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온조는 백제를 건국한 왕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아버지 동명성왕의 2번째 부인인 소서노의 아들이다. 형으로 비류가 있다. 동명성왕이 첫번째 부인의 아들 유리명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소서노와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이주하여 한강유역에 국가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이견이 있었으나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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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정보 | |||
|이름= 온조왕 | |||
| 원래 이름 = 溫祚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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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는 백제를 건국한 왕이다. | 온조는 백제를 건국한 왕이다. | ||
고구려를 건국한 아버지 동명성왕의 2번째 부인인 소서노의 아들이다. 형으로 비류가 있다. | 고구려를 건국한 아버지 동명성왕의 2번째 부인인 소서노<ref>[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70&totalCount=70&prevPage=0&prevLimit=&itemId=sg&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g_023r_0020_0010&position=22#sg_023r_0020_0010_f027_comment 소서노에 대해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압록강 중류의 지역 집단인 ‘나(那)’ 또는 ‘노(奴)’의 명칭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李丙燾, 359~360쪽)와 샤먼과 관련된 솟을녀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소서노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가의 호국신이라는 설(강영경, 1982)과 신모(神母)적 존재로 보는 설(全虎兌, 1997; 김남윤, 1999)이 있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13년(B.C. 6)조에는 왕의 어머니[國母]가 죽었는데 나이가 61세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타베이스</ref>의 아들이다. 형으로 비류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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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이견이 있었으나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서기 18년에 나라를 세웠다. | 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이견이 있었으나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서기 18년에 나라를 세웠다. | ||
비류는 인천쪽으로 이동하여 미추홀에 국가를 세우웠으나 비류가 죽은 후에 백제에 흡수되었다. | 비류는 인천쪽으로 이동하여 미추홀에 국가를 세우웠으나 비류가 죽은 후에 백제에 흡수되었다. | ||
조선의 인조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몽진 했을 때 남한산성에서 온조왕의 꿈을 꿨다고 한다. 그 꿈을 꾸고난후 청나라와 전투에게 이겼다고 한다. (물론 정축하성 즉 정축년에 성을 내려오다. 결국 못 버티고 성을 내려와서 항복한다.) | |||
2024년 3월 19일 (화) 02:19 기준 최신판
1~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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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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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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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5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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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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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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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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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기원전 18년 ~ 28년 2월 (음력) |
이름 |
|
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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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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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28년 2월 (음력) |
부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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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
|
형제 |
유리, 비류(형) |
배우자 |
미상 |
자녀 |
온조는 백제를 건국한 왕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아버지 동명성왕의 2번째 부인인 소서노[4]의 아들이다. 형으로 비류가 있다.
동명성왕이 첫번째 부인의 아들 유리명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소서노와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이주하여 한강유역에 국가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이견이 있었으나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서기 18년에 나라를 세웠다.
비류는 인천쪽으로 이동하여 미추홀에 국가를 세우웠으나 비류가 죽은 후에 백제에 흡수되었다.
조선의 인조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몽진 했을 때 남한산성에서 온조왕의 꿈을 꿨다고 한다. 그 꿈을 꾸고난후 청나라와 전투에게 이겼다고 한다. (물론 정축하성 즉 정축년에 성을 내려오다. 결국 못 버티고 성을 내려와서 항복한다.)
각주
- ↑ 자세한 사용법은 틀:군주 정보 참조.
- ↑ 《삼국사기》
- ↑ 《해동고승전》
- ↑ 소서노에 대해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압록강 중류의 지역 집단인 ‘나(那)’ 또는 ‘노(奴)’의 명칭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李丙燾, 359~360쪽)와 샤먼과 관련된 솟을녀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소서노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가의 호국신이라는 설(강영경, 1982)과 신모(神母)적 존재로 보는 설(全虎兌, 1997; 김남윤, 1999)이 있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13년(B.C. 6)조에는 왕의 어머니[國母가 죽었는데 나이가 61세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타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