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줄: 16번째 줄:
* 투항한 안광훈과 정빈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왕년의 상관이었던 [[항일연군]] 제1로군 총사령  양정우(楊靖宇)를 추격하는데 앞장섰고, 양정우는 1940년 2월 23일 사살 당한다.
* 투항한 안광훈과 정빈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왕년의 상관이었던 [[항일연군]] 제1로군 총사령  양정우(楊靖宇)를 추격하는데 앞장섰고, 양정우는 1940년 2월 23일 사살 당한다.
* 그는 1941년 1월 30일 [[오성륜|전광(全光)]] 즉 [[오성륜|오성륜(吳成崙)]]이 귀순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 그는 1941년 1월 30일 [[오성륜|전광(全光)]] 즉 [[오성륜|오성륜(吳成崙)]]이 귀순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안중근|안중근(安重根)]]의 5촌 조카 안호생(安鎬生)으로 판명==


==각주==
==각주==

2024년 9월 19일 (목) 03:32 판

안광훈(安光勳, ? ~ ?)은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제1군 참모장겸 정치위원이었으나 1938년 2월 체포된 후 일제에 투항하여 항일연군 토벌에 협력하였다.

그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 4촌 동생 안봉근(安鳳根)의 장남 안호생(安鎬生)[1]과 동일인물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주요 행적

  • 한국에서 勳으로 쓰는 글자는 중국에서는 勛(勋)으로 쓰므로 중국 문헌에는 그의 이름이 安光勛(安光勋)으로 나온다.
  • 1936년 봄 종래의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은 동북항일연군 제1군으로 개편될 때 양정우(楊靖宇)가 군장(軍長) 겸 정치위원이 되고 안광훈(安光勛)이 참모장이 되었다.[2]
    1936년 봄 종래의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은 동북항일연군 제1군으로 개편되었다. 양정우(楊靖宇)가 군장(軍長) 겸 정치위원이 되고 송철암(宋鐵岩)이 정치부주임, 안광훈(安光勛)이 참모장이 되었다.

    제1군 산하에 2개師를 두었는데 제1사장(第1師長) 겸 정치위원은 정빈(程斌)이고 정치부주임은 한국신(韓國臣)이며 참모장은 이민환(李敏煥)이다. 第1師 산하에는 제3, 4, 5, 6 團이 있었다. 제1군(第1軍) 제2사장(第2師長)은 조국안(曹國安)이고 정치부주임은 전광(全光)이며 第8團을 산하에 두었다. 제1군(第1軍)의 총병력은 전성기에 약 6천여 명에 달하였다. 1936년 5월 요녕성 신빈(遼寧省 新賓(舊興京)) 일대에서 제1군 제3사(第3師)를 편성했는데 사장(師長)은 왕인재(王仁斋)이고 정치위원은 주건화(周建華)이다. 예하에 第5, 7團을 두었다.註 080

    註) 080 : 《東北抗日聯軍鬪爭史簡編) pp.94∼95.
  • 1938년 2월 13일 일제에 투항[3][4]
  • 투항한 안광훈은 일제의 항일연군 토벌에 적극 협력하여 제1군의 제1사장이었던 정빈(程斌)이 1938년 6월30일 투항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 투항한 안광훈과 정빈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왕년의 상관이었던 항일연군 제1로군 총사령 양정우(楊靖宇)를 추격하는데 앞장섰고, 양정우는 1940년 2월 23일 사살 당한다.
  • 그는 1941년 1월 30일 전광(全光)오성륜(吳成崙)이 귀순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안중근(安重根)의 5촌 조카 안호생(安鎬生)으로 판명

각주

  1. 의사 가계도 : 안중근 의사 기념관
  2. 滿洲 抗日聯軍 硏究(金昌順) Ⅵ. 東北抗日聯軍의 各軍 沿革 國史館論叢 第11輯 1990년 07월 15일
  3. 支那及満州ニ於ケル共産運動 昭和 13年(1938년)12月 1日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Ref.B02130120000、執務報告 昭和十三年度東亜局第二課(東亜-4)(外務省外交史料館)」 : p.48에 "1938년 여름 제1군 참모장겸 정치위원 안광훈(安光勳), 제1사장 정빈(程斌) 체포 또는 귀순"
  4. 安光勋,东北抗日联军第1军参谋长,1938年2月13日投日 : X 冬虫亡灵 @chong_dong97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