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947-10-21 조선일보 남북 이주민 비교.jpg](/w/images/thumb/4/41/1947-10-21_%EC%A1%B0%EC%84%A0%EC%9D%BC%EB%B3%B4_%EB%82%A8%EB%B6%81_%EC%9D%B4%EC%A3%BC%EB%AF%BC_%EB%B9%84%EA%B5%90.jpg/323px-1947-10-21_%EC%A1%B0%EC%84%A0%EC%9D%BC%EB%B3%B4_%EB%82%A8%EB%B6%81_%EC%9D%B4%EC%A3%BC%EB%AF%BC_%EB%B9%84%EA%B5%90.jpg?2023022309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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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설명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 출처 : 북행(北行) 불과(不過) 1 % 조선인 이주 비교(朝鮮人 移住 比較) 1947.10.21 조선일보 1면
- AP 통신 기자가 한국에서 조사하여 보도한 기사의 인용으로 당시까지 월남민은 150만명이나 월북한 사람은 그 1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 기사에 언급한 Anna Louise Strong (1885~1970)은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1947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으나 남한은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그녀가 남한에 대해 한 말들은 근거가 없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기행문을 쓰기도 했다.
파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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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2023년 2월 23일 (목) 18:38 | 981 × 1,817 (369 KB) | JohnDoe (토론 | 기여) |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으로의 이주민 수를 비교한 1947-10-21 일자 조선일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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