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찌민 Hồ Chí Minh | |
개인 정보[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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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0년 5월 19일 |
출생지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응에안 성 남단현 안츄마을 |
사망 |
1969년 9월 2일 |
사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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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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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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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아버지 응우옌신삭, 어머니 호앙띠로안 |
종교 |
없음 (무신론) |
별명 |
호 할아버지(Bác Hồ) |
胡志明
호지명
월어: Hồ Chí Minh
개요
호지명(胡志明, 1890~1969)은 월남의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 월남의 초대 국가주석이다. 월남인들에게는 호할아버지(Bác Hồ, 박 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호지명이라는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
1975년 월맹이 월남을 적화통일한 후 월남의 수도였던 시곤(柴棍, Saigon)을 그의 이름을 따서 호지명으로 바꾸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해서 서울을 김일성시로 바꾼 거랑 비슷하다.
좌익에서는 호치민이 청렴했고, 소탈했다며 미화하고 추앙하지만,
호치민 개인은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을지 모르나, 그는 지도자로서 베트남을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마치 업적은 말도 못하면서,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만 부각하면서 미화 찬양하는 거랑 비슷하다.
물론 노무현이 마오나 김일성급은 아니다. 노무현은 미국의 카터같은 인물에 가깝다.
지도자는 개인적인 면모도 평가요소지만, 그보다는 업적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괜찮았는지 모르나 지도자로서 결과가 안 좋았던 사람이랑, 인간적으로 결함은 있었지만 통치 결과가 좋았던 사람 중에 당연히 후자를 높이 평가하고. 전자를 평가 절하해야 한다.
히틀러도 동물을 사랑했고, 일평생 동물보호에 힘썼다.
김일성도 자기 측근은 챙겼고, 도조 히데끼도 부하장병들에게 잘해서 부하들에게 존경받는 상관이었다.
지미 카터는 퇴임 이후에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현재 미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인기가 바닥급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국인들은 대통령은 재임 중 업적으로 평가해야지 퇴임 이후는 평가대상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잘못된 사상인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으니, 인간적으로도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독재자이자 학살자다.
한창 베트남전 반전 운동 등이 심할 때는 미국 대학가에서 마오쩌둥과 호치민이 엄청 빨렸는데,
정작 한 베트남학자는 독재자라도 박정희는 번영의 기초를 쌓았고, 호치민은 빈곤의 기초를 닥았다고 평한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03081901010732020002
문재인 등이 그를 뭔 전세계가 존경해야 한다고 했는데 리영희 책에서 북월을 엄청 빨아줬던 영향 때문인듯 싶다. 뭐 월남이 패망할 때 리영희의 예측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며 희열까지 느끼신 분이니.
리영희는 중국의 문혁도 엄청 빨아줘서, 노무현이 중국인 중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독재를 하고, 국민과 나라를 가난하게 하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도 공산주의자면 추앙하는 게 리영희와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떠받드는 좌파들이다.
베트남 사람들 중 일부는 우리가 적화통일만 안됐어도 한국보다 더 잘살았다는 사람도 있다. 호치민 때문에 베트남을 개혁개방전 몇십년 이상 후퇴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나도는 호지명 관련 괴담
"호지명이 목민심서 애독" 주장은 허구
한국에는 호지명이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애독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사실이 아니다. 목민심서는 왕조시대 관리들의 바람직한 시정에 대한 참고서로 내용상으로도 공산주의자였던 호지명이 애독할만한 책도 아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시인 고은의 1988년 한겨레신문 칼럼이 이런 괴담의 최초 출처인 듯하다. 그는 1994년 경향신문 기사에도 이와같은 말을 썼다.
- [한겨레 논단 / 고은 칼럼] 손문과 호지명과 김구 1988.11.03 한겨레신문 1면
- 고은, "나의 산하 나의 삶 - 혁명가의 죽음과 시인의 죽음", 경향신문 1994년 7월 17일 9면
- '호찌민은 소년시대 극동의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구해 읽고 한동안 기일을 알아 추모하기를 잊지 않기도 했다.'
이어 1992년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머리말에서 등장한 후, 이것을 1993년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에 언급하면서 급속도로 호치민 목민심서 괴담이 세간에 퍼지게 되었다.
- 최근식, 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 여부와 인정설의 한계, 평화학연구 제11권 제3호 2010.9 pp.329 - 353
- [박종인의 땅의 歷史] 베트남 국부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 거짓말입니다! 조선일보 2019.10.22.
- 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사실인가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한국의 길 2021.07.05
- “작고한 베트남의 호치민은 일생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1993년에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남도답사 1번지’의 강진 편에서 정약용을 소개했다.
- “심지어는 월맹의 호지명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꼽은 사실, 이런 것으로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 싶다.”
2017년 11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열린 ‘호치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 축하 영상 메시지에서 말했다.[2]
- “베트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호치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 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2004년 6월 4일 다산연구소가 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하고, 그 한 달 뒤쯤인 그해 7월 9일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같은 괴담을 사실인 것처럼 실었다. 후일 그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 『목민심서』와 호치민 장성군민신문 2019.12.02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그 직전인 2004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을 보고 사실로 잘못 알고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광장/고승철 칼럼] 목민심서를 펼쳐보라 동아일보 2004년 6월 22일
다산연구소 이사장조차 잘못된 괴담의 출처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애독한 적이 없다는 것은 베트남의 호치민 박물관장이 확인해 주었다.
- <호찌민 주석 옆에는 목민심서 없다> 연합뉴스 2006.01.09.
-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애독했다고? 시사IN 2018.07.24
베트남 현지에서 근거없는 괴담으로 확인했음에도 이후로도 계속 괴담이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다.
- [팩트체크] 베트남 國父의 '목민심서 사랑' 사실일까? 연합뉴스 2019-12-07
- 호치민박물관 "그에 대해 들었지만 어떤 증거도 없어"
- 국내 연구자들도 "근거 확인 못해"…풍문일 가능성
- 베트남 학자는 왜 한국의 다산학 연구자에 꽂혔나 중앙일보 2021.12.26
호지명이 박헌영과 찍었다는 사진은 가짜
1929년 모스크바 유학시절 박헌영과 호지명이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아래 중앙일보 기사가 한 예이다.
- 상해서 귀국하던 ‘조선 사회주의 삼총사’ 일제에 체포 중앙일보 2012.04.21

아래 한국일보 기사도 같은 사례이다.
- [이덕일의 천고사설] 호찌민(胡志明)의 한국인 동창생들 한국일보 2015.09.03
이 사진의 좌우가 반전된 사진도 많이 유포되어 있다.
이 사진의 출처는 2004년에 임경석 교수가 출간한 『이정 박헌영 일대기』인데, 임경석 교수는 이 사진에 ‘주세죽(박헌영의 아내)의 유품에서 - 박비비안나(박헌영의 딸) 제공’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이 사진에 나오는 특정 인물을 호치민이라고 처음 지목한 것은 2009년 안재성의 『박헌영 평전』(p.4)에서로 보이며,[3] 사진 설명에 ‘1929년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단야, 박헌영, 양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뒷줄 맨 왼쪽은 베트남의 호치민,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세죽이다.’라고 하였다.[4] (안재성은 뒷줄 맨 왼쪽이 호치민이라 하였으나, 맨 오른쪽이 호치민이라고 통용된다.) 나아가 안재성은 이 책에서 박헌영이 호치민에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전해주어 호치민이 이를 애독했다는 근거없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박헌영과 호치민의 연보를 살펴보면 그들이 생전에 만났을 가능성은 없으며, 박헌영이 호치민과 함께찍었다는 이 사진은 명백히 가짜이고, 박헌영이 호치민에게 목민심서를 전해준 일도 없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사진 속 여성들 대다수가 중국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이 사진이 모스크바 아닌 중국에서 찍은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 [역사이야기] 박헌영과 호치민의 만남은 가짜뉴스다 천지일보 2021. 5. 27.
- [김세곤의 반(反)부패 칼럼] 박헌영은 호찌민에게 '목민심서'를 기증했나(1) 글로벌경제신문 2024.01.29
- [김세곤의 반(反)부패 칼럼] 박헌영은 호찌민에게 '목민심서'를 기증했나? (2) 글로벌경제신문 2024.02.23
- [김세곤의 반(反)부패 칼럼] 박헌영은 호치민에게 『목민심서』를 기증했나? (3) 글로벌경제신문 2024.03.04
- [김세곤의 반(反)부패 칼럼] 호찌민(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명백한 허위이다. 글로벌경제신문 2024.03.11
정병준도 2015년 펴낸 아래 저서에서 사진 속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다른 사진과 여러 자료 분석을 거쳐 이 사진이 1929년 모스크바가 아닌 1921년 겨울 상하이의 한국 유학생들을 찍은 것으로 결론내린다.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 정병준,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웹진나비 2016. 1. 27.
- 남·북과 미국의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경계인의 삶… 격동의 시대 수레바퀴에 으깨진 한 여인의 비운 경향신문 2015.03.20
- ▲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지음, 돌베개< 2015)
- [현 앨리스(1903~1956?)는 현순(玄楯, 1880~1968)[5]의 딸로 위 사진의 둘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이다.[6]]
- 김씨일가의 숙청역사-박헌영 숙청(3) RFA 2018.04.24

이낙연 한국 총리의 호지명 숭배
2018년 9월 월남 방문 때 방명록에 호지명을 극도로 찬양하는 글귀를 쓰고 서명했다.
- 이총리 "방명록 글 왜곡한 가짜뉴스…야비한 짓 멈추길" 연합뉴스 2018-09-28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공산화를 보고 희열을 느꼈다”는 문재인과 오십보 백보이다.[9]
같이보기
- 반제투쟁
- 호찌민 위키백과
- 상해서 귀국하던 ‘조선 사회주의 삼총사’ 일제에 체포 [중앙선데이] 2012.04.21 267호 26면
- 호지명이 1929년 모스크바 공산청년대학(국제레닌학교)에서 조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옴.
각주
- ↑ 자세한 사용법은 틀:공직자 정보 참조.
- ↑ 문 대통령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 지고 있다” 한겨레신문 2017-11-15
- ↑ 박헌영 평전 안재성 저, 실천문학사,| 2009년 08월 28일
- ↑ [김세곤의 반(反)부패 칼럼] 박헌영은 호치민에게 『목민심서』를 기증했나? (3) 글로벌경제신문 2024.03.04
- ↑ 현순(玄楯)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한국의 마타하리’로 불린 여인, 현앨리스의 비극적 가족사 한겨레신문 2015-03-19
- ↑ “야비한 짓 멈춰라” 이낙연 총리가 분노한 가짜뉴스 위키트리 2018-09-28
- ↑ 이낙연 방명록 ‘주석님’ 근거삼아 ‘가짜뉴스’ 유포 …“김정은에 쓴글” 황당 동아일보 2018.09.28
- ↑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 (가교, 2011년 09월 16일)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