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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정치인 | |||
|이름 = 김오성 | |||
|영어명 = 金午星 | |||
|그림 = | |||
|그림설명 = | |||
|본명 = 김형준(金亨俊) | |||
|국적 = | |||
|성별 = 남성 | |||
|출생 = 1905년<ref>[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인물자료 http://db.history.go.kr/id/im_101_02551]에는 43세(1947년 현재)로 되어있다.</ref> 혹은 1906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90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출생일이다.</ref> 혹은 1908년<ref>[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98%A4%EC%84%B1 위키백과]에서의 출생일이다.</ref> | |||
|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 | |||
|사망 = 1953년? (46~49세?) | |||
|사망지 = | |||
|본관 = | |||
|직업 = | |||
|활동 기간 = | |||
|경력 = | |||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수필 평론부회 평의원 <br> | |||
1943년 [[매일신보]] 논설 <br> | |||
1944년 [[조선건국동맹]] <br> | |||
{{여백|3=@}}조선인민당 선전부장 <br> | |||
{{여백|3=@}}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겸 선전부장 <br> | |||
1946년 남로당 중앙위원 <br> | |||
1947년 월북 <br> | |||
19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br> | |||
{{여백|3=@}}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 문화선전부 부상 <br> | |||
1953년 8월 노동당중앙위원회 제명 <br> | |||
{{여백|3=@}}263명의 친일 인사 명단<ref>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김승학]]의 기록.</ref> | |||
|학력 = [[니혼 대학]] 철학과 | |||
|종교 = | |||
|친인척 = | |||
|상훈 = | |||
|수상 = | |||
|주요작품 = | |||
《지도자론》 1946년 <br> | |||
《지도자 군상》 1946년 | |||
|별명 = | |||
}} | |||
김오성(金午星, 1906 ~ 1953?) | |||
==생애== |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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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략) 일본의 국민정신은 결코 배타적이 아니다. 八紘一宇는 국민정신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또한 民族協和의 정신도 된다. 만주국의 탄생은 민족협화의 정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니 저 영미의 농락에서 신음하는 동아의 제 민족을 해방시켜 민족협화의 實을 거둔 것이 만주사변이 가진 세계적 의의인 것이다.<br> | (상략) 일본의 국민정신은 결코 배타적이 아니다. 八紘一宇는 국민정신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또한 民族協和의 정신도 된다. 만주국의 탄생은 민족협화의 정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니 저 영미의 농락에서 신음하는 동아의 제 민족을 해방시켜 민족협화의 實을 거둔 것이 만주사변이 가진 세계적 의의인 것이다.<br> | ||
그러한 민족협화의 정신을 토대로 한 동아공영권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支那事變은 민족 협화의 정신을 동아공영권의 사상까지 성숙시켰다 할 수 있다. (하략)}} | 그러한 민족협화의 정신을 토대로 한 동아공영권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支那事變은 민족 협화의 정신을 동아공영권의 사상까지 성숙시켰다 할 수 있다. (하략)}} | ||
==해방 후 행적== | ==해방 후 행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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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좌익계 인물들에 대한 평론집인 아래 두 저서가 있다. | 해방 직후 좌익계 인물들에 대한 평론집인 아래 두 저서가 있다. | ||
* 김오성(金午星), | * 김오성(金午星), 『지도자론(指導者論)』 | ||
* 김오성(金午星), 『지도자군상(指導者群像)』, (大成出版社, 1946년 9월 15일) | * 김오성(金午星), 『지도자군상(指導者群像)』, (大成出版社, 1946년 9월 15일) | ||
: 金南植, 李庭植, 韓洪九 엮음, 《韓國現代史資料叢書 : 1945-1948》 제13권 (제3부 단행본편)에 수록 | : 金南植, 李庭植, 韓洪九 엮음, 《韓國現代史資料叢書 : 1945-1948》 제13권 (제3부 단행본편)에 수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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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7일 (토) 12:29 판
김오성 金午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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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형준(金亨俊) |
성별 | 남성 |
출생 | 1905년[1] 혹은 1906년[2] 혹은 1908년[3] |
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 |
사망 | 1953년? (46~49세?) |
경력 |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수필 평론부회 평의원 1943년 매일신보 논설 |
학력 | 니혼 대학 철학과 |
김오성(金午星, 1906 ~ 1953?)
생애
친일 행적
金午星은 그 당시 환경이 어떠하였는지, 그 목적이 나변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신』이란 총독부 기관지에 투고는 고사하고 인사소식란에 등재되는 것까지도 일반이 불명예로 생각해오는 때에 사상가로서 3, 4차에 亙하야 기고 발표한 것은 비협력자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물론 각 논문 내용을 볼 때에 친일적 협력적 언사를 피하기에 고심한 듯하나 그 중의 一文을 左에 소개하야 세인의 비판에 임하려 한다.
연월일 / 종별 또는 건명 / 발표처 / 적요
昭16.7.16 / 생활기술문화 / 『每新』 / 결론요지 “생활문화의 기초이념은 무엇보다도 국민적 의식, 일본정신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昭17.4.27-5.5 / 서양과 동양(세계사의 전환) / 『每新』 2回(연재) /
昭18.2.9 / 서사문학의 대망 / 『每新』 / 동아문예진흥에 대한 각오
「西洋과 東洋(世界史의 轉換)」 要旨
(상략) 일본의 국민정신은 결코 배타적이 아니다. 八紘一宇는 국민정신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또한 民族協和의 정신도 된다. 만주국의 탄생은 민족협화의 정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니 저 영미의 농락에서 신음하는 동아의 제 민족을 해방시켜 민족협화의 實을 거둔 것이 만주사변이 가진 세계적 의의인 것이다.
해방 후 행적
저서
해방 직후 좌익계 인물들에 대한 평론집인 아래 두 저서가 있다.
- 김오성(金午星), 『지도자론(指導者論)』
- 김오성(金午星), 『지도자군상(指導者群像)』, (大成出版社, 1946년 9월 15일)
- 金南植, 李庭植, 韓洪九 엮음, 《韓國現代史資料叢書 : 1945-1948》 제13권 (제3부 단행본편)에 수록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인물자료 http://db.history.go.kr/id/im_101_02551]에는 43세(1947년 현재)로 되어있다.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출생일이다.
- ↑ 위키백과에서의 출생일이다.
- ↑ 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김승학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