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글 (→여권 발행(?)) |
잔글 (→주요 활동) |
||
81번째 줄: | 81번째 줄: | ||
* [https://search.i815.or.kr/sojang/read.do?isTotalSearch=Y&doc=&adminId=1-004036-000 김정극 대한민국임시정부 여행증서(여권)(1920.4.22.)] | * [https://search.i815.or.kr/sojang/read.do?isTotalSearch=Y&doc=&adminId=1-004036-000 김정극 대한민국임시정부 여행증서(여권)(1920.4.22.)] | ||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국가는 전무했으므로 이 증서가 실제로 여권의 구실을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극이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기 위해 발급받은 여권이라고 하는데, 그는 해당 여권을 미국에 두고 왔다. 실제로 통용된 여권이라면 입출국시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므로 미국에 두고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에 의하면 여권은 1986년 미국의 [ |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국가는 전무했으므로 이 증서가 실제로 여권의 구실을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극이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기 위해 발급받은 여권이라고 하는데, 그는 해당 여권을 미국에 두고 왔다. 실제로 통용된 여권이라면 입출국시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므로 미국에 두고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에 의하면 여권은 1986년 미국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758 양주동 (梁柱東, 1933~1977)] 박사의 지인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김정극은 1931년 귀국하면서 시카고의 양주은씨 댁에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으므로 여권을 그 집에 두고 온 것이 확실해 보인다.<ref>[https://www.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67973988 人事欄 - 김정극씨 十여년만에 귀국] 신한민보 1931-04-30, 01면 05단</ref> 이 여권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 입출국에는 중국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
==수반== | ==수반== |
2024년 8월 27일 (화) 11:36 판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 |||||
|
|||||
정부 형태 |
민주공화정 -대통령제 (1919-25) |
||||
임시 대통령 |
이승만 (1919-25) |
||||
국무령 |
이동녕 (1927-33) |
||||
주석 |
|||||
김규식 (1940-47) |
|||||
기본 정보 |
|||||
수도 |
|||||
이전 이후 국가 |
|||||
존속기간 |
1919년 ~ 1948년 |
||||
이전 국가 |
|||||
이후 국가 |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는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대항햐기 위하여 설립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수립 과정
빈문단 입니다. 내용을 추가해 주세요.
주요 활동
여권 발행(?)
상해 임시정부 외교부에서 대한민국 2년 (1920년) 4월 22일 김정극(金正極)에게 발급한 여행증서 제14호가 1986년에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영어나 불어로 Passport라고 적혀 있어 여권으로 볼 수는 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현존하는 유일한 여권 비전성남 2022-02-24
- 성남광복회 김영강 회원, 선친 김정극 지사의 여권 소개
이 여권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국가는 전무했으므로 이 증서가 실제로 여권의 구실을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극이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기 위해 발급받은 여권이라고 하는데, 그는 해당 여권을 미국에 두고 왔다. 실제로 통용된 여권이라면 입출국시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므로 미국에 두고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에 의하면 여권은 1986년 미국의 양주동 (梁柱東, 1933~1977) 박사의 지인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김정극은 1931년 귀국하면서 시카고의 양주은씨 댁에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으므로 여권을 그 집에 두고 온 것이 확실해 보인다.[1] 이 여권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 입출국에는 중국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반
국무총리제 (1919. 4 ~ 1919. 9) |
|
대통령제 (1919. 9 ~ 1925. 7) |
|
국무령제 (1925. 7 ~ 1927. 4) |
|
국무위원제 (1927. 8 ~ 1940. 10) |
|
주석제 (1940. 10 ~ 1948. 8.) |
국무총리제 (1919. 4 ~ 1919. 9)
대통령제 (1919. 9 ~ 1925. 7)
국무령제 (1925. 7 ~ 1927. 4)
- 1대 국무령 이상룡 (1925년 7월 7일 ~ 1926년 2월 18일)
- 2대 국무령 홍진 (1926년 7월 7일 ~ 1926년 12월 9일)
- 3대 국무령 김구 (1926년 12월 10일 ~ 1927년 4월 11일)
국무위원제 (1927. 8 ~ 1940. 10)
- 1대 주석 이동녕 (1927년 8월 19일 ~ 1933년 3월 6일), 주석 겸 법무부장
- 2대 주석 송병조 (1933년 3월 6일 ~ 1933년 12월 30일), 주석 겸 재무부장
- 3대 주석 양기탁 (1933년 12월 30일 ~ 1935년 9월 1일), 주석 겸 군무부장
- 4대 주석 이동녕 (1935년 11월 2일 ~ 1940년 3월 13일)
주석제 (1940. 10 ~ 1948. 8.)
각주
- ↑ 人事欄 - 김정극씨 十여년만에 귀국 신한민보 1931-04-30, 01면 05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