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미하일 이바노비치(Кан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Kang Michail Ivanovich, 1910~1961)는 소련의 고려인으로 소련군 장교였으며, 해방 직후 평양의 소련 군정에서 통역 등의 일을 담당했다. 해방 직후 1945년 10월 15일 평양민보가 창간되기 전 유일한 신문이었던 소련군 기관지 조선신문(朝鮮新聞)의 편집장을 지냈다.[1]
생애
- 강 미하일 이바노비치 세계한민족 문화대전
참고 자료
- 이념보다 진한 우정…자식이 되찾았다 / 진도 김영원 회장-미하일 강 두 집안의 우정과 분단 44년 중앙일보 1991.09.18
소련 군정 당시 사진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 당일의 사진. 좌로부터 통역을 맡았던 강미하일 소련군 소좌 (고려인), 김일성 및 소련군 그리고리 메클레르(Григорий Меклер, 1909~2006) 중좌.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가 끝난 후 저녁 무렵 만경대를 찾은 김일성. 앞줄 왼쪽 끝이 강미하일 소좌, 오른 쪽 끝이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좌, 화살표가 김일성. 세 사람의 복장이 민중대회 행사 당일의 것과 동일하며, 김일성은 여전히 적기훈장을 달고 있다.
각주
- ↑ 레오니트 바신(Leonid Vasin, 1915~2006), 《「날조된 영웅(英雄)」김일성(金日成)》, 『신동아(新東亞)』 1992년 11월호, pp. 486–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