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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 Battle of Tabu-dong | |
기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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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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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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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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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15,000여명 |
군사 3개 사단 30,000여명 T-34 전차 34대 |
피해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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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명 사상 |
24,000명 사상 전차 13대 손실 |
홈페이지: 다부동 전적 기념관 |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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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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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작전지역
- 다부동(多富洞) : 대구 북방 22km
- 대구와 최단거리로 방어선 붕괴시 대구사수 불가
- 주요고지
- Δ328, 수암산(Δ518, 숲데미산), 유학산(Δ839)
- 가파른 경사, 병풍을 두른듯한 횡격실 능선
- 기상(1950. 8월 당시)
- 30여 년만의 가뭄과 무더운 날씨(37℃)
- 비전투 손실과 기후에 적응되지 않은 미군에게 큰 타격
주요 전투상황
- 1단계 (1950.8.1~8.12) - 주 저항선(303고지 - 328고지 - 숲데미산 - 유학산)까지의 지연전
- 1사단 12연대 : 상주 낙정리 일대에서 적 2개 대대 저지 → 다부동전투 첫 교전을 승리로 장식
- 1사단 11연대 : 해평(현재 구미지역)일대 주둔
- 1사단 15연대 : 3차에 걸친 적 도하공격 저지, 실패로 369고지 피탈
- 1사단 12연대 : 369고지 탈환
- 2단계(1950.8.13~8.30) - 주 저항선 공방전
- 1사단 : 주 저항선에 3개 연대 배치 → 백병전으로 북한군 저지
북한군 : 837-647고지-진목정까지 진출. 다부동 위협 → 주 저항선 돌파 위기
- 3ㆍ4단계(1950.8.31~9.24) - 반격
- 미 1기병사단 : 174고지-180고지-도덕산 방어 중 315고지 (대구 북쪽 12km 지점) 북한군 1개 대대에 의해 점령
- 미 7기병연대 : 315고지 탈환 → 대구 위기 극복
- 한국군ㆍ유엔군 : 9월16일, 09시 전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 9월 20일, 대구-김천-대전 축선을 따라 북으로 진격
전투결과
- 북한군 8월 공세 저지, 대구사수
- 북한국 전차 30대 격파, 북한군 전사상자 17,500여 명
- (아군피해는 전사상자 1만여명)
- 인천상륙작전(9. 15)의 성공 계기를 마련.
- 반격(북진)을 위한 여건 조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