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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정보
|이름  = 시진핑
|영어명 = 习近平 / Xí Jìnpíng
|그림  = 


| 국가 = [[중국공산당]]
{{국가원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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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시진핑
| 직책 = 중앙위원회 총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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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일 = 2012년 11월 15일
Xí Jìnpí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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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세계일보<ref>[https://m.segye.com/ampView/20210621518137 시진핑, 주석 3연임 확정시켜 장기집권 체제 구축 총력전 {{ㄷ|세계는 지금}}], 2021-06-2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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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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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2 = [[중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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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2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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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2 = [[리커창]](2013~2023)<br>[[리창]](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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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2 =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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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대수2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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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3 =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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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4 = [[중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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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4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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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일4 = 2008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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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임대수4 = 10
| 후임대수4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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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무종교]]([[무신론]])
}}
 
'''시진핑'''(習近平, 习近平, Xí Jìnpíng, 1953년 6월 15일~ )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시진핑 전까지는 덩샤오핑의 유지대로 화평굴기나 도광양회 힘을 숨기고 미국에게 겉으로는 대항하지 않고 평화롭게 힘을 기른다는 식의 정책을 펴 왔지만, 시진핑 이후로는 대국굴기나 중국몽등 그전과는 달리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식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2등이 되면 1등이 가만히 안 두는데 시진핑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식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빨을 드러낸 중국에 대해 미중패권 경쟁이 격화되었다. 미국이 아닌 서방에서도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게 되었다.
 
시진핑 전까지는 또한 마오쩌둥의 1인 개인 독재 체재의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 중국공산당내에서는 파벌간 집단 지도체재 같은 시스템이 돌아갔는데, 시진핑은 정적들을 다 골로 보내고 3연임에 성공하면서 다시 마오와 같은 1인 독재 황제와 같은 체재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면 다시 마오와 같은 1인독재 체재로 퇴보한 것이다.
 
시진핑의 일인장기집권이 공고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2020년 기준 <ref>퓨리서치센터의 14개국 대상 조사 결과</ref> 한국과 호주, 영국, 미국 등 9개 나라 국민은 4명 중 3명꼴로 중국에 부정적이었다는 결과다.<ref>[https://m.segye.com/ampView/20210621518137 시진핑, 주석 3연임 확정시켜 장기집권 체제 구축 총력전 {{|세계는 지금}}], 2021-06-27</ref>
 
 


|정당  = 중국공산당
==일생==
|경력  =
[[중국공산당]] 8대 원로의 한명이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C%A4%91%EC%89%B0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의 아들로 소위 말하는 태자당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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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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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習近平, 习近平, Xí Jìnpíng, 1953년 6월 15일~ )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중국공산당]] 8대 원로의 한명이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C%A4%91%EC%89%B0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의 아들로 소위 말하는 태자당 출신이다.


제18기,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다.
제18기,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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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주석 임기제한을 철폐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공당 내에서 상해방(장쩌민), 공청(후진타오), 태자당 등 3파의 권력 균형이 태자당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
2018년에는 주석 임기제한을 철폐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공당 내에서 상해방(장쩌민), 공청(후진타오), 태자당 등 3파의 권력 균형이 태자당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


시진핑 전까지는 덩샤오핑의 유지대로 화평굴기나 도광양회 힘을 숨기고 미국에게 겉으로는 대항하지 않고 평화롭게 힘을 기른다는 식의 정책을 펴 왔지만, 시진핑 이후로는 대국굴기나 중국몽등


그전과는 달리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식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2등이 되면 1등이 가만히 안 두는데 시진핑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식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빨을 드러낸 중국에 대해 미중패권 경쟁이 격화되었다. 미국이 아닌 서방에서도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게 되었다.
==당 원로들의 반발에 흔들리는 시진핑의 권력==
 
* [https://www.epochtimes.kr/2024/09/690011.html 中 공산당 내부 ‘여름 반란’…‘개혁가 시진핑’ 왜 삭제됐나] 에포크타임스 2024년 09월 2일
::中 관영매체 “시진핑은 덩샤오핑급 개혁가” 칭송 논평 게재 이틀 만에 삭제
::삭제 이유 두고 추측 분분…“혁명원로 2세들 거센 반발 끝에 기사 내려져”
::공산당 원로 세력과 시진핑 간 갈등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


시진핑 전까지는 또한 마오쩌둥의 1인 개인 독재 체재의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 중국공산당내에서는 파벌간 집단 지도체재 같은 시스템이 돌아갔는데, 시진핑은 정적들을 다 골로 보내고 3연임에 성공하면서 다시 마오와 같은 1인 독재 황제와 같은 체재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 [https://whytimes.kr/news/view.php?idx=19987 <nowiki>[정세분석]</nowiki> 당 원로들의 반발에 직면한 시진핑, “권좌가 흔들리고 있다!”] WhyTimes 2024-08-30
::- 중국의 개혁개방을 시진핑 업적으로 만들려던 중국 지도부
::- 가로막힌 ‘시진핑 우상화’, 당 원로 극한 반발에 좌초
::- 무너진 시진핑의 권위, 좌절감에 빠진 지도부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면 다시 마오와 같은 1인독재 체재로 퇴보한 것이다.  
아래는 신화통신 인터넷망에 게재되었다가 반발에 직면하여 내린 글 "改革家习近平"의 전문이다. 이 글은 인민일보 등의 인쇄판에도 실리지 못했으며,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 [https://chinadigitaltimes.net/chinese/709812.html 【404文库】【立此存照】新华社|改革家习近平] China Digital Times 07/18/2024
시진핑과 부친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C%A4%91%EC%89%B0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이 개혁개방을 주도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우한 폐렴]] 여파, 중국 내에서도 시진핑 퇴진 거론==
==[[우한 폐렴]] 여파, 중국 내에서도 시진핑 퇴진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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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Tg-qa4D5B6Q</youtube></center>
<center><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Tg-qa4D5B6Q</youtube></center>


==시진핑의 한국전쟁관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공했다.==
==시진핑의 한국전쟁관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공했다'==
 
2010년 10월 중공의 차기 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대한민국이 미군과 함께 북한을 침공하였고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에 자랑스럽게 참가하여 북한을 지켜냈다'''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 국민들은 물론 각계에서 “한국과 한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비난과 사과를 촉구했다.<ref>[https://www.ntdtv.kr/news/society/6032.htm 한국 각계, “시진핑 한국전쟁 남침 발언은 어불성설”], NTD, 2010.10.18</ref>
 
{{인용문|
* “한국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중조 양국 인민과 군대가 단결함으로써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시진핑
}}
 
시진핑의 막말에 한국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은  “6.25 전쟁에 관한 것은 이미 모든 나라가 다 공인을 하고 있는,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더 이상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
 
조선일보는 “(시진핑이) 한국전쟁을 `침략에 맞선 위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말한 것은 국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60년 전 70만 중공군이 한반도로 밀고 들어와 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비극이 시작됐던 날이 중국에선 역사적 기념일”이다.
 
국민일보는 “역사를 날조하는 인사가 중국의 차기 지도자라니 대단히 실망스럽다”, “시진핑은 망언을 취소하고 전 세계를 향해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드러낸 잘못된 역사인식은 한반도 안보는 물론 세계 평화에 미칠 악영향이 심각할 것”이다.


시진핑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대한민국이 미군과 함께 북한을 침공하였고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에 자랑스럽게 참가하여 북한을 지켜냈다고 한다.<ref>https://www.ntdtv.kr/news/society/6032.htm</ref>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중요한 나라의 차세대 지도자가 좁은 역사인식과 ‘모택동’적인 사고에 집착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하며 한국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문재인 정권]]은 중국에 대해서 굴종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문재인은 중국은 "커다란 산이요 한국은 작은 봉우리"라고 아부를 떨었다. 중국의 외교행태를 모르고 저지른 굴종적 자세였다.


==문재인 정부==
문제는 문제인 일행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문재인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드러났다. 국빈방문 열한끼의 식사 중에 절반이 넘는 횟수를 혼식을 했다. 중국의 더 큰 무례는 같이 동행한 취재 기자들이 공안에 의해서 두들겨 맞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데도 문제인 외교부는 중국에 항의 조차도 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은 중국에 대해서 굴청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문재인은 중국은 커다란 산이요 한국은 작은 봉우리라고 했다.
중국은 강한자에게는 공손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들이다.
문재인 정권이  중국 시진핑의 방문을 간절히 앙망하며 아부에 가까운 외교 행태를 보였지만 문재인 집권동안 지진핑은 문재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제인은 중국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열한 기 식사 중에 절반이 넘는 횟수를 훈식을 했다. 통행현 기자들은 공안에 의해서 뚜들겨 맞았다. 그런데도 아무 항의조차도 하지 못했다.


강한자에게는 공손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들이다.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윤석열 정부]]의 중국과의 관계는 안보 동맹과 경제동맹은 같이 가야한다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확립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있었던 굴종적인 친중 유화적인 정책을 탈피하였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안미경중]]이라는 정책도 탈피하였다.  


==윤석열 정부==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반일 프레임으로 금이갔던 한·미·일 삼각동맹이 다시금 공고해졌다.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정책을 펴며 [[문재인 정권]]과 같은 비굴한 정책을 보이지 않는 자신남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대중국에 대하여 친중정책을 탈피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정책을 피며 전정권과 같은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행보를 하고있다.


2023년 8월 중국은 갑자기 문재인정권 내내 내려졌던 한한령이 폴면서 중국인 관관객의 한국방묵을 허용했다.
2023년 8월 중국 시진핑은 갑자기 [[문재인 정권]] 내내 한한령으로 한국을 옥죄었던 정책을 풀면서,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결국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방문이 허용되었다.


거기다가 시진핑의 한국방문을 검토하겠단 의지를 쏠쏠 내비치고 있다. 강한자에게는 공손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거기다가 시진핑의 한국방문을 검토하겠단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강한자에게는 약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들의 마음에는 중화사상이 몸에 베와있다. 수천년을 조공을 받으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만에 젖어 있었으니 왠만한 아부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https://youtu.be/lS0kHmdLKts 시진핑, 대사 70명 한꺼번에…윤 대통령 “시진핑 연내 방한 기대”] / KBS 2023.04.25.
:-[https://youtu.be/lS0kHmdLKts 시진핑, 대사 70명 한꺼번에…윤 대통령 “시진핑 연내 방한 기대”] / KBS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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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중국몽]]
[[분류:중국몽]]
[[분류:일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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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53년 출생 |중국의 정치인| 교육자 |독재자|| }}

2024년 9월 4일 (수) 17:03 기준 최신판


시진핑
习近平
Xí Jìnpíng
20210625511862.jpg
세계일보[1]
중국공산당의 제7대 중앙위원회 총서기
2012년 11월 15일~

후진타오(제6대)

현직
2013년 3월 14일~

후진타오(제6대)

현직
부통령
리위안차오(2013년~2018년)
왕치산(2018년~)
총리
리커창(2013~2023)
리창(2023~)
2012년 11월 15일~

후진타오(제7대)

현직
2008년 3월 15일~2013년 3월 14일

쩡칭훙(제8대)

리위안차오(제10대)
부통령
출생
1953년 6월 15일 (71세)
출생지
사망지
국적
정당
학력
칭화 대학 화학공학 학사
칭화대학 인문사회학원 법학 박사
부모
아버지 시중쉰, 어머니 치신
배우자
커링링(柯玲玲, 이혼)
펑리위안(彭麗媛)
자녀
1녀(시밍쩌)
종교

시진핑(習近平, 习近平, Xí Jìnpíng, 1953년 6월 15일~ )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시진핑 전까지는 덩샤오핑의 유지대로 화평굴기나 도광양회 힘을 숨기고 미국에게 겉으로는 대항하지 않고 평화롭게 힘을 기른다는 식의 정책을 펴 왔지만, 시진핑 이후로는 대국굴기나 중국몽등 그전과는 달리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식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2등이 되면 1등이 가만히 안 두는데 시진핑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식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빨을 드러낸 중국에 대해 미중패권 경쟁이 격화되었다. 미국이 아닌 서방에서도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게 되었다.

시진핑 전까지는 또한 마오쩌둥의 1인 개인 독재 체재의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 중국공산당내에서는 파벌간 집단 지도체재 같은 시스템이 돌아갔는데, 시진핑은 정적들을 다 골로 보내고 3연임에 성공하면서 다시 마오와 같은 1인 독재 황제와 같은 체재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정치적으로 어떻게 보면 다시 마오와 같은 1인독재 체재로 퇴보한 것이다.

시진핑의 일인장기집권이 공고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2020년 기준 [2] 한국과 호주, 영국, 미국 등 9개 나라 국민은 4명 중 3명꼴로 중국에 부정적이었다는 결과다.[3]


일생

중국공산당 8대 원로의 한명이었던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의 아들로 소위 말하는 태자당 출신이다.

제18기,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12년 11월 후진타오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2013년 3월 14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다.

2018년에는 주석 임기제한을 철폐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공당 내에서 상해방(장쩌민), 공청(후진타오), 태자당 등 3파의 권력 균형이 태자당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


당 원로들의 반발에 흔들리는 시진핑의 권력

中 관영매체 “시진핑은 덩샤오핑급 개혁가” 칭송 논평 게재 이틀 만에 삭제
삭제 이유 두고 추측 분분…“혁명원로 2세들 거센 반발 끝에 기사 내려져”
공산당 원로 세력과 시진핑 간 갈등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
- 중국의 개혁개방을 시진핑 업적으로 만들려던 중국 지도부
- 가로막힌 ‘시진핑 우상화’, 당 원로 극한 반발에 좌초
- 무너진 시진핑의 권위, 좌절감에 빠진 지도부

아래는 신화통신 인터넷망에 게재되었다가 반발에 직면하여 내린 글 "改革家习近平"의 전문이다. 이 글은 인민일보 등의 인쇄판에도 실리지 못했으며,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시진핑과 부친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이 개혁개방을 주도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우한 폐렴 여파, 중국 내에서도 시진핑 퇴진 거론

중국 최대 규모인 명태조의 릉보다 훨씬 더 큰 시진핑 부친 시중쉰의 묘

시진핑 부친 시중쉰(習仲勛, 习仲勋, 1913~2002)의 묘역은 4만 에이커(acre)[4]로 홍콩섬 3분의 1규모이며, 중국 최대 황릉인 명태조의 릉보다 4배나 크다고 한다.

시진핑의 한국전쟁관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침공했다'

2010년 10월 중공의 차기 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대한민국이 미군과 함께 북한을 침공하였고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에 자랑스럽게 참가하여 북한을 지켜냈다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 국민들은 물론 각계에서 “한국과 한국민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비난과 사과를 촉구했다.[5]

  • “한국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중조 양국 인민과 군대가 단결함으로써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 시진핑

시진핑의 막말에 한국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은 “6.25 전쟁에 관한 것은 이미 모든 나라가 다 공인을 하고 있는,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더 이상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

조선일보는 “(시진핑이) 한국전쟁을 `침략에 맞선 위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말한 것은 국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60년 전 70만 중공군이 한반도로 밀고 들어와 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비극이 시작됐던 날이 중국에선 역사적 기념일”이다.

국민일보는 “역사를 날조하는 인사가 중국의 차기 지도자라니 대단히 실망스럽다”, “시진핑은 망언을 취소하고 전 세계를 향해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는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드러낸 잘못된 역사인식은 한반도 안보는 물론 세계 평화에 미칠 악영향이 심각할 것”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중요한 나라의 차세대 지도자가 좁은 역사인식과 ‘모택동’적인 사고에 집착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하며 한국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문재인 정권은 중국에 대해서 굴종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문재인은 중국은 "커다란 산이요 한국은 작은 봉우리"라고 아부를 떨었다. 중국의 외교행태를 모르고 저지른 굴종적 자세였다.

문제는 문제인 일행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문재인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드러났다. 국빈방문 열한끼의 식사 중에 절반이 넘는 횟수를 혼식을 했다. 중국의 더 큰 무례는 같이 동행한 취재 기자들이 공안에 의해서 두들겨 맞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데도 문제인 외교부는 중국에 항의 조차도 하지 못했다.

중국은 강한자에게는 공손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들이다.

문재인 정권이 중국 시진핑의 방문을 간절히 앙망하며 아부에 가까운 외교 행태를 보였지만 문재인 집권동안 지진핑은 문재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윤석열 정부의 중국과의 관계는 안보 동맹과 경제동맹은 같이 가야한다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확립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있었던 굴종적인 친중 유화적인 정책을 탈피하였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안미경중이라는 정책도 탈피하였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반일 프레임으로 금이갔던 한·미·일 삼각동맹이 다시금 공고해졌다.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정책을 펴며 문재인 정권과 같은 비굴한 정책을 보이지 않는 자신남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3년 8월 중국 시진핑은 갑자기 문재인 정권 내내 한한령으로 한국을 옥죄었던 정책을 풀면서,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결국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방문이 허용되었다.

거기다가 시진핑의 한국방문을 검토하겠단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강한자에게는 약하며, 약한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들의 마음에는 중화사상이 몸에 베와있다. 수천년을 조공을 받으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만에 젖어 있었으니 왠만한 아부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시진핑, 대사 70명 한꺼번에…윤 대통령 “시진핑 연내 방한 기대” / KBS 2023.04.25.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