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성(金午星)

생애

친일 행적

金午星

金午星은 그 당시 환경이 어떠하였는지, 그 목적이 나변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신』이란 총독부 기관지에 투고는 고사하고 인사소식란에 등재되는 것까지도 일반이 불명예로 생각해오는 때에 사상가로서 3, 4차에 亙하야 기고 발표한 것은 비협력자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물론 각 논문 내용을 볼 때에 친일적 협력적 언사를 피하기에 고심한 듯하나 그 중의 一文을 左에 소개하야 세인의 비판에 임하려 한다.

연월일 / 종별 또는 건명 / 발표처 / 적요
昭16.7.16 / 생활기술문화 / 『每新』 / 결론요지 “생활문화의 기초이념은 무엇보다도 국민적 의식, 일본정신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昭17.4.27-5.5 / 서양과 동양(세계사의 전환) / 『每新』 2回(연재) /
昭18.2.9 / 서사문학의 대망 / 『每新』 / 동아문예진흥에 대한 각오

「西洋과 東洋(世界史의 轉換)」 要旨
(상략) 일본의 국민정신은 결코 배타적이 아니다. 八紘一宇는 국민정신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또한 民族協和의 정신도 된다. 만주국의 탄생은 민족협화의 정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니 저 영미의 농락에서 신음하는 동아의 제 민족을 해방시켜 민족협화의 實을 거둔 것이 만주사변이 가진 세계적 의의인 것이다.

그러한 민족협화의 정신을 토대로 한 동아공영권의 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支那事變은 민족 협화의 정신을 동아공영권의 사상까지 성숙시켰다 할 수 있다. (하략)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