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가짜설의 기원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해방 후 귀국한 그가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서 연설하던 그 장소에서 처음 터져나왔으며, 이러한 말은 월남민들에 의해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퍼지게 된다.
이로부터 불과 한달 뒤인 11월 중순의 미군정 기록에 벌써 그가 가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는 그가 장차 북한의 지도자가 될지도 불분명할 때이다. 한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문헌에 그가 가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부가 반공정책 때문에, 또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폄하하기 위해 그를 가짜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해방 당시 북한 김일성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
해방 직후 소련군이 평양에 데려온 진지첸 대위(자칭 김일성 장군)에 대해 대중들은 그가 어디서 무얼 하다 온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이전에 김일성이란 이름을 실제로 썼는지 아닌지도 당연히 알 수 없었고, 그가 속했던 만주 동북항일연군이나 소련군 88여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사건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보천보 사건이 유명해 진 것은 나중에 김일성이 집권하고 난 후 자신의 항일 전공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후부터이다.
보천보 사건보다 조금 먼저 비슷한 규모의 동흥사건, 토성사건, 독산사건 등이 있었고, 이때도 신문들이 호외를 간행하며 보도했지만 해방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이들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천보 사건도 해방 당시에는 마찬가지였지만 김일성이 집권하여 선전하는 바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보천보 사건 때 동아일보 등이 호외를 간행하여 항일연군의 김일성 이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당시는 문맹율이 80%를 상회하고,[1] 인구 대다수가 사는 농어촌 지역은 교통이 불편해 신문 배달도 쉽지 않아 호외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남한에서 동북항일연군과 보천보 사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며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소련군 88여단에 대해 알게되는 것은 1990년 한소수교 이후 소련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나온 오늘날에도 명확하지 않아 논쟁 중이므로 해방 당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북한에서는 북한정권 공식 출범 후부터 김일성의 항일투쟁이나 보천보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소속부대는 동북항일연군이 아닌 조작된 이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부르고, 소련군 88여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해방 직후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한 기록
김일성 동생 김영주의 증언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김일성 장군을 사칭한 이유
소련 군정 지휘자 레베데프 소장의 후일 증언
김일성 진짜론은 허수아비 논법
북한 김일성이 만주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그 김일성이 맞으니 진짜라는 주장은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이다.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그가 1920년경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김일성 장군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전혀 맞지 않아서 나온 것으로, 그가 항일연군에서 무슨 투쟁을 했던 관계없는 일이다.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항일연군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이미 유명했다.
이명영이나 허동찬의 연구에 대한 반박이 김일성이 진짜라는 증명이 될 수 없다.
김일성 진짜론의 사례
이정식
임은(林隱)
임은(林隱)은 허진(許眞, 1928~1997)의 필명이며,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4~1908)의 3남 허준(許埈, 1895 ~ 1956)의 아들로 본명은 허웅배(許雄培)이다. 부친 허준(許埈)은 연안파로 북한에서 1956년 숙청 당했다. 허진은 소련 유학 당시인 1958년 소련으로 망명하여 소련에서 거주했다.
- 林隱, 『北朝鮮王朝成立秘史』 (東京, 自由社, 1982), pp.29~57.
- 임은(林隱), 『김일성정전(金日成正傳)』 (옥촌문화사, 1989년)
서대숙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각주
- ↑ 노영택, 日帝時期의 文盲率 推移 國史館論叢 第51輯 (국사편찬위원회, 199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