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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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 기사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 기사.
 
* 출처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47102100239101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7-10-21&officeId=00023&pageNo=1&printNo=7490&publishType=00010 북행(北行) 불과(不過) 1 % 조선인 이주 비교(朝鮮人 移住 比較)] 1947.10.21 조선일보 1면
:AP 통신 기자가 한국에서 조사하여 보도한 기사의 인용으로 당시까지 월남민은 150만명이나 월북한 사람은 그 1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사에 언급한 [https://en.wikipedia.org/wiki/Anna_Louise_Strong Anna Louise Strong (1885~1970)]은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1947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으나 남한은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그녀가 남한에 대해 한 말들은 근거가 없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기행문을 쓰기도 했다.
 
[[분류:월남자]]
[[분류:월북자]]
[[분류:해방정국]]
[[분류:북한의 소련군정]]

2023년 2월 23일 (목) 18:41 판

파일 설명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AP 통신 기자가 한국에서 조사하여 보도한 기사의 인용으로 당시까지 월남민은 150만명이나 월북한 사람은 그 1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사에 언급한 Anna Louise Strong (1885~1970)은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1947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으나 남한은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그녀가 남한에 대해 한 말들은 근거가 없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기행문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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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3년 2월 23일 (목) 18:38981 × 1,817 (369 KB)JohnDoe (토론 | 기여)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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