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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b.history.go.kr/id/kn_023_0080_0020_0020 朝鮮獨立同盟의 活動과 組織에 대하여 (韓洪九) > Ⅱ. 華北朝鮮獨立同盟의 結成과 活動 > 2. 構成員과 活動] 國史館論叢 第23輯 1991-06-29 | * [http://db.history.go.kr/id/kn_023_0080_0020_0020 朝鮮獨立同盟의 活動과 組織에 대하여 (韓洪九) > Ⅱ. 華北朝鮮獨立同盟의 結成과 活動 > 2. 構成員과 活動] 國史館論叢 第23輯 1991-06-29 | ||
{{인용문|[[독립동맹]]의 구성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br> | {{인용문|[[독립동맹]]의 구성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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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all>[註 066] 《주덕해의 일생》(延吉 : 1987) p. 103.</small>}} | : <small>[註 066] 《주덕해의 일생》(延吉 : 1987) p. 103.</small>}} | ||
: 林海와 朱春吉을 별개의 인물로 본 듯하다. | : 林海와 朱春吉을 별개의 인물로 본 듯하다. | ||
* 염인호, [https://search.i815.or.kr/data2/ebook/history/053/index.html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53권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년 9월 | |||
{{인용문|[p.19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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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01월 12일 소련주재 북한대사로 임해(林海)를 임명.<ref name="sov">[http://db.history.go.kr/id/ch_008_1952_01_12_0010 북한연표 > 1952년 01월 12일 소련주재 북한대사로 임해(林海)를 임명.]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f> | |||
==참고 자료== | ==참고 자료== |
2021년 8월 14일 (토) 08:52 판
![동음이의.png](/w/images/thumb/5/5f/%EB%8F%99%EC%9D%8C%EC%9D%B4%EC%9D%98.png/24px-%EB%8F%99%EC%9D%8C%EC%9D%B4%EC%9D%98.png)
임해(任海, 林海, 1900~1962)의 본명은 주춘길(朱春吉)이며,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소련 주재 북한 대사를 지냈다.[1] 그는 활동상으로나 인맥상으로 연안파이지만,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나오고, 소련 대사를 지냈으며, 소련으로 망명한 탓에 소련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생애
- 임해(1900~196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주춘길(朱春吉, 생몰년 미상) 林海]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 林海 일본어 Wikipedia
- 『세대(卋代)』 1966년 9월호 《북한인명록》
임해(林海) : (蘇聯서 成長, 蘇聯派) 五六년 十二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連絡部長. 五八년 九월부터 六○년 八월까지 貿易相. 六一년 九월 農業相. 同년 十월 解任休職.
관련 기록
- 朝鮮獨立同盟의 活動과 組織에 대하여 (韓洪九) > Ⅱ. 華北朝鮮獨立同盟의 結成과 活動 > 2. 構成員과 活動 國史館論叢 第23輯 1991-06-29
독립동맹의 구성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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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蘇聯의 모스크바 동방노동대학(후에 모스크바 동방식민지 반식민지 이익연구학원으로 개칭) 조선반 출신의 공산주의자들―朱德海 方虎山 林海 朱春吉 陳葛秀 李權武 李林 金森 等.註 066
- [註 066] 《주덕해의 일생》(延吉 : 1987) p. 103.
- 林海와 朱春吉을 별개의 인물로 본 듯하다.
- 염인호,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53권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년 9월
[p.190]
[p.298]
- 1952년 01월 12일 소련주재 북한대사로 임해(林海)를 임명.[1]
참고 자료
- 김선호, 『조선인민군 : 북한 무력의 형성과 유일체제의 기원』 (한양대학교출판부, 2020년 03월 25일) p.178 각주 143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인물 중에 “임해" 라는 이름을 쓴 사람은 2명이다. 한명은 일본 출신 임해(任海)로, 본명은 임길봉이다. 그는 북조선로동당에서 농민부 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또 한명은 조선의용군 출신 임해(任海, 1900~1962)로, 본명은 주춘길(朱春吉)이다. 그는 조선독립동맹 제1진으로 귀국해 조선신민당에서 중앙집행위원 겸 간부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1946년 8월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와 1948년 3월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의용군 출신 임해는 조선신민당 간부부장 시절과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 때까지 한자명을 임해(任海)로 표기했다. 그러나 그후에는 한글명과 한자명을 림해(林海)로 표기했다.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서울: 선인 2005, 178쪽).
각주
- ↑ 1.0 1.1 북한연표 > 1952년 01월 12일 소련주재 북한대사로 임해(林海)를 임명.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