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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 중 하나.1896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로 나뉘어졌다. 서쪽은 [[평안도]]와 접하고, 남쪽은 [[강원도]]와 접하며, 북쪽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조선팔도]] 중 하나.1896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로 나뉘어졌다. 서쪽은 [[평안도]]와 접하고, 남쪽은 [[강원도]]와 접하며, 북쪽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함경북도의 백두산 인근과 함경남도의 북부지역 및 평안북도의 동부 일부를 떼어내서 양강도를 신설했다.


함경북도는 양강도와 함께 북한에서 김씨 왕가에게 찍힌 사람들이 유배로 많이 가는 곳이었다.
함경북도는 양강도와 함께 북한에서 김씨 왕가에게 찍힌 사람들이 유배로 많이 가는 곳이었다. .


김정일은 함경도와 양강도는 북한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탈북자들도 함경북도와 양강도 출신들이 많다.
김정일은 함경도와 양강도는 북한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함경도 사람은 간부로 쓰지 말라는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하지만 김일성 일족은 양강도에 속한 백두산 일대를 [[김일성]]의 항일유적지라며 성역화하고, [[백두산 밀영|가짜 김정일 생가]]도 백두산에 만들어 놓았다. 자신들 일족을 [[백두혈통]]이라 칭하며 신격화하고 있다
 
탈북자들도 함경북도와 양강도 출신들이 많다.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한데. 조사의의 난등 반란이 많이 일어나서 조선시대에도 함경도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한데. 조사의의 난등 반란이 많이 일어나서 조선시대에도 함경도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대신 전주 쪽은 왕조의 고향이라고 취급이 좋았다. 이성계 훨씬 윗대(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이안사)에 기생문제 등으로 갈등이 생겨 이성계의 조상들은 전주에서 북쪽으로 이주하고 이후 몽골에 붙었다


함경북도에 영역 중에서는 고려 조선(6진개척) 등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척해서 여진족에게 뺏은 땅이 있다.   
함경북도에 영역 중에서는 고려 조선(6진개척) 등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척해서 여진족에게 뺏은 땅이 있다.   




조선 팔도 중 면적이 가장 크다. 개마고원등이 위치 해 있어 산세가 험하고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다. 


살기가 녹록한 곳은 아니라서, 이쪽 출신여자들은 생활력이 좋은 이미지가 있다 대신 드세고 억센 이미지 또한 있다. 이쪽 사투리 또한 좀 비슷한 이미지다.   
조선 팔도 중 면적이 가장 크다. 개마고원등이 위치 해 있어 산세가 험하고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다. 그 유명한 아오지 탄광이 함경도에 있다. 
 
살기가 녹록한 곳은 아니라서, 이쪽 출신여자들은 생활력이 좋은 이미지가 있다. 대신 성미가 급하고, 드세고 억센 이미지 또한 있다. 이쪽 사투리 또한 좀 비슷한 이미지다.(위치적으로 가까운 연변사투리와 비슷하다)    


함흥냉면이나 함흥차사의 함흥시가 함경남도에 있다. 이쪽 실향민들이 회국수를 남한에 정착해서 만든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보통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으로 부르지 않고 회국수나 녹마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나 함흥차사의 함흥시가 함경남도에 있다. 이쪽 실향민들이 회국수를 남한에 정착해서 만든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보통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으로 부르지 않고 회국수나 녹마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분류:지리]][[분류:행정구역]]
 
 
==[[조선 팔도]]==
*[[강원도]](관동)
*[[경기도]](기전)
*[[경상도]](영남)
*[[전라도]](호남)
*[[충청도]](호서)
*[[평안도]](관서)
*[[함경도]](관북)
*[[황해도]](해서)
 
 
{{각주}}
 
[[분류:북한의 지리]][[분류:북한의 행정구역]]

2024년 6월 15일 (토) 14:24 기준 최신판

한자: 咸鏡道

개요

조선팔도 중 하나.1896년 함경북도함경남도로 나뉘어졌다. 서쪽은 평안도와 접하고, 남쪽은 강원도와 접하며, 북쪽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함경북도의 백두산 인근과 함경남도의 북부지역 및 평안북도의 동부 일부를 떼어내서 양강도를 신설했다.

함경북도는 양강도와 함께 북한에서 김씨 왕가에게 찍힌 사람들이 유배로 많이 가는 곳이었다. .

김정일은 함경도와 양강도는 북한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함경도 사람은 간부로 쓰지 말라는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하지만 김일성 일족은 양강도에 속한 백두산 일대를 김일성의 항일유적지라며 성역화하고, 가짜 김정일 생가도 백두산에 만들어 놓았다. 자신들 일족을 백두혈통이라 칭하며 신격화하고 있다

탈북자들도 함경북도와 양강도 출신들이 많다.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한데. 조사의의 난등 반란이 많이 일어나서 조선시대에도 함경도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대신 전주 쪽은 왕조의 고향이라고 취급이 좋았다. 이성계 훨씬 윗대(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이안사)에 기생문제 등으로 갈등이 생겨 이성계의 조상들은 전주에서 북쪽으로 이주하고 이후 몽골에 붙었다

함경북도에 영역 중에서는 고려 조선(6진개척) 등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척해서 여진족에게 뺏은 땅이 있다.


조선 팔도 중 면적이 가장 크다. 개마고원등이 위치 해 있어 산세가 험하고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다. 그 유명한 아오지 탄광이 함경도에 있다.

살기가 녹록한 곳은 아니라서, 이쪽 출신여자들은 생활력이 좋은 이미지가 있다. 대신 성미가 급하고, 드세고 억센 이미지 또한 있다. 이쪽 사투리 또한 좀 비슷한 이미지다.(위치적으로 가까운 연변사투리와 비슷하다)

함흥냉면이나 함흥차사의 함흥시가 함경남도에 있다. 이쪽 실향민들이 회국수를 남한에 정착해서 만든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보통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으로 부르지 않고 회국수나 녹마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선 팔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