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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의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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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6-01-17 1면 "유·피가 傳(전)한 問題(문제)의 電文(전문) : 朴憲永氏談要旨(박헌영씨담요지)"<br>
동아일보 1946-01-17 1면 '''"유·피가 傳(전)한 問題(문제)의 電文(전문) : 朴憲永氏談要旨(박헌영씨담요지)"'''<br>


朝鮮共産黨秘書 朴憲永 (조선공산당비서 박헌영)은 新聞記者會談(신문기자회담)에서 알·하-지 (중장)은 眞實(진실)한 民主主義原則(민주주의원칙)에 依(의)한 團體(단체)는 彈壓(탄압)하고, 反動團體(반동단체)에 對(대)하야는 寬大(관대)한 態度(태도)를 取(취)하고 있다고 말하는 同時(동시)에 民主主義的 獨立朝鮮(민주주의적 독립조선)은 二十年內(이십년내)에 소聯(소련)에 包含(포함)될 것을 主張(주장)하얏다. 그는 또 朝鮮(조선)의 소聯單獨信託統治(소련단독신탁통치)를 贊成(찬성) 하나 朝鮮(조선) 사람 一般(일반)이 卽時(즉시) 소聯聯邦(연연방)이 되는 것을 願(원)치 안는다고 말하였다.<br>
:朝鮮共産黨秘書 朴憲永 (조선공산당비서 박헌영)은 新聞記者會談(신문기자회담)에서 알·하-지 (중장)은 眞實(진실)한 民主主義原則(민주주의원칙)에 依(의)한 團體(단체)는 彈壓(탄압)하고, 反動團體(반동단체)에 對(대)하야는 寬大(관대)한 態度(태도)를 取(취)하고 있다고 말하는 同時(동시)에 民主主義的 獨立朝鮮(민주주의적 독립조선)은 二十年內(이십년내)에 소聯(소련)에 包含(포함)될 것을 主張(주장)하얏다. 그는 또 朝鮮(조선)의 소聯單獨信託統治(소련단독신탁통치)를 贊成(찬성) 하나 朝鮮(조선) 사람 一般(일반)이 卽時(즉시) 소聯聯邦(연연방)이 되는 것을 願(원)치 안는다고 말하였다.<br>
* 출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11700209201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1-17&officeId=00020&pageNo=1&printNo=6867&publishType=00020 유·피가傳(전)한 問題(문제)의 電文(전문)] 동아일보 1946-01-17 1면
* 출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11700209201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1-17&officeId=00020&pageNo=1&printNo=6867&publishType=00020 유·피가傳(전)한 問題(문제)의 電文(전문)] 동아일보 1946-01-17 1면
박헌영의 외신 기자회견이 1월 5일에 있었음에도 UP의 기사가 뒤늦게 1월 17일에 보도된 이유는 UP가 계약한 국내의 『조선통신(朝鮮通信)』이 좌파계열이라 좌파에 불리한 기사는 내보내지 않고 보류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통신』은 1945년 12월 20일 『합동통신』이 AP통신사와 수신계약을 할 때까지 UP통신이 제공하는 외신을 독점, 공급하였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249 조선통신(朝鮮通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분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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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박헌영]]
[[분류:박헌영]]

2022년 4월 28일 (목) 06: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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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6-01-17 1면 "유·피가 傳(전)한 問題(문제)의 電文(전문) : 朴憲永氏談要旨(박헌영씨담요지)"

朝鮮共産黨秘書 朴憲永 (조선공산당비서 박헌영)은 新聞記者會談(신문기자회담)에서 알·하-지 (중장)은 眞實(진실)한 民主主義原則(민주주의원칙)에 依(의)한 團體(단체)는 彈壓(탄압)하고, 反動團體(반동단체)에 對(대)하야는 寬大(관대)한 態度(태도)를 取(취)하고 있다고 말하는 同時(동시)에 民主主義的 獨立朝鮮(민주주의적 독립조선)은 二十年內(이십년내)에 소聯(소련)에 包含(포함)될 것을 主張(주장)하얏다. 그는 또 朝鮮(조선)의 소聯單獨信託統治(소련단독신탁통치)를 贊成(찬성) 하나 朝鮮(조선) 사람 一般(일반)이 卽時(즉시) 소聯聯邦(연연방)이 되는 것을 願(원)치 안는다고 말하였다.

박헌영의 외신 기자회견이 1월 5일에 있었음에도 UP의 기사가 뒤늦게 1월 17일에 보도된 이유는 UP가 계약한 국내의 『조선통신(朝鮮通信)』이 좌파계열이라 좌파에 불리한 기사는 내보내지 않고 보류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통신』은 1945년 12월 20일 『합동통신』이 AP통신사와 수신계약을 할 때까지 UP통신이 제공하는 외신을 독점, 공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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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0년 8월 25일 (화) 08:35744 × 335 (119 KB)JohnDoe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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