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건(李奇建, 1919년 ~ ?)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군인으로 한국전 참전 유공자이다. 준장[1]으로 예편하고[2] 대한재향군인회 회장,[3][4] 내외문제연구소(內外問題硏究所) 소장 등을 지냈다.
그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이나 해방 직후 서울에서 여운형의 비서를 하며 김일성에게 여운형의 밀서를 전달하러 평양도 들락거리다 혼란한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껴 가족들이 있는 북한으로 가게 된다.[5] 이후 북조선 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민군에 들어가 소좌(소령)까지 되었다.[6]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폭압적인 정치 행태에 실망하고, 자신에게도 위해가 다가오자 도로 월남하여 국군에 참여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김일성과 측근의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더러 만났으며 당시 북한 정권 중심부의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후일 이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
그의 말년 소식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자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7]
개요
- 이기건(李奇建, 1919년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 자료
- Lee Kee Keun : Legion of Merit AWARDED FOR ACTIONS DURING Korean War The Hall of Valor
- 李奇建 ja.wikipedia
- 이기건(李奇建, 1919년 ~ ?) 위키백과
해방 직후 북한 정권 내막에 대한 증언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1회 : 序言, 서울과 北韓을 往來하며 時事 7권 5호 (1968.5), 內外問題硏究所, pp.98-108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2회 : 蘇聯軍의 滿洲侵攻과 나의 行跡 時事 7권 6호 (1968.6), 內外問題硏究所, pp.100-109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3회 : 金日成歸順 特別工作隊 이야기 時事 7권 7호 (1968.7), 內外問題硏究所, pp.92-99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4회 : 呂運亨氏의 平壤訪問 內幕 時事 7권 8호 (1968.8), 內外問題硏究所, pp.97-104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5회 : 北韓에서의 市民生活 時事 7권 9호 (1968.9), 內外問題硏究所, pp.88-96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6회 : 詐欺꾼 巢窟이 된 北傀集團 時事 7권 10호 (1968.10) 內外問題硏究所, pp.70-80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7회 : 權威主義가 第一이다 時事 7권 11호 (1968.11), 內外問題硏究所, pp.98-104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8회(최종회) : 惡德商人과 二重間諜틈의 越南길 時事 7권 12호 (1968.12), 內外問題硏究所, pp.104-112
참고 자료
- 인민군서 월남-예비역 준장 이기건씨의 6.25 체험기 LA 중앙일보 1998.06.26
- [이명영] 진위 김일성 열전 (38) - 6사장 김일성의 죽음 중앙일보 1974.07.08
각주
- ↑ 政府人事(정부인사) : ▲陸軍准將(육군준장) 李奇健(이기건) 補師團長(보사단장) 1955.07.03 조선일보 1면
- ↑ 高級(고급) 將校(장교) 五(오)명을罷免(파면) 1958.07.29 조선일보 3면
- ↑ 1960년 4.19 직후 생겨난 새로운 재향군인회로, 대한상무회에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로 개칭한 단체와는 다른 조직이며, 1961년 5.16 직후 해산되었다.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 향군60년사 / 조직정비기 (1960~1969)
- ↑ 在鄕軍人會 結成(재향군인회 결성) 會長(회장)에 李奇建氏(이기건씨) 1960.07.15 경향신문 3면
- ↑ 내가 아는 北傀政權 裏面史 제1회 : 序言, 서울과 北韓을 往來하며 時事 7권 5호 (1968.5), 內外問題硏究所, p.100
- ↑ (3556)-제79화 육사졸업생들 (9) 중앙일보 1982.11.05 : 그밖에도 북괴군 소령으로 있다가 월남, 귀순한 이기건준장(7특·중위)이 있다.
- ↑ 인민군서 월남-예비역 준장 이기건씨의 6.25 체험기 LA 중앙일보 1998.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