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타마 싯다르타를 교조로 삼는 종교다.
붇다는 해탈을 위한 인식과 방법으로 사성제 즉 고집멸도를 설했다. 고는 중생의 일반적인 즐거움이나 생사윤회를 포함하며 일체개고라 말한다. 고의 이유는 집착과 갈애다. 고가 멸한 이유로 도에 이르러 생사에 자유로우며 윤회에서 벗어난 경지(중생을 건지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를 열반이라 한다, 이를 위한 수행 방법으로 팔정도와 6바라밀이 있다.
2. 분파
3. 경전체계
4. 논란
석가모니의 입멸시기는 문화권에 따라 약 500여년의 차이가 난다. 공식적인 불기와는 별개로 유물의 표기 및 고승대덕들의 사용을 포함해 전통적인 한국 불교는 21세기를 불기 3천년 이후로 보며, 남방불기가 불기를 대표하게된 1956년 세계불교대회의 일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경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 불교학계에 영향력이 있던 일본이 자신들의 신도의 역사를 불교의 상위에 올려 놓기 위한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통불교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을 포함 현대 주류 불교학계에서는 특정 문화권에 전래되는 석가모니의 일부의 친설만을 발굴하려는 태도나 그것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협소한 관점으로 인식한다. 화엄경을 붇다가 설한 최초이자 완전한 가르침으로, 그 이후 45년간의 붇다의 가르침은 초보자에서 상급자를 위한 단계적 버젼으로 인식하는 대승불교에서는 아함경을 비롯한 이른바 원시불교, 초기 경전에 대해 그것에도 이미 대부분의 공, 중관 등 대승불교의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교상판석이라는 건데 불교가 처음 생긴 인도와 달리 불교가 수입된 중국에서는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이 거의 동시에 수입이 되었다. 이래서 화엄은 정각을 깨닫고 초기에 설한 경전(화엄경 텍스트안에서 정각 직후에 설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초전법륜의 내용이나 화엄경에서 설하는 대상이 석가모니가 교단을 만들고 난 이후에 시간이 꽤 지나서 출가한 제자들까지 포함 되어 있고, 대승경전 자체가 문헌학적으로 입멸이후 약 500년 이후에 나온 것이기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이후 화엄경이 너무 난해하니 근기에 맞춰서 아함경 그리고 맨 마지막에 법화경을 설했다 하는데 문헌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위 문단과 같이 불교를 삶에서 신앙 혹은 수행의 형태로 수용하지 않고 연구하는 문헌학자들을 위시하여 일본학자 및 영어권 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그 대표적인 비판과 반성 역시 일본학자가 했다. 즉 오늘날 불교계와 불교학계에서는 이른바 불교신도가 아닌 초기 서양 연구자들과 일본학자들의 연구는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실천적 인식의 토대가 아닌 문헌학적 취미에 근거하고, 철학방법과 인식론적 한계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 깊이 또한 얕고 뒤틀려 있으며 부정확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불교 내부에서 실제적인 신행을 해왔다면, 화엄경을 붇다가 말없는 말로 최초에 설했다는 것쯤은 자연히 알 수 있게 되며, 이후 수행자들과 연구자들이 붇다의 진의를 깊이 발굴하여 경전을 성립시켰으며, 최근 불교학에서 밝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동아시아에서 선의 발흥은 신라불교가 종합하여 성립한 한국의 화엄학에 근거한 것 또한 알게 된다.
한편, 대승불교가 이른바 아비달마 등 초기불교와 함께 발달했다는 것을 (특히 한국에서)외면하며 초기불교 장사를 하고 있는 풍경은 지구촌의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미얀마에서 현대에 공산주의정권이 불교와 국민을 길들이고자 하는 요구에 따라 만든 '위빠사나'는 붇다의 위빠사나와 다르며 인간의 의식에 마약과 같이 작용한다고 비판 받는다. 현대에 유행하는 명상 중 붇다가 가르친 불교명상과는 다른 이른바 마약 같은 평화를 추구하는 명상방법은 많은 경우 좌파와 관련이 있다. 이들이 주로 내세우는 구호는 '평화'나 '행복' 등인데, 붇다는 물론 그 이후 어떤 경율론에도 그러한 단어나 사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수행자는 수행을 해 나아가며 인식의 적멸, 관점의 평등, 감정의 지복을 체험하지만 그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붇다는 최후의 가르침으로 자기 스스로와 법에 의지하라고 했으며, 불법에서의 불(佛)은 언어 이전의 진리를, 법(法)은 그것의 인식을 말한다. 때문에 붇다 이후 수행자들이 연구하고 집대성한 주요한 경율론이 모두 팔만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다. 불교 내부적으로 본다면, 경율론의 형성 과정에서 이미 불교 내부에서 충분히 고도의 체계적인 논의를 거쳐 편집방향이 결정되어 왔다. 즉 시대에 따라 진리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서술이 추가되어야 하는 경우 깊은 깨달음을 성취한 수행자들에 의해 그것이 진리에 부합되는가가 엄밀히 따져졌으며, 이어서 그것에 대한 수많은 연구서가 발간되고 각 종파와 학파간에 치열하게 논쟁하여, 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방대한 불교경전이 성립된 것은 불교 내에서는 자연스러운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현대의 어떤 일본학자가 대승비불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뒤 대부분 불교계 밖(특히 한국)에서 이를 매우 특이하고 새로운 주장인 것처럼 복제재생산하여 대중이 불교를 접하는 중립적인 문서마다 그것이 불교의 흠결인 양 소개하고 있다. 불교는 광범위한 문화권을 통해 발달한 깊고도 광대한 세계다.
서양 일부 학자는 싯다르타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학설을 펴기도 했다. 한편 석가모니의 후대인 아쇼카왕 시대에 이 지역은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기에 세금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내용의 사리탑이 발견되었다.
한국에서는 불교 교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복을 빌고 소원성취를 바라는 신도들의 풍토가 많아 흔히들 기복불교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도 또한 참선과 같은 불교 수행방편 중의 하나로 인식하거나 수행법의 고하를 막론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신심이 중요하다는 관점이 있기도 하다. 기도라는 단어나 관점과 양식은 확실히 불교 경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기도는 구한말 이전에는 토속신앙에서, 이후에는 기독교 전통에서 빌려와 습합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
흔히 일본에 한국과 같은 불교문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현대의 일본은 불교가 장례를 도맡아하게 되어, 불교=장례처럼 인식이 되어 장례불교라고도 불린다. 이와 함께 한국 불교계에서는 일본에 대해 (마치 일본에 기독교도가 거의 없다시피한데도 신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불교학이 발달했을 뿐 불교의 핵심인 일반대중의 실천 및 그 인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일례로 구한말 구체화된 민족주의적 선가(仙家)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의 고승 탄허의 경우 그의 저술에서 일본의 경전 해석을 철저히 배제하고 전혀 참고하지 않기도 했다.
윤회설이라는 것은 내세에 현세의 선행이나 죄악이 보상을 받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 동기를 주는 교리이기도 하지만, 신분제를 합리화 하기 좋은 교리이기도 하다. 동북아시아에 왕들이나 귀족들이 불교를 수입하는 데 호의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윤회설은 불교 이전의 고대 인도에서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했으며 이는 불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붇다는 깨달은 후 존재와 세계를 관찰하여 업에 의한 윤회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최초로 가르쳤으며 이는 무아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 이후 붇다의 가르침인 업감연기는 인도 전역에 퍼져나가 인도 대륙의 다신교 토속신앙인 이른바 힌두교에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인도의 권력자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윤회설을 신분제 유지를 위해 사용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근현대에 들어 서양의 신비주의가 소개하고 대중문화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후 다시 전세계로 퍼져나간 전생-윤회 개념 역시 불교의 무아와 업감연기의 가르침을 빼고, 고정적인 자아(영혼)가 있어서 그것이 윤회한다고 하는 서양 종교 및 철학의 실체론(곧 신 중심주의) 전통의 영향이 묻은 것이라고 학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붇다 가르침의 목적은 깨달음을 통해 윤회를 벗어나자는 데에 있다.
불교의 성립은 당시 인도의 정치경제적 변화인 상업의 발달 및 공화제의 부흥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발해 및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한 조선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상업의 발달과 활발한 국제교역이 이뤄진 사실을 상기하면, 왕족과 귀족이 윤회설을 위해 불교를 차용했다기 보다는 당시 상업을 기반으로한 일반대중이 먼저 불교의 자유로운 사상을 수용한 뒤 왕실이 불교를 마지못해 승인한 것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신분제 강화에 불교의 윤회설을 마치 인도의 권력자들이 그러했듯 왜곡하여 사용한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 만을 침소봉대하여 역사적 맥락을 왜곡하기 보다는, 불교가 가진 깊이있고 선진적인 사상과 문화가 삼국의 사회발전과 어울리는 상황이었음을 주목하는 것이 본질에 가까운 해석이다. 제 아무리 권력이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 해도 대중과 시대정신의 수용 및 지지가 없다면 유지될 수 없다. 실제로 불교 이후 인도대륙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순장 등의 열등한 종교 의식인 희생제의가 자취를 감춘것에서 알 수 있듯 불교는 기득권의 권력을 옹호하기 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존엄과 자유와 이어지는 가치를 추구한다. 오늘날 서구 금융권력과 결부된 음모론에서는 끊임없이 서구 고대종교와 연결된 희생제의가 언급되는 열악한 인간 의식 미개발의 상황에서 불교와 같은 고등종교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불교는 그 성립에서부터 신분제와 남녀차별을 타파하였으며,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의 신분제, 가부장제, 남녀불평등, 엄숙주의, 근본주의, 전체주의는 물론 기타 폭력과 금권과 권력이 매개한 사회구조 등을 거치면서도 (불교계 내부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까지 긍휼한 인간존중과 혁신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거의 유일한 종교다.
5. 나라별 불교 국가 순위
자료에 따르면, 상위 7개 국가는 전체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불교를 믿고 있으며, 이 중 캄보디아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인구 수 기준으로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차지하고 있다.#
5.1. 불교 인구 비율 기준
불교 신자는 비율로 보면 캄보디아, 태국이 90퍼센트이상으로 많다. 그 뒤로 미얀마, 부탄 순이다.
- 1 캄보디아 96.8%
- 2 태국 92.6%
- 3 미얀마 79.8%
- 4 부탄 74.7%
- 5 스리랑카 68.6%
- 6 라오스 64.0%
- 7 몽골 54.4%
- 8 일본 33.2%
- 9 싱가포르 32.2%
- 10 한국 21.9%
5.2. 불교 인구 수 기준
인구 수 기준으로는 중국이 약 2억 5천만으로 압도적으로 1위이고 태국, 미얀마, 일본 순으로 많다.
- 1 중국 약 2억 5,470만 명
- 2 태국 약 6,610만 명
- 3 미얀마 약 4,140만 명
- 4 일본 약 4,140만 명
- 5 캄보디아 약 1,570만 명
- 6 베트남 약 1,560만 명
- 7 스리랑카 약 1,540만 명
- 8 한국 약 1,090만 명
- 9 인도 약 1,010만 명
- 10 말레이시아 약 520만 명
6. 함께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