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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와 곡물의 신이다. 사가 땅의 신이고 직이 곡물의 신이다.  
땅과 곡물의 신이다. 사가 땅의 신이고 직이 곡물의 신이다.  


전 근대 왕조 중국 한국 등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기에,  
전 근대 왕조 중국 한국 등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고, 유교의 질서와 예를 따랐기에


왕이나 황제가 사직 신에서 제사를 들여 풍년을 기원하였다. 사직단이라는 것은 사직에게 제사를 들이는 성스러운 장소다.
왕이나 황제가 사직 신에서 제사를 들여 풍년을 기원하였다. 사직단이라는 것은 사직에게 제사를 들이는 성스러운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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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서 제후왕은 사직에게는 제사를 들일 수 있지만, 황제가 아닌 제후왕은 사직신이 아닌 천 그러니까 하늘과는 일대일로 소통을 할수 없다. 그건 중국황제인 천자만 가능하다.
엄밀히 말해서 제후왕은 사직에게는 제사를 들일 수 있지만, 황제가 아닌 제후왕은 사직신이 아닌 천 그러니까 하늘과는 일대일로 소통을 할수 없다. 그건 중국황제인 천자만 가능하다.


봉선 하늘에 제사를 들이는 것인 엄밀한 중국 세계관에서는 천자인 황제만 가능하다.(봉선도 개나 소나 모든 황제가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공적이 있다고 자처하는 황제들만 했다. 진시황제나 한무제와 같은.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중국의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봉선의식에 참여해서 직접 그것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산 밑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실망해서 그 이후 시름 시름 앓다가 얼마 있다 죽었다.)  
봉선 하늘에 제사를 들이는 것인 엄밀한 중국 세계관에서는 천자인 황제만 가능하다.
 
(봉선도 개나 소나 모든 황제가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공적이 있다고 자처하는 황제들만 했다.
 
진시황제나 한무제와 같은. 특정황제는 봉선의식을 한다고 하니까 신하가 당신은 그 정도 공적이 없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중국의 태산(타이산)에서 봉선의식을 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봉선의식에 참여해서 직접 그것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산 밑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실망해서 그 이후 시름 시름 앓다가 얼마 있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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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조 왕들을 기리는 종묘(조상신에게 제사)와 사직은 세트로 관용적으로 한 왕조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역대 선조 왕들을 기리는 종묘(조상신에게 제사)와 사직은 세트로 관용적으로 한 왕조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도읍 수도에는 왕조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궁궐보다도 더  먼저 만든 게 종묘와 사직단이다.
도읍 수도에는 왕조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궁궐보다도 더  먼저 만든 게 종묘와 사직단이다.  유교의 경전인 주례에서는 궁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라고 쓰여있다. 유교국가인 조선도 이에 따라서 경복궁 정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했다.

2024년 8월 29일 (목) 18:11 기준 최신판

땅과 곡물의 신이다. 사가 땅의 신이고 직이 곡물의 신이다.

전 근대 왕조 중국 한국 등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고, 유교의 질서와 예를 따랐기에

왕이나 황제가 사직 신에서 제사를 들여 풍년을 기원하였다. 사직단이라는 것은 사직에게 제사를 들이는 성스러운 장소다.


엄밀히 말해서 제후왕은 사직에게는 제사를 들일 수 있지만, 황제가 아닌 제후왕은 사직신이 아닌 천 그러니까 하늘과는 일대일로 소통을 할수 없다. 그건 중국황제인 천자만 가능하다.

봉선 하늘에 제사를 들이는 것인 엄밀한 중국 세계관에서는 천자인 황제만 가능하다.

(봉선도 개나 소나 모든 황제가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공적이 있다고 자처하는 황제들만 했다.

진시황제나 한무제와 같은. 특정황제는 봉선의식을 한다고 하니까 신하가 당신은 그 정도 공적이 없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중국의 태산(타이산)에서 봉선의식을 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봉선의식에 참여해서 직접 그것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산 밑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실망해서 그 이후 시름 시름 앓다가 얼마 있다 죽었다.)



그래서 세종 같은 경우는 비와 오지 않으니 왕이 하늘에 대고 기후제 비슷한 비를 오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제후왕으로서 참람하다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신하들은 종전 왕들도 해 왔던 거니 괜찮다고 했음에도.


대한제국으로 소중화 황제를 자처하고 나서 하늘과 제사를 들이는 환구단을 지었다.


하여간 사직단은 제후왕인 조선왕도 제사를 들일 수 있었기에 있었다.


역대 선조 왕들을 기리는 종묘(조상신에게 제사)와 사직은 세트로 관용적으로 한 왕조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도읍 수도에는 왕조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궁궐보다도 더 먼저 만든 게 종묘와 사직단이다. 유교의 경전인 주례에서는 궁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라고 쓰여있다. 유교국가인 조선도 이에 따라서 경복궁 정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