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 (→파일의 설명) |
잔글 (→파일의 설명)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한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이북 정당 사회단체 명의의 1946년 1월 2일자 성명서를 보도한 1월 14일자 [[민성일보|민성일보(民聲日報)]] 1면 기사. |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한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이북 정당 사회단체 명의의 1946년 1월 2일자 성명서를 보도한 1월 14일자 [[민성일보|민성일보(民聲日報)]] 1면 기사. | ||
{{인용문|煽動的 謀略家 排除하고 三相會議를 支持한다 | {{인용문|煽動的 謀略家 排除하고<br> | ||
<big>'''三相會議를 支持한다'''</big><br>北部 全革命團體 態度表明 | |||
:........... | :........... | ||
[聲明書] 朝鮮에 關한 三相會議 決定에 對하야 | [聲明書] 朝鮮에 關한 三相會議 決定에 對하야 |
2021년 9월 5일 (일) 17:09 판
파일의 설명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한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이북 정당 사회단체 명의의 1946년 1월 2일자 성명서를 보도한 1월 14일자 민성일보(民聲日報) 1면 기사.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이 발표된 직후인 1945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벽두까지 서울에서는 좌우익이 모두 신탁통치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1946년 1월 3일을 기점으로 좌익들은 돌연 찬탁으로 돌아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좌우 대립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좌익들이 일제히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데는 소련의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많으나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1월 2일에 북한의 김일성 등이 발표한 위와 같은 성명서가 최근 발굴되었고, 아마도 이남 좌익들은 이 성명서를 소련의 의사로 파악하여 1월 3일을 기점으로 태도를 돌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에서는 소련의 지시없이 정당, 사회단체들이 임의로 이런 성명서를 발표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때이다.
북한에서는 이 성명서 발표직후인 1월 5일 소련군이 신탁통치 반대를 굽히지 않는 조만식을 고려호텔에 감금하고, 우파들의 정치활동을 전면금지시켰으며, 2월초에는 김일성을 위원장으로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켜 사실상 분단체제를 만들었다.
- 출처 : 대구시보 1946년 4월 3일 제1면 등 10종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 p.7의 민성일보(民聲日報) 1946년 1월 14일자 1면
1월 2일에 발표한 위 성명서의 간략한 요지는 것은 1949년 북한 내무성 보안 간부학교가 간행한 『해방 후 조선』이라는 책에도 나온다. 북한서 간행한 『해방후 3년간의 국내외 중요일지(解放後 三年間의 國內外 重要日誌) - 1945.8-1948.9』등에도 성명서 발표 사실이 나오지만, 전문을 수록한 북한 문헌은 알려진 것이 없다.
- Item #32 해방 후 조선(1-3분책), 내무성 보안 간부학교 /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pp.34~35 : 국립중앙도서관
- Item #123 해방 후 조선, 북조선 로동당 중앙당학교 조선력사 까페드라 pp.64~65 : 국립중앙도서관
- 『해방후 3년간의 국내외 중요일지(解放後 三年間의 國內外 重要日誌) - 1945.8-1948.9』 민주조선사(民主朝鮮社), 1948.10.31
- 『해방후 4년간의 국내외 중요일지(解放後 四年間의 國內外 重要日誌) - 1945.8-1949.3 (증보판(增補版))』 (평양: 민주조선사, 1949).
파일 역사
날짜/시간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시간의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날짜/시간 | 크기 | 사용자 | 설명 | |
---|---|---|---|---|
현재 | 2021년 9월 5일 (일) 12:20 | 4,116 × 5,625 (1.32 MB) | JohnDoe (토론 | 기여) | 북한의_찬탁성명을 보도한 1946-01-14일자 민성일보 2면 |
이 파일을 덮어쓸 수 없습니다.
이 파일을 사용하는 문서
다음 문서 6개가 이 파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