 대한재향군인회 회장, 내외문제연구소(內外問題硏究所) 소장 등을 지냈다.

그는 해방 직후 서울에서 여운형의 비서를 하며 김일성에게 여운형의 밀서를 전달하러 평양도 들락거리다 월북하여 북조선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폭압적인 정치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에게도 위해가 다가오자 도로 월남하여 국군에 참여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김일성 등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더러 만났으며 당시 북한 정권 중심부의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후일 이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개요

해방 직후 북한 정권 내막에 대한 증언

참고 자료

보천보사건 때 국내조직을 동원해 6사를 도운 탓으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살다가 해방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 박금철은 그해 가을 평양에 「김일성」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제6사장 김일성인 줄 알고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가서 「김일성」 을 자칭하는 김성주를 만났으나 김성주는 박금철을 몰라봤다. 거꾸로 박금철은 김성주로부터 일본 놈과 협력한 배반자란 낙인만 받았다. 그때 그 자리엔 여운형의 심부름으로 김성주를 만나러갔던 현 내외문제연구소장 이기건씨가 동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