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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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형태 |
민주공화정 -대통령제 (19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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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대통령 |
이승만 (19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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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령 |
이동녕 (192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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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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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194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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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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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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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후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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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
1919년 ~ 19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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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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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가 |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는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대항햐기 위하여 설립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수립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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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
여권 발행(?)
상해 임시정부 외교부에서 대한민국 2년 (1920년) 4월 22일 김정극(金正極)에게 발급한 여행증서 제14호가 1986년에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영어나 불어로 Passport라고 적혀 있으나, 김정극의 신원은 영어 등 외국어로는 나와있지 않아 제대로 된 여권으로 볼 수 없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현존하는 유일한 여권 비전성남 2022-02-24
- 성남광복회 김영강 회원, 선친 김정극 지사의 여권 소개
이 여권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국가는 전무했으므로 이 증서가 실제로 여권의 구실을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극이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기 위해 발급받은 여권이라고 하는데, 그는 해당 여권을 미국에 두고 왔다. 실제로 통용된 여권이라면 입출국시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므로 미국에 두고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에 의하면 여권은 1986년 미국의 양주동 (梁柱東, 1903~1977) 박사의 지인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김정극은 1931년 귀국하면서 시카고의 양주은(梁柱殷, 1879~1981)[2][3]씨 댁에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으므로[4][5] 여권을 그 집에 두고 온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여권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 입출국에는 중국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반
국무총리제 (1919. 4 ~ 1919.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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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1919. 9 ~ 192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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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령제 (1925. 7 ~ 1927.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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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제 (1927. 8 ~ 1940.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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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제 (1940. 10 ~ 1948. 8.) |
국무총리제 (1919. 4 ~ 1919. 9)
대통령제 (1919. 9 ~ 1925. 7)
국무령제 (1925. 7 ~ 1927. 4)
- 1대 국무령 이상룡 (1925년 7월 7일 ~ 1926년 2월 18일)
- 2대 국무령 홍진 (1926년 7월 7일 ~ 1926년 12월 9일)
- 3대 국무령 김구 (1926년 12월 10일 ~ 1927년 4월 11일)
국무위원제 (1927. 8 ~ 1940. 10)
- 1대 주석 이동녕 (1927년 8월 19일 ~ 1933년 3월 6일), 주석 겸 법무부장
- 2대 주석 송병조 (1933년 3월 6일 ~ 1933년 12월 30일), 주석 겸 재무부장
- 3대 주석 양기탁 (1933년 12월 30일 ~ 1935년 9월 1일), 주석 겸 군무부장
- 4대 주석 이동녕 (1935년 11월 2일 ~ 1940년 3월 13일)
주석제 (1940. 10 ~ 1948. 8.)
각주
- ↑ 자세한 사용법은 틀:이전 나라 정보 참조.
- ↑ 양주은(梁柱殷)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공훈전자사료관
- ↑ 샌프란시스코에서 평생 독립운동을 도운 양주은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 ↑ 人事欄 - 김정극씨 十여년만에 귀국 신한민보 1931-04-30, 01면 05단 : 공훈전자사료관
- ↑ 人事欄 - 김정극씨 十여년만에 귀국 신한민보 1931-04-30, 01면 05단 :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