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Letters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

개요

한글창제는 비구(女승)가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역사왜곡 영화이다. 개봉이후 평점이 추락했으나 평론가들은 좋게 평하고있다.

시놉시스

“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제점

세종대왕 폄하

기득권과 피지배계층간의 갈등을 그려내고 이를 극복하여 사이다를 날리는 클리셰는 이제 익숙하지만, 강자로 설정된 대상이 세종대왕이라 큰 논란이 있다.
다른 왕이면 모르겠지만 세종대왕이순신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인물중 몇 안되는 존경의 대상이기때문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문화대혁명이 아닐 수 없는데 페미니스트 및 평론가들은 이러한 지적을 구시대 가부장제의 상징인 세종대왕을 옹호하고 약자인 비구니를 욕하는 대중이 나쁘다고 훈계하는 상황이다.

신미(信眉)는 누구인가?

신미(信眉)는 비구니(比丘尼)가 아닌 비구(比丘)로 조선초의 저명한 스님이다. 속명이 김수성(金守省)이며, 충청도 황간현 출신으로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형이다. 세조가 스승으로 모시던 스님이고, 배불적이던 세종이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불교에 귀의하여 스승으로 받들던 스님이다.

또 훈민정음은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인데, 세종실록과 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신미(信眉)를 처음 안 것은 병인(1446년)이다. 따라서 신미는 한글 창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만 세조 때 불경 언해 사업에는 많아 관여하였다.

신미는 속리산 법주사 부속 암자인 복천암에 주로 거주하였으며, 부도도 거기에 세워져 있다.

연관 문서

한국형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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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정치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