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속 사진의 오른쪽이 북한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이고, 왼쪽은 중국인 친구 장울화(張蔚華, 1913~1937)이다. 이것이 남아있는 유일한 김철주의 사진이라 한다.

김철주(金哲柱, 1916.06.12~1935.06.14)는 김형직(金亨稷, 1894~1926)강반석(康盤石, 1892~1932) 사이의 둘째 아들로, 북한 김일성의 동생이고, 김영주(金英柱, 1920~2021)의 형이다. 대성산혁명열사릉(大城山革命烈士陵)에 묘가 있다.

개요

북한은 그가 형인 김일성에게 한없이 충실했던 영웅적인 혁명투사라고 주장하지만, 10대의 나이에 죽은 탓에 확인할 수 있는 당시 기록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어린 시절 부모와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은 사실로 보이므로 1916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나 1919년 중강진으로 이주하고 이어 만주의 임강현(臨江縣), 장백현(長白縣) 팔도구(八道溝), 무송현(撫松縣) 등지로 부모를 따라 옮겨다니며 학교도 다녔을 것으로 믿어진다.[1] 1926년 부친 김형직이 사망한 후 모친을 따라 안도현(安圖縣)으로 가서 살다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 시기

북한은 김철주가 19살 생일 이틀 뒤인 1935년 6월 14일 안투현 처창즈(安圖縣 車廠子, 安图县 车厂子) 부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숨졌다고 한다.[2] 이와 관련한 해방 직후의 북한 기록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한재덕(韓載德, 1911~1970) 著, 《金日成將軍 凱旋記 : 빗나는 革命家의 집》: 1945년 10월 19일부터 『평양민보(平壤民報)』에 연재.
『문화전선(文化戰線)』, 창간호,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국립중앙도서관) pp.80~87에 전재됨 :
p.82에 김일성의 동생 철주(鐵柱)가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고(연대는 밝히지 않음), 막내동생 영주(永柱)도 행방불명되었다고 하였다. (이때 김영주는 아직 중국에서 평양으로 귀환하기 전이다.)

그러나 한설야가 『조선여성』 1947년 7월호에 기고한 글 《將軍의 아버님과 어머님》에는 김철주가 모친 강반석(1892~1932)이 생존해 있을 때 죽은 것으로 나온다.[1]

1947년은 김일성과 그 일족에 대한 역사 조작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김철주는 16세경인 1932년 무렵 죽은 것이 사실로 보인다. 나중에 북한은 특기할만한 행적도 없이 죽은 그를 김일성 미화에 이용하기 위해 사망 시기도 3년 늦춰 1935년으로 하고, 가공의 행적을 지어내 덧붙인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북한이 제시한 김철주의 사진 에서 안경을 낀 모습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여서 16세는 물론 19세도 훨씬 넘어 보이는데, 사진이 정말 진실한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소련의 고려인 출신으로 88여단 김일성 대대에서 근무하다 6.25 때 인민군 작전국장을 지낸 유성철은 김일성의 형제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3][4]

성주에게는 또 두 동생이 있었다. 철주는 형을 따라 유격대에서 일제와 투쟁하다가 일본의 포위에 걸려 투항하고 말았다. 그는 1936년에 죽었다. 성주는 이 사건으로 하며 《민생단》에 결려 한동안 정신적 타격을 많이 받았었다.

마지막 동생 영주는 일본에 복무하여 하와이까지 갔다가 해방을 하와이에서 맞이하고, 상해를 거쳐 평양에 돌아왔으나 내막은 좀 미미하다고 본다.

그가 돌아온 후 김일성은 그를 소련 유학을 보냈다. 6.25 동란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당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정일이 출세하는 바람에 매장되고 말았다.

유성철은 해방 전 소련군 88여단에서 1대대장 김일성 아래에서 통역관으로 있을 당시에 다른 빨치산들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의 증언으로는 김철주가 일제와 투쟁하다 전사한 것이 아니라 포위되어 투항했다고 한다. 김영주가 하와이에 갔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북한이 선전하는 김철주의 행적

만주 허룽시 처창즈(和龍市 車廠子, 和龙市 车厂子) 항일근거지 표지석 옆에 있는 김철주열사기념비(金哲柱烈士紀念碑).
김철주가 사망했다는 장소 처창즈(車場子)의 한자는 車廠子(车厂子)의 오기이다. 여기에 나오는 김철주의 모습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인다.
허룽시 처창즈(和龍市 車廠子, 和龙市 车厂子) 항일근거지 표지석 옆에 6인 열사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김철주열사기념비(金哲柱烈士紀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처창즈는 안투(安圖, 安图)와 허룽(和龍, 和龙) 양현(兩县)의 경계에 있는데, 원래는 안투현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허룽시(和龙市 卧龙乡 和安村) 소속으로 바뀌었다.[5][6]
車廠子抗日游擊根據地,位於中國吉林省和龍市臥龍鄕和安村
북한이 1988년 제작한 영화 <영생>은 김철주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다.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