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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 약칭 건준(建準))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이 임박해지자 조선총독부의 권유를 받아들인 [[여운형]]이 주도해서 조직하였다. 처음에는 우파 인사들도 다수 참여하였으나 점점 좌파 색채가 강해지자 우파 인사들은 탈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9월 6일 전국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된다.
[[파일:1945-08-16-건준의 전단.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해방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자 건국준비위원회의 전단. 원문 텍스트를 보려면 클릭.<ref>[https://newsis.com/view/?id=NISI20200110_0015966045 <nowiki>[광복 75주년]</nowiki>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뿌린 전단] 뉴시스 2020-01-12</ref><ref>[https://newsis.com/view/?id=NISX20200108_0000882326&cID=10201&pID=10200 <nowiki>[해방정국 3년]</nowiki> 해방 믿지 못해… 군중은 하루뒤 거리로 쏟아졌다] 뉴시스 2020-01-12</ref><ref>[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8_16_0040 건준, 동포의 자중과 안정 요청하는 전단 살포] 매일신보 1945년 08월 16일</ref>]]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 약칭 건준(建準))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이 임박해지자 조선총독부의 권유를 받아들인 [[여운형]]이 주도해서 8월 16일 조직하였다. 처음에는 우파 인사들도 다수 참여하였으나 점점 좌파 색채가 강해지자 우파 인사들은 탈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된다. 10월 8일에 건준은 공식적으로 해소된다.
 
조선총독부에서 처음 접촉한 사람은 송진우, 두번째는 안재홍이었으나 이들은 거절했고, 세번째로 [[여운형]]이 승락하여<ref>미군정의 1946년 8월 16일자 기록 : [https://nl.go.kr/NL/contents/search.do?kwd=#viewKey=CNTS-00053808153 Police Corruption, South Korea] p.91 : ◦ Robinson, 8-16, 1946, Interview with Leonard Bertsch, Political Advisor for Gen. Hodge</ref> 이런 조직을 만들었으나 별로 중요한 기능을 하지는 못했다. 여운형은 총독부로부터 거액의 자금지원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개요==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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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준 선언 및 강령==
==건준 선언 및 강령==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8_16_002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08월 16일  >  건준 준비위원으로서 안재홍이 한일간 自主互讓 할 것을 방송] 매일신보 1945년 08월 17일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8_16_005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08월 16일  >  건준위원장 呂運亨, 엔도(遠藤)와의 회담경과 보고] 매일신보 1945년 08월 17일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8_18_001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08월 18일  >  건준 위원장 呂運亨, 건준의 성격과 사명에 관한 담화 발표] 매일신보 1945년 08월 18일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9_02_001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09월 02일  >  건준, 선언 강령 발포] 매일신보 1945년 09월 03일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801&tabId=01&levelId=hm_144_0040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선언⋅강령] - 우리역사넷 - 국사편찬위원회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801&tabId=01&levelId=hm_144_0040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선언⋅강령] - 우리역사넷 - 국사편찬위원회
: 1945년 8월 28일 / 건국 준비 위원회 서기국 9월 2일 발표
: 1945년 8월 28일 / 건국 준비 위원회 서기국 9월 2일 발표
===안재홍 부위원장의 사퇴와 건준의 해소===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09_10_004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09월 10일  >  안재홍,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余의 처지’ 성명서 발표] 전단 1945년 09월 10일
* [http://db.history.go.kr/id/dh_001_1945_10_08_0010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10월 08일  >  건준, 숙명여고에서 해소식 거행] 자유신문 1945년 10월 09일


==건국준비위원==
==건국준비위원==
[[파일:1945-08-26-매일신보-건준위원명단.jpg|600픽셀|섬네일|가운데|1945-08-26일자 매일신보의 건국준비위원 명단]]
1945-08-26일자 매일신보가 보도한 건국준비위원 명단에는 당시 국내에 있던 좌우파 주요인물들이 상당수가 들어있다.
[[파일:1945-08-26-매일신보-건준위원명단.jpg|700픽셀|섬네일|가운데|1945-08-26일자 매일신보의 건국준비위원 명단]]
 
==참고 자료==
*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708100053 숨어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 8·15에 찾아보는 건국준비위원회 관련 자취들] 월간조선 2017년 8월호


==함께 보기==
==함께 보기==
* [[조선인민공화국]]
* [[조선인민공화국]]
* [[여운형]]
* [[여운형]]
*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


==각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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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방정국]]
[[분류:해방정국]]
[[분류:여운형]]
[[분류:박헌영]]

2022년 2월 3일 (목) 06:58 기준 최신판

해방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자 건국준비위원회의 전단. 원문 텍스트를 보려면 클릭.[1][2][3]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 약칭 건준(建準))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이 임박해지자 조선총독부의 권유를 받아들인 여운형이 주도해서 8월 16일 조직하였다. 처음에는 우파 인사들도 다수 참여하였으나 점점 좌파 색채가 강해지자 우파 인사들은 탈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된다. 10월 8일에 건준은 공식적으로 해소된다.

조선총독부에서 처음 접촉한 사람은 송진우, 두번째는 안재홍이었으나 이들은 거절했고, 세번째로 여운형이 승락하여[4] 이런 조직을 만들었으나 별로 중요한 기능을 하지는 못했다. 여운형은 총독부로부터 거액의 자금지원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개요

건준 선언 및 강령

1945년 8월 28일 / 건국 준비 위원회 서기국 9월 2일 발표

안재홍 부위원장의 사퇴와 건준의 해소

건국준비위원

1945-08-26일자 매일신보가 보도한 건국준비위원 명단에는 당시 국내에 있던 좌우파 주요인물들이 상당수가 들어있다.

1945-08-26일자 매일신보의 건국준비위원 명단

참고 자료

함께 보기

각주

  1. [광복 75주년]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뿌린 전단 뉴시스 2020-01-12
  2. [해방정국 3년] 해방 믿지 못해… 군중은 하루뒤 거리로 쏟아졌다 뉴시스 2020-01-12
  3. 건준, 동포의 자중과 안정 요청하는 전단 살포 매일신보 1945년 08월 16일
  4. 미군정의 1946년 8월 16일자 기록 : Police Corruption, South Korea p.91 : ◦ Robinson, 8-16, 1946, Interview with Leonard Bertsch, Political Advisor for Gen. Ho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