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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당시까지 월남민은 150만명이나 월북한 사람은 그 1 %인 1만 5천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북행(北行) 불과(不過) 1 % 조선인 이주 비교(朝鮮人 移住 比較)
나는 北朝鮮(북조선)이 南朝鮮(남조선)보다도 큰 言論(언론)의 自由(자유)가 잇다는 것을 疑心((의심)하고 잇으며 北朝鮮人民(북조선인민)이 總意(총의)로서 美國(미국)을 帝國主義(제국주의)라고 非難(비난)하고 『스타-린』 元帥(원수) 及 金日成氏(급 김일성씨))를 崇拜(숭배)하는데 一致(일치)하고 잇다는 報道(보도)에는 놀랄 수 박게 없다.
【東京廿日(동경입일발)[1] AP合同(합동)】 最近(최근) 서울을 訪問(방문)하였든 AP 特派員(특파원) 『렘버-트』 氏(씨)는 朝鮮現狀조선현상)에 關(관)하야 如左(여좌)히[2] 報道(보도)하였다.
最近 朝鲜 避難民 救濟事業(최근 조선 피난민 구제사업)에 從事(종사)하는 南朝鲜 美軍情報局 及 南朝鮮人(남조선 미군정보국 급 남조선인)으로부터 入手(입수)한 事實(사실)로 보면 朝鮮(조선)에 避難民 移住 狀態(피난민 이주 상태)는 과반(過般) 北朝鮮(북조선)을 視察(시찰)한 『안나 루이제 스트롱』 女史(여사)의 報道(보도)와는 대조적(對照的))인 것이다.
즉(卽) 북조선(北朝鮮)에 移住(이주)하는 朝鮮人(조선인)은 戰時(전시) 南方(남방)에 강제징용(强制徵用) 갓든 북조선인(北朝鮮人)이 아니면 北朝鮮共産黨員(북조선공산당원)인 것이다.
나는 北朝鮮(북조선)이 南朝鮮(남조선)보다도 큰 言論(언론)의 自由(자유)가 잇다는 것을 疑心((의심)하고 잇으며 北朝鮮人民(북조선인민)이 總意(총의)로서 美國(미국)을 帝國主義(제국주의)라고 非難(비난)하고 『스타-린』 元帥(원수) 及 金日成氏(급 김일성씨))를 崇拜(숭배)하는데 一致(일치)하고 잇다는 報道(보도)에는 놀랄 수 박게 없다.
- 출처 : 북행(北行) 불과(不過) 1 % 조선인 이주 비교(朝鮮人 移住 比較) 1947.10.21 조선일보 1면
- AP 통신 기자가 한국에서 조사하여 보도한 기사의 인용으로 당시까지 월남민은 150만명이나 월북한 사람은 그 1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 기사에 언급한 Anna Louise Strong (1885~1970)은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1947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으나 남한은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그녀가 남한에 대해 한 말들은 근거가 없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기행문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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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2023년 2월 23일 (목) 18:38 | 981 × 1,817 (369 KB) | JohnDoe (토론 | 기여) |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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