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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대해서 추가해시기 바랍니다,,, |
작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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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11월 27일 (54세)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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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여성 |
성향 |
좌편향 작가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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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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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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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한승원(아버지) |
주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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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한강(韓江, 1970년 11월 27일~)은 광주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여성 작가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뉴스 속보로 처음 영상으로 접했을 때 화장끼 없고 정리않된 모습에서 작가라 수수해서 그런가라고 생각보다 싸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무리 뉴스매체와 단절된 생활을 한다 해도 뉴스 매체에 알려지고 인터뷰가 예상되면 최소한의 10초 화장[3]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일 듯 싶은데 본인의 성향인듯 하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2024년 대한민국은 경제 TOP7 진입과 한류열풍등으로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이 더더욱 커진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경제대국을 넘어서 K컬처의 문화 대국임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과학계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명실상부한 자부심이 넘치는 나라가 되겠다.
그 만큼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한국을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반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는 독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작폼들이 역사왜곡이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제 한국인들의 마음속엔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역주행되어 팩트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4]
그리고 《채식주의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막장이 들어간 성인소설, 아니 음란한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죽하면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도었을까? 남자들이 한페이지를 읽다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신체 일부가 불끈거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라하면 말 다했다.
대다수의 언론이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를 대서특필하고 대중들은 광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시아 최초의 여성 노벨상이라니..
한강의 노벨상 효과로 열광하는 군중들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도서는 물론, 제주 4.3, 광주 5.18관련 서적도 구매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발 맞춰 5.18단체들은 5.18를 헌법 전문에 넣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제주 4.3, 광주 5.18이 팩트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 작가 한강의 수상에는 그 동안 남성 작가 수상에 대한 안배와 유럽 수상자들을 고려해 한.중.일에서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몄다. 그는 남성 후보자들을 누르고,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주제 의식과 2010년대 들어 국내에서 활발해진 번역 사업과 K팝, K푸드 등 한류 콘텐츠로 인한 해외 독자들의 관심 증대 등이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4]
노벨문학상을 발표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에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일생
1970년 광주광역시 중흥동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났으며, 풍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작가 한강의 작품에 결정적으로 잘못된 역사 의식을 심어준 것은 역시 아버지 한승원이다. 어린 나이에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의 재능도 물려받았지만, 전교조의 편향된 교육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광주 5.18과 제주 4.3에 대한 역사인식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져있는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도 한강의 작품속에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얼마나 한국인들을 물들게 하느냐는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평화상까지 추가하면 두 번째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다. 김대중의 노벨상은 인정도 안하지만,,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기고 논란
2017년 10월 7일 한강 작가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 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6.25 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보는 작가의 문제인식과 남북은 대화와 평화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아무라도 나쁜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라는 프레임이다.[5]
좌파의 프레임은 평화 대 전쟁 프레임이다. 대한민국의 잘 사는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지 전쟁을 원하겠는가? 요컨대 전쟁에서 패배하건, 나라가 멸망하건, 국민이 도륙되건 간에, 전쟁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막아야 하는 ‘절대악’이며, 평화란 아무리 비굴하고 나쁘고 더럽더라도 전쟁보다는 나은 ‘절대선’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닥치고 평화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이 기고문을 페이스북, 트위터 등 공식 SNS을 통해 인용#했는데 기고문이 게재된 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청와대가 SNS로 글에 자유한국당은 우방인 미국에 앞서 남침한 북한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며 청와대가 이 기고문에 동조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대화와 평화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한씨) 주장과 청와대 입장이 다르지 않아 기고문을 소개한 것"이며 "청와대가 '6.25 전쟁이 대리전'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선일부에 해명하였다고 한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의 질의에 "표현과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문화일보는 6.25 전쟁을 강대국 간의 ‘대리전(proxy war)’으로 표현하고 6.25 전쟁 당시의 ‘노근리 학살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의 전쟁 책임을 묻는 듯한 논지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 주역들에 대한 입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 여성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그 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기쁘지만 작가 한강이 그동안 집필해 온 작품을 보면 좌편향된 역사인식이 우려되고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까지 등장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금의 작가 한강이 존재하기까지는 자신을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헌신이 기분이고, 수많은 독자들의 성원일 것이다. 작가 한강의 생각이 여기에서 멈춘다면 후안무치한 유명인이 되는 것이다. 부모입장에서는 "내가 뭘해줬는데 네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진짜 자신이 잘나고 열심히 해서 지금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후안무치란 것이다.
마찮가지로 지금의 작가 한강이 있게한 것은 UN이 승인한 유일한 합법 정부를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정신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외면한다. 그러면서 이승만, 박정희,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까지 부정하려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성장이 달성되고 그 이후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좌파 3대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 경제성장이 이루어 졌는가? 오직 북한이 깡패짓을 해도 더러운 평화가 낫다며 국민세금을 퍼주고 부정을 일삼으며 경제를 망치려 분탕질한 정권임을 지력이 있으면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한강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5.18과 4.3 사건에 대한 역사 인식은?
문화예술계가 심각한 좌편향된 사람들이 모인곳이라면 역사, 문학계는 백퍼에 가깝다. 한강의 아버지 역시 좌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어려서 부터 아버지의 편향된 사상을 받았을 것이란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진압 과정에서 발생된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거한 작품이 잘못된 개인의 역사관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 그의 작품들이 세계인들에게 잘못 읽혀질 때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적으로 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벨상 수상 이후 그의 역사에 대한인식과 좌편향된 말 한마디가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못 인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우석 칼럼
약한사람을 대변한다는 작가의 양심?
작가 한강은 국가폭력에 억울한 한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 산문이라 평가받고 있다.
작가 한강은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말하며 축하 행사와 기자회견을 사양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기자는 이런 작가를 보면서 가장 영예로운 순간에 가장 약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고 칭찬하고 있다.
경항일보 기자와 작가 한강은 지금도 진행중인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말하며 축하 행사와 기자회견까지 사양할 정도이면,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이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삶도 생각해 주시라.
북한의 주민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김일성, 김정은, 김정은 3대 독재 정권은 보이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은 격멸하면서, 북한의 탐욕스러운 1인 독재에 의해서 자행되는 인권탄압과 여성 성폭행, 남한의 드라마, 남한 말투를 썼다고 총살시키는 돼지들의 만행은 들리지 않는가?
지금 현재는 5월 단체들은 약자가 아니다. 도리어 민주화 유공자라며 막대한 보상과 혜택을 받고, 성역화된 518로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5월 단체와 518 자체가 성역화 권력화 되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선거 때마다 518 묘역에 참배하며 표를 구걸하고, 헌법에 넣겠다고 경쟁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 약자는 도리어 518 때 국가의 명령을 받고 진압을 한 군인들과 그때 희생된 군경의 유가족들이다. 지만원과 같이 성역화된 518에 대해서 수정주의 사관을 제시해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도리어 마이너리티고 약자다.
좌익들이 문학 역사 교육 언론 문화 다 진지를 장악하고 있고, 한강이 쓴 소년이 간다라는 걸 펴낸 곳은 문학계를 좌익 정치판 화 시켰다는 창비다.(창비 자체도 문학계에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곳이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고 그들은 역사의 승자가 되었고, 518을 성역화하고 미화하는 소설을 쓰는 건 약자의 세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문화와 역사 언론등에 헤게모니 진지를 장악한 강자인 좌익 세력과 그 사관에 영합 대변하는 것일뿐이다.
국민들 노벨상에 열광, 5.18 헌법수록 가속화
눈먼 군중들은 한강의 모든 도서, 부친 한승원의 도서는 물론, 제주4.3, 광주5.18관련 서적도 구매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한다. 또 이에 동조하며 5.18단체들은 5.18를 헌법 전문에 수룩하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제는 제주4.3, 광주5.18이 팩트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 한강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은 대중들은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21에기 대한민국 국민성이고 여론이다. 이것이 종북주사파에 역사와 문화계를 장악당한 보수우파의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참 게으르고 역사공부를 하지 않으며 사대주의적인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작가 한강의 잘못된 역사관에 대해서 소위 지식인들은 알고 있음에도 성난 군중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무서워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게 대한민국이다.
결국 자유우파 국민들의 분발인데, 전광훈 목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되면서 많은 이들이 우파 대통령이 되었다고 태극기 집회를 떠났다. 이제는 김건희 여사의 가짜뉴스에 실망해서 지지를 철회한다고 한다. 점점 더 7년전 박근혜 탄핵의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이재명에 넘어갈 뻔한 대한민국의 운명이 5년 연장된 것이라고 전광훈 목사는 윤석열 취임식 즈음에 말하였다. 아직도 임기가 3년이 남았는데 윤석열을 버리겠다는 우파의 국민들이 늘고 있다. 원래 윤석열은 좌파의 인물이었다. 근데 좋으면 가져다 쓰고 5년도 안되어 무책임하게 또다시 밖에다 버린다고? 이제는 영원한 우파 폭망이다.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6] 노벨상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인데 얼마나 열등감을 느꼈을지 알 만하다. 그런데 오랜 국민 숙원을 이뤄낸 것이다. "노벨상인데 한국인이면 무조건 기뻐해야 하는거아니냐", "그녀가 좌익 사상의 아버지 밑에서 좌파사상에 경도되었건 말건 뭔 상관이냐"는 것이다. "나도 좌파 아닌데, 그냥 같이 기뻐해주면 안되냐?" 등등의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이 우파 국민들 사이에서도 들리는 말이다.
이런것이 태생적으로 좌파와 틀린부분인데 이들 대부분은 자신은 냉철하고 사리분별이 잘되는 사람이로고 기겨세운다. 이미 나라는 종북 주사파의 전방위적인 진지전으로 공산화되어 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미 청와대에 종북주사파(=간첩)이 5년간 있었고 국정원에 박지원이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우파의 몰락을,가져다 준다. 이제는 실망한 자유우파 국민들 못지 않게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여당이 국민의힘이 힘이 되기는 커녕 대놓고 딴지거는 상황에서 이제는 뒤구멍이 아닌 공개적인 행보로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지지해주고, 전광훈 애국 세력을 지지한다고 나서야 한다.
비판

대다수의 언론이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이고 작가 한강은 이미 절대선의 인물이 되었다. 박근혜 탄핵 때의 분위기와 같이 박근혜를 두둔하면 같이 반역자가 되어 매장되는 분위기 였다. 이제 작가 한강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여론에 마녀사냥을 당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김규나 작가의 비판
노벨 가치의 추락, 문학 위선의 증명, 그리고 역사 왜곡의 정당화
김규나 작가[7]는 자신의 SNS에 노벨문학상 수상 의미라는 글에서 노벨 가치의 추락, 문학 위선의 증명, 그리고 역사 왜곡의 정당화"라며 한강 작가의 수상을 비판했다.[8]
![]() 김규나 작가의 한강 작가에 대한 비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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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작가는 "(노벨상이) 동양권에게 주어야 했다면 중국의 옌렌커가 받았어야 했다"며 "올해 수상자와 옌렌커의 문학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게와 질감에서, 그리고 품격과 감동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해 "죄다 역사 왜곡"이라며 "'소년이 온다'는 오쉿팔(5.18)이 꽃 같은 중학생 소년과 순수한 광주 시민을 우리나라 군대가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이야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 순수한 시민을 우리나라 경찰이 학살했다는 썰을 풀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규나 작가는 "배 아파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며 "문학에 발을 들인 사람으로서, 문학은 적어도 인간의 척추를 꼿꼿이 세워야 한다고 믿는 못난 글쟁이로서,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벌써 서점가 베스트셀러 상위에 온통 그 작가 책"이라며 "지금까지도 많이 팔렸지만, 앞으로도 엄청나게 팔릴 거다. 그리고 그것이 곧 역사의 정설이 될 텐데 정말 괜찮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서점가에 한강의 작품이 불티난다는 뉴스가 토막뉴스로 나오고 있다.
노벨상,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한강의 노벨상,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 김규나 작가 [이것이 뉴스다], 펜앤드마이크TV
김규나 작가는 10월 13일 개인 블로그에 좀더 자세한 비판 글을 올렸다. 문학계에서 우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소수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옳바른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아울러 좌파카르텔에 빌붙어 먹는 단체나 문화인이 아닌 철저하게 소외된 우파성향의 문화인에 대해서도 문화관광부와 윤석열 정부의 눈치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 세상이 나를 말하게 한다-노벨문학상 관련글 보도에 대해 - 김규나 블로그
- 김규나 블로그 2024.10.22
김규나 작가는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선 단편소설 '내 남자의 꿈',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선 단편소설 '칼'이 당선됐다. 이후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등을 집필했다.
노벨문학상을 발표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작품에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조카에게 일방적으로 절연
이일이 있은 후 남규나작가는 김규나 작가는 14일 자신이 소설을 연재 중인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노벨문학상 수상 비판)가 나고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게 일방적으로 절연당했다”면서 “Y대 장학생인 조카가 좌파적 사상이 투철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태를 이야기한 적 없는데 매체를 보고 안 모양”이라고 전했다.
김작가는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면서 “젊은 세대의 보편적 정서가 이만큼이나 멀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닫기도 했다”고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반국가 소설이다, 전민정의 비판


전민정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대표가 트루스가디언에 한강의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 [전민정 칼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반국가소설이다 트루스가디언 2024.10.29
- 북한정권 수립일 9월9일, 한강이 반복 서술한 '99그루의 나무'… 1판 1쇄 날짜는 9월9일, 우연인가
- 창작의 범위를 벗어난 범죄다. 소설이 창작이라면 허구에 감성을 입혀 가공의 인물을 공격하는 것까지는 용인이 된다. 그러나 한강의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역사 다큐 소설에 가까워서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군경과 서청같은 관계자들을 악마화하고 있다. 역사 소재 소설에서 그 피해가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의 주적관을 해체하여 안보를 저해하는 효과까지 내재되어 있다면 이는 개인의 범죄를 넘어 국가보안법상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사안으로 보고있다.
- 군경과 서청의 명예를 훼손이다.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이 제주도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공산폭동 반란을 일으킨 반역 사건이다.
- 당시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은 제주도에서 학살, 납치, 강간, 방화 등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군경과 서청은 천인공로할 남로당의 범행을 진압하였다. 그런데 소설은 군경과 서청이 범행의 주체인 것처럼 서술하였다. 남로당의 학살과 만행을 군경과 서청에게 뒤집어 씌운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 한강의 역사관이 대한민국 역사관에 입각하지 아니하고 남로당과 북한에 이로운 사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 서청(서북청년단)은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이다. 이들은 김일성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피하여 자유를 찾아 남하해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을 토벌하는데 생명을 바친 반공 우익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김정은 만세’를 부르는 노예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한강의 소설은 진압군경과 서청 및 그 유족들에게는 심각한 명예훼손이 아닐 수 없다.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다. 4•3 공산폭동 반란의 진압은 정당행위였다. 한강은 소설에서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토화 작전이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고, 사망자를 무고한 양민처럼 오해하게 한 후 그 수를 터무니없이 과장하였으며, 제주도민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던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등 철저히 남로당(공산당)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였다.
- 좌파는 4•3이 민중항쟁인 것처럼 끊임없이 국민을 세뇌시켜 왔다. 4·3의 전국화가 통하는 재미를 본 좌파는 다음 단계로 대범하게 4·3의 국제화에 공을 들여왔다. 그 결실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군경을 학살 집단으로 낙인찍어 공격하는 소설로서 노벨문학상 작품이 된 것이다.
- 반헌법적 정서의 확산이다. 노벨문학상의 권위는 왜곡을 강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정만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한강의 작품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 이런 현상은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헌법수호 활동을 봉쇄하는 것으로서 헌법정신에 반한다. 노벨문학상의 권위와 수상 작품의 진가가 언제나 등가적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작품이 대한민국을 악의적으로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축하보다는 우려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정유라의 저격
“찝찝하다”…‘노벨문학상 한강’ 저격한 정유라 “역사왜곡 소설로 수상”
정유라는 SNS에 “역사 왜곡으로 쓴 소설로 받은 상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제주 4·3 사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옹호를 소설이라는 이유로, 어쨌든 그동안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이 없었으니 감사하자는 마음으로 우파 역시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찝찝하다”고 올렸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에 담긴 한강의 역사관을 저격하였다.
정유라는 “원래 좌파는 감성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 부분이 우파와 좌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상을 받건 왜곡한 것은 왜곡한 것이다”.
이어 “여전히 명단조차 밝히지 못하는 유공자에 대해 그 명단을 밝히라고 하면 죽일 ○○ 되는 나라가 정상이 맞냐. 역사 위에 노벨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을 비판하면서 한씨의 노벨 문학상을 옹호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광수보다 더 음란한 한강
지만원 박사는 한강의 수상 소식에 다음과 같은 비판의 글을 남겼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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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문에 난 것만 읽어도 마광수는 구역질 나는 개차반 글쟁이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만일 그가 전라도 생이고 빨갱이였고, 5.18과 4.3을 왜곡했다면 벌써 노벨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번에 한강, 그녀가 쓴 ’채식주의자‘의 키워드 몇 개를 소개하려 해도 차마 내 손가락으로 베껴쓸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번을 망설였다. 그래도 베끼지 않으면 내가 생사람잡은 사람으로 역공을 당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베낀다. 오죽하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항의를 해서 금서로 지정하게 만들었겠는가! 지금부터의 실례를 용서하시라! ”벌거숭이가 된 그는 그녀의 가랑이를 힘껏 벌리고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짐승의 헐떡거리는 소리...괴성 같은 신음,,,교성은 여성들만 지르는 것... 그녀의 흠뻑 젖은 몸, 무서울 만큼 수축력 있게 조여드는 몸 안에서 그는 혼절하듯 정액을 뿜어냈다....“ ”은밀히 터질 듯한 가슴....두 달 동안 아내와 섹스하지 않았다는 사실... 성기가 부풀어 오른 것이,,,,,등에 업힌 처제의 ....가슴과 엉덩이의 감촉을 ....물컹물컹한 환멸을 씹으며....정액을 씻어내면서....“ 형부와 처제가 벌이는 불륜의 현장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이 노벨상이란다. 노벨은 이 표현을 “역사적 상흔에 맞서는 작가의 시적 산문이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잘 드러냈다며 상을 준 것이다.
한강은 얼굴조차 꿈에 볼까 두려울 만큼 변태 엽기의 상징이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남자도 아닌 여자가 이토록 추하고 저질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말이 곧 인격이라 하는데! 그래서 TV에 수상자의 얼굴이 비치는 것이 가장 악랄한 고문이다. 노밸은 매수됐나, 미쳤나? 노벨 문학상은 원래 어떤 작가에게 주어져야 하는 상일까? 듣기로는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인류의 이상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주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각고의 극기’로 환경적 역경을 극복해가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심금을 울리는 시적 표현으로 아름답고 고매하게 묘사 해서 인류의 등불이 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강의 글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불륜의 과정을 남다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더럽고 쌍스런 언어로 난잡 하게 표현했다. 우선은 노벨상이라 해서 세계인들이 열광하지만 읽은 다음에는 한국 전체를 멸시할 것이다. 노벨은 그 유명세를 한국 비하의 나쁜 목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앞으로 노벨은 의식 있는 지구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글에 미쳐 날뛰는 남녀 인간들은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를. 시쳇말로 우동사리만 가득한 인간들이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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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조선일보 비판
오마이뉴스는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모든 언론에서 기뻐하며 그의 수상 경력과 작품성을 보도하기에 바쁘다. 이미 서점가는 하루만에 작가 한강의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50만 건이 넘어 품절되었다. 그런데 유독 조선일보는 작가 한강을 비판만한다고 한다. 한강은 이미 절대선인데 감히 비판하고 있느냐는 논조다.
오마이뉴스는 국가폭력이라는 비극적 과거사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 불편한 독자라면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얘기인가라 지적하고 있다.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해야", 광주MBC
광주MBC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5.18민주화운동이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목소리도 더욱더 커지고 있다로 운을 뗀다.
오월 단체들도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해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다고 보도했다.
윤석열대통령, 한동훈 당대표가 광주에서 헌법수록을 약속한 만큼, 더구나 한동훈이 지속적으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궁지로 몰아넣는 가운데 대선꿈으로 더더욱 분탕질을 할 것으로 보인다.
좌파들의 5.18 성역화 작업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헌법 수록인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5.18민주화운동과 광주정신이 세계로부터 재조명 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전 세계가 환호한 지금이야말로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할 시점"이라며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추진본부를 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강기정 광주시장 (어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개헌 추진을 통해서 오월 정신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광주가) 민주주의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된다는 것은 5·18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이 더 강화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들어가면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5.18을 왜곡하고 폄훼를 할 수 없게돼 소모적 갈등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광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감을 형성했다는 것에 큰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 김민석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광주MBC 창사60주년 특집토론 지난 10일)
"헌법 전문에 5.18을 넣어야 되냐, 부마항쟁을 넣어야 되냐, 6월 항쟁을 넣어야 되냐. 쭉 조사를 해봤어요. 깜짝 놀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모든 지역 상관없이 5.18를 수록하자는 것이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오월 단체들은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섭니다.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여순사건, 부마항쟁 등 국가폭력 피해 단체들과 협력할 방침입니다.
- 박강배 /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22대) 5.18개헌특위가 올 하반기부터 가동이 돼서 내년도에는 초안이 나오고 국민들의 열의를 모으고..."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22대 국회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518에 대한 다른 소리를 할 수 없게 하겠다. 참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518 민주화라면 민주주의 기본은 표현의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다. 아무렇지도 않게 뭔 헌법에 특정사건을 넣어서 다른 소리를 차단하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 보도를 지상파에서 한다는 게 섬뜩한 생각이 든다.
설사 백천만번 양보해서 왜곡 폄훼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학문과 논리의 영역에서 반박을 하면 되는 거지. 역사왜곡 처벌법이나 헌법전문 수록등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거 보면 실제 논리나 토론을 할 경우 캥기는 게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강이 '한강의 기적'을 완전히 뭉갰다
정동수 목사는(유튜브Charity Baptist Church ) 작가 한강이 '한강의 기적'을 완전히 뭉개 버렸다!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그녀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또한 자유 우파 시각을 가진 목사중에서도 진실이 아닌 소설이다라는 말을 하는거세 대해서 비판의 영상을 올리며 전통적인 보수 기독교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몆ㅅ 안되는 목회자중 한명이다.[9]
김용민의 평화나무 매체에서는 "한강 소설 읽어볼 필요도 없어.. 망언 쏟아낸 극우 목사"란 기사가 올라왔다고 한다. 기사는 아시아 여성 초초의 노벨상 수상자에게 역사왜곡이라 했다고 바로 극우 목사, 막말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 S 교회 정 모 목사 “김규나 작가, 아주 정상적인 사람"
- 한강 작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 두고 "배은망덕한 매국행위" 막말
정동수 목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사실)를 선포해야하는 목사의 시각으로 제대로된 사실을 알리고자 방송을 하였다고 한다.
Charity Baptist Church
정동수 목사는 이전에도 작가 한강을 자유 우파적 시각의 목사들도 "그냥 진실이 아닌 소설이다"라는 시각과, 소강석 목사가 한강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 가슴이 벅차다는 말에 대해서도 비판의 영상을 올린 바 있다.
《 채식주의자》, 청소년 유해도서, 김성욱 대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정확한 진실을 보지 않는 사람이고, 정확한 진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 지식, 경험이 우상이 돼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확증편향) 속에서 쓰여진 소설이 채식주의자이다
작중의 주인공은을 인간의 불안감 공포 절망감 두려움들을 인간의 실존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는 것으로 묘사를 하면서 음란하고 정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될 만큼 성인이 읽기에도 낯뜨거운 장면들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에 국민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 1위로 뽑혔다고 하니 냄비처럼 들끊는 대한민국의 국민성은 이해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는 야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만한 노골적인 성인소설인데, 노벨상 수상작이라니 갑자기 성인소설에서 예술로 승화된 작품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일부 연예인들도 한강의 작품을 읽었다며 시류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난해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읽거도 야설, 성인소설인데 노벨상을 땄다고 하니 난해할 수 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

좌파 언론에서는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울컥 “5·18 세계에 알려줘 고마워“ 라는 감성성인 기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 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 알아야지 우리만 알면 쓴대요. 이제는 세계가 다 5·18을 알겠지요.”라며 5.18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세계인들이 알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 열사라며 소개하고 있는데, 한강은 2014년 문재학의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냈다고 하면서 당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었던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라고 말한다.
5.18로 인해서 한 어린 학생이 겪었을 압도적 고통을 매일 몸으로 체휼하고(?) 울었다한다. 아이러니는 그런 심성을 가진 한강이 노벨상으로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북쪽의 가까운 땅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뼈만 앙상하게 아사하고 있다. 같은 동포의 인권 말살적인 김정은 집단의 행위에 대해서는 좌파 문학인들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충원목사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노벨문학상 한강의 삼촌 한충원 목사가 페이스북에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이 컴뮤니티에 올라왔다.#
한충원목사는 어려서 같이 살면서 어린 한강을 업고다니며 한가족처럼 보냈다. 이후에 종교적 갈등으로 큰형 한승원과 심하게 다툰 후 (사실은 일방적으로 혼난것으로 보인다) 서로간 연락이 없었다. 조카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을 마냥기뻐할 수만은 없는것이, 더욱 더 멀아질 전도의 기회와 한강 작품의 선정성과 역사왜곡에 대한 주위의 비판, 그리고 목회자로의 책임감등으로 오랜 번민과 기도끝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10]
한강의 삼촌 한충원목사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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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조카,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조카 개인의 크나큰 영광이요 아버지 한승원 작가 형님 가문의 영광이요 대한민국의 쾌거네. 나도 조카와의 관계를 아는 지인들로부터 꽤 많은 축하 메시지와 전화를 받았다네. 나도 지난 40여 년 동안에 100여 편의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쓰면서 체험한 바로는 한편의 작품을 쓴다는 것이 마치 자신과의 씨름처럼 힘든 일인데, 하물며 상상의 세계를 글로 옮기는 창작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오죽하면 창작 활동을 임신과 출산에 비유하겠는가? 특히 분량 면에서 볼 때도 소설작품은 다른 장르에 비해 창작의 진통이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네. 나도 과거에 몇 편의 중․단편소설과 시와 수필 등을 써보면서 조금은 경험한 일이라서 공감할 수 있다네. 조카가 그런 세월을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룩한 위업에 대하여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존경과 찬사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가슴 벅찬 축하를 보내네. 게다가 조카를 낳고 키우신 아버지 한승원 작가 형님 내외분에게도 뜨거운 축하를 보내드리고 싶네. 어쩌면 형님은 자제인 조카를 통하여 젊은 날의 고된 나날에 대한 보상을 받으셨다고도 할 수 있다네. 교사 생활과 창작 활동을 겸하면서 자녀 3명을 부양하고, 어린 동생 3명을 돌보시며, 대가족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하셨으니 형님은 인간적으로 거인이셨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17살 아래 동생인 나의 청소년 시절에 형님은 나의 영웅이었네. 형님은 내게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었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분의 분신처럼 성장했다네. 형님은 나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나의 병역특례 기간(5년)이 끝나면 김원일․김원우 작가와 같은 형제 작가로 살아가자고 제안하셨네. 나는 형님의 은덕을 갚고자 형님이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가로 활동하시던 초기 4년 동안 나의 월급 절반 이상을 형님에게 보내드리면서 형님의 전업작가 생활을 도왔다네. (그때 조카는 초등 시절이었네.) 게다가 형님은 나의 결혼 주례로 작가 이호철 선생님을 세워 나의 작가 활동 발판을 마련해주실 만큼 나를 아끼셨다네. 마치 아들을 챙기듯이. 내가 손위․아래 누이 둘과 함께 형님 집에서 살았던 10년 세월의 힘들고 슬프고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라 목이 메네. 아버지의 생전까지 꽤 괜찮았던 우리 집안(9남매)은 아버지의 소천 이후로 갖가지 비극적인 불행들이 덮쳐오면서 암울했고 가세까지 크게 기울었다네. 그래서 나는 중등 1년부터 누이 둘과 함께 광주에 사시던 형님에게 맡겨져 함께 지내게 되었네. 우리는 두어 번의 이사 끝에 형님의 처가에서 지어준 한옥집에서 살았네. 그 한옥집은 광주 신역(新驛) 뒤와 로켓 배터리 공장 옆에 위치하였는데, 비포장도로와 퇴비 적치장에서 몰려오던 먼지와 파리를 막아내야 했고, 밤마다 근처 판자촌 남정네들의 객기 부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네. 그때 조카는 유년이었고 나는 고등․대학 시절이었네. 그 시절의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되살아나네. 내가 고등 2년 어느 날 늦은 밤에, 형님은 술에 취해 퇴근해서 나를 툇마루로 불러내더니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문필가만 있다. 무관도 있어야겠다. 네가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것도 좋겠다. 이사장님이 나를 불러서 내가 그런 작품을 계속 쓰면 나를 해직시키라는 경고를 어떤 기관으로부터 받았다는구나. 군사독재정권이 싫지만, 네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떤 작가는 자기 형님이 고급장교라서 잡혀가도 바로 풀려나더라.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형님과 나는 툇마루에서 서로 껴안고 한참을 울었네. 형님은 교사 생활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는지 자주 아프셨다네.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길 갈망하셨지. 나는 거의 매일 밤과 새벽에 형님의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중․고․대학을 마쳤다네. 측간(변소)에 들어가면 형님이 퇴고하신 원고지(휴지)를 읽느라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네. 조카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항상 차분하고 다소곳하며 혼자 방에 누워서 무슨 생각엔가 골몰하곤 하던 조카의 모습이 기억나네. 조카가 아기 때 엄마 형수님이 담장 없는 1층 양옥집 마당에서 밥 짓는 불을 지피는 동안에 조카를 업어주었는데, 조카가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내가 조카의 엉덩이를 꼬집어 더 울렸다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네.) 내가 대학 1년 때 교양 영어 작문 리포트를 써놨는데, 5살 조카가 내 책상에 올라가서 리포트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놓아 황당했다네. 리포트를 새로 베껴 쓸 시간이 없어서 색연필 그림이 그려진 이유를 리포트 위에 써서 그대로 제출했는데 교수님한테서 ‘Excellent’를 받았던 일이 떠오르네. 형님의 제안으로 조카가 중등 2년에 영어교과서를 다 외우면 상금을 주기로 했었는데 석 달 후에 조카는 거짓말처럼 한 자리에서 교과서 전체를 연습문제까지 단 한 문장도 틀리지 않고 다 외웠네. 나는 기겁했고 그때 이미 조카의 비범함을 직감했네. 나는 어깨에 힘주면서 형님 내외분 앞에서 조카에게 상금을 주었다네. 지금부터 18년 전에 형님의 김동리문학상 시상식에서 내가 조카의 얼굴을 본 이후로 편지로나마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네. 지금부터 37년 전에 셋째형님의 장례식에서 그 형님의 구원 문제로 형님과 나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난 후로 형님 집안과 소원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에서 은인이신 형님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려고 갔던 자리였네.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조카를 가끔 매스컴을 통해 보곤 했다네. 그 동안에 멀리서 조카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자 나는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네. 솔직히 말해, 기쁨에 앞서 적잖은 충격과 놀라움과 걱정에 빠졌다네. 노벨상 수상으로 인하여 오히려 형님 집안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조카의 작품에 대한 평가로 한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라네. 20여 일이 지나는 동안 충격과 놀라움이 많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정리되어 이제야 축하 편지를 보내네. 형님 집안과 아예 단절된 상태에서 조카의 전화번호나 주소를 전혀 몰라 불가피하게 공개편지를 보내게 되었네. 사실, 조카와 나의 단절도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미워하고 배척하신 형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네. 지금부터 39년 전에 2년 동안 형님과 나는, 알코올중독에 빠져서 인생이 망가져 가는 셋째형님의 치유 방법을 놓고 두 해 동안 서로 첨예하게 갈등하였네. 그러다가 셋째형님은 돌아가셨고 그 형님의 장례식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떠한 것(문학 포함)도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나의 주장에 분노하여 형님은 3일 동안 나를 가혹하게 핍박하셨네. (그 핍박이 어떤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네.) 형님은 “피를 뽑고 뼈를 갈듯이 글을 써서 너를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서 그 말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며 삼우제 날 새벽까지 나를 심문하셨다네. 문학을 목숨처럼 여기면서 작가 활동을 해오셨던 형님에게 “문학에는 구원이 없다”는 나의 말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던 것이네. 그때부터 형님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되었네. 40대 중반에 잠깐 세속에 빠졌지만, 나는 지금까지 38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 신앙으로 영혼과 인생이 망가진 이웃들이나 붕괴 직전의 가정들을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해왔다네. 하지만 형님 집안의 구원에 대한 나의 눈물의 기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로, 국내에서 노벨문학상의 권위는 물론 조카의 작품에 대한 외설성 비판과 청소년 유해성 시비가 일어나고(전국학부모단체의 반대와 국회에서 논란), 5.18 민주화운동과 4.3 사건에 대한 평가 시비가 새삼 일어나고,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노벨문학상 취소와 한림원 규탄 시위까지 벌어지며, 조카의 작품을 비판했던 어떤 작가가 특정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었다네. 최근에 자주 SNS 단체방에 조카의 작품에 대한 비난 글들이 게시되고, ‘조카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지인들의 전화까지 받을 때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네.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조카의 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에 이르니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네. 나는 조카의 혈육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도(신학)를 공부하여 안수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목양하고 있는 목회자요, 초등시절부터 29살까지 시간만 나면 국내는 물론 세계 문학․사상 서적들을 탐독하다가 21살에 처음 써봤던 단편소설이 대학문학상에 당선되고 22살에 두 번째 써 봤던 단편소설이 지방신문의 신춘문예(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29살까지 작가의 길을 준비했던 휴면(休眠)작가요, 또한 부강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45년 동안 국방연구개발 현장에서 세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일했던 공학자 출신이네. 이런 인생을 살아온 삼촌으로서 조카의 작품에 대한 논란거리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조카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다네. 어찌 되었건 나의 청소년 시절에 내게 은덕을 베푸신 형님의 자제요 내 등에 업어주기도 하고 예뻐하면서 함께 자란 조카의 작품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가슴에 생채기를 난 것처럼 마음이 아프네.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수많은 사람이 나를 향해 ‘나쁜 놈’이라고 돌팔매질할 수도 있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네. 편지를 써야 할지 말지를 하나님께 여러 번 여쭤보기도 했네. 보름 남짓 기도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편지를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네. 나는 대의를 위하여, 나의 조국의 백성들과 후손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 편지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네. 이 시대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급속도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네. 우리나라마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의 합법화가 시도되고, 영혼까지 파괴하는 성폭력이 수없이 자행되며, 이혼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거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네. 따라서 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사회․윤리적인 책임 의식을 갖게 하고, 우리 국민이 문학작품에 대하여 분별력을 갖도록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애쓰는 목회자로서의 사명감으로 이 편지를 공개하게 되었네. 깊이 이해하길 바라네. 첫째,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관한 의견 노벨상은 어쩌면 세계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네. 매년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경제학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들에게 수여되는 영광스런 상이기 때문이네. 나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종사해서 잘 알지만, 과학상은 우리나라의 과학․의학자들도 관심이 많은 상이라네. 한데, 문학상은 과학상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더 큰 관심을 받는 상이지. 조카의 수상은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과 감격을 안겨 준 거라네. 외국어로의 번역이 어려운 한글의 특성상 노벨문학상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상자가 나왔으니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겠는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그런데, 한편에서는 조카의 수상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얘기가 나오니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네. 왜 온 국민이 기뻐하지 않을까? ‘노벨번역상’이 더 낫겠다는 비아냥 조의 시비, 지구촌 지역 안배 차원이나 격년으로 남성․여성을 번갈아 가면서 수여하는 정치적 방식에 관한 시비, K-문화 세계화에 편승했다는 시비, 국내의 어떤 작가들이나 이웃 나라의 작가들과 비교하는 중량감 시비, 4.3사건과 6.25 전쟁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시비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네. 질투와 시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이런 시비와 비판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네. 사실, 나도 20대에는 소설 문학 작가로 살아갈까 하고 고민했던지라 노벨문학상에 관심이 지대했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찾아오셨던 30세 전까지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사서 탐독했었다네. 그래서 노벨문학상 작품들과 소위 세계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네. 수많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에 그때만 반짝했다가 잊힌 작가들이 대부분이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노벨상 수상 작품 중에 나를 감동시킨 작품들이 별로 없었다네. 하지만 게오르규, 헤밍웨이, 스타인벡, 레마르크, 시엔키에비치 등의 작품들은 읽은 지 40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네. 이처럼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라고 후세 사람들에게 다 사랑받진 않는다네. 그리고, 노벨상위원회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평화상을 주기가 석연찮으니까 그의 자서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근거로 그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네.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는데, 이는 작가와 철학자란 자신이 속한 체제나 이념에 얽매이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네. 사르트르의 이런 신념은 국내 작가들이 4.3 사건, 6.25 한국전쟁, 5.18 민주화운동 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작품을 써야 하는지를 교훈해주네.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세계명작소설들은 당시의 어떤 체제나 이념을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어떤 체제나 이념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식으로 풀어갔다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네. ‘베토벤’이 악성(樂聖)이라고 불린다면, ‘톨스토이’는 성인(聖人)으로까지 불린다는 것을 잘 알 것이네. 그는 단순히 소설가만이 아니라 인류의 도덕적 방향을 담아낸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소설작품인 ‘부활’ 속의 주인공처럼 살았던 작가였다네. 이처럼 노벨문학상은 분명한 수상 기준이 없이 수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네. 따라서 조카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가로서 정상이요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하고 후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작’의 반열에 들어갈 작품을 남기길 기원하네. 둘째, 조카의 소설작품 ‘채식주의자’에 대한 외설성 비난과 청소년 유해성 논란에 관한 의견 소설은 허구(虛構)이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글이네. 허구는 상상에서 오지만, 그 상상을 글로 표현할 때는 책임이 뒤따른다네. 그래서 상상을 글로 표현할 때는 절제가 있어야 하네. 숨겨야 할 것은 숨겨야 하네. 도둑놈도 자기 자식한테는 도둑질하는 것을 숨긴다네. 자식 딸린 매춘부도 자기 자식한테 몸 파는 장면은 안 보여준다네. 불량 식품을 파는 장사꾼도 자기 자식한테는 그 불량 식품을 먹이지 않는다네. 불의하고 못된 사람들도 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이네. 그 일말의 양심도 없다면 인간은 영혼이 없는 동물과 다를 바 없네. 육체의 욕구가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지. 피해자인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서 할 말 다 한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는 깨질 수 있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품고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해자가 죽은 뒤에 그 비밀을 말하거나 그 후손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영원히 비밀에 부칠 경우도 있다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이며 기본적인 도덕률이네. 따라서 작가는 양심과 기본적인 도덕률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작품을 써야 하네.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네.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포르노 작가가 아닌 이상 작가에게는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하네. 작품 구도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스스로만이 아니라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상황 윤리로 패륜적인 것이 정당화된다면, 근친상간 행위도, 수간(獸姦) 행위도, 심지어는 인육(人肉)을 먹는 범죄 행위도 얼마든지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미화시킬 수 있네. 그것은 타락의 극치네. 그런 작가는 인류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길 포기한 사람이라고 지탄받을 만하네. 그런 작가는 윤리적 타락의 선봉장이 되는 것이고 그 사회가 소돔․고모라와 같이 불 심판을 받게 되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네. 사람들의 영혼과 인생을 망가지게 하고 파괴하는 데 도움을 준 작품을 써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번다면, 그 작가는 3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독수리가 들판에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광경을 촬영하고 그냥 지나쳤던 사진작가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네. (그 사진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네.) 의과대학 교수가 위급 환자를 수술하려고 해부해놓은 뒤에 제자 학생들에게 환부를 보여주면서 강의하다가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네. 하나님께서 창세에 우리 인류에게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주신 이유는 경건한 자녀를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네.(말라기 2:15)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十誡命)을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영혼(하나님의 형상)을 지키고 가정을 비롯한 사회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네. 성경(레위기 18장 1~30절)은 근친상간(近親相姦) 12가지를 비롯하여 형부와 처형․처제의 상간을 금지하며, 또한 간음(奸淫)과 동성애(同姓愛)와 수간(獸姦)을 엄금하고 있네. 그런 성적 범죄는 악행이며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창세기 1:26~27) 동물이나 버러지와 같이 살지 말라는 것이네.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을 지키라는 뜻이네. 조카의 작품 “채식주의자”에서 형부․처제의 관계 및 장면 묘사는, 아무리 작품의 구성상 필수 불가결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작품의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네. 시대가 다르지만,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그런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네. 나의 어린 시절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미혼 딸한테 결혼한 딸 집에 놀러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뜻은 무엇일까? 형부와 처형․처제 관계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륜을 깨뜨릴 위험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장성한 아들들이 안방에서 나간 뒤에 자리에 누우셨다네. 그분들은 동방예의지국 백성다운 윤리 의식을 지니고 계셨다네. 소설 “채식주의자”는 혈기 왕성하고 절제력과 분별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읽혀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하네.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기가 두려운 작품으로 여겨지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에도 나오는 패륜 관계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왜곡된 윤리 의식과 성 관념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고 모방 범죄도 부추길 수 있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성’(性)은 쾌락의 도구이지만 자손 유지를 위한 거룩한 선물이네.(창세기 1:28) 그 선물이 음란하고 난잡한 가학적 변태성욕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청소년들이 인식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네. 조카에게 청소년 자녀가 있다면 그런 내용의 책을 그 자녀에게 읽혀도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육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폭행이나 가스라이팅 성범죄, 청소년들의 성범죄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조카의 작품은 이 시대의 음란한 풍조에 돛을 달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네. 중고생들의 필독서로 선정되는 것은 삼촌인 나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네. 굳이 그렇게 작품을 구성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 셋째, 조카의 소설작품 세계에 대한 의견 조카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그 종결이 비극으로 끝나네. 작품을 읽는 내내 어둡고 답답하여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네. ‘카프카’의 소설 “변신”도 그 정도는 아니었네. 내가 29살까지 빠져 있었던 그 짙은 어둠과 절망을 다시 접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날 정도였다네. 그런대로 지성이 있고 분별력 있는 독자들은 억지로라도 작품이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지만 청소년과 같이 분별력이 약한 독자들은 ‘인생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작품의 세계에 동화할 위험성이 있네. 더구나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까 조금의 의문이나 비판도 없이 주인공의 인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길 수도 있네. 조카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허무와 절망을 심어주고 가끔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심지어 인생은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끔 만드는 힘이 있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이 출간된 후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사회에서 청년들의 자살이 급증했던 것은 대표적인 일이네. 문학은 어디까지나 문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카의 작품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데는 역기능(逆機能)을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네.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까발려 놓기만 했지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없다네. 그렇다고 종교성 강한 작품을 요구하지는 않네. 조카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네. 이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고 악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는 나폴레옹 전쟁과 농노 반란 등으로 어지럽고 어두운 시대에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보여주었고, 볼셰비키 혁명으로 피 냄새가 진동했던 러시아의 ‘파스테르나크’도 그랬고, 미국의 대공황이라는 어둡고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스타인벡’이 그랬으며, 2차 세계대전에 모국 독일을 떠나 망명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레마르크’도 그랬다는 것을 잘 알 것이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작가들이 극히 드물다는 게 안타깝네. 넷째, 제주도 4.3 사건, 6.25 한국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시각 제주 4.3 사건과 6.25 한국전쟁은 이념 대립의 비극적인 산물이고, 5.18은 군사독재정권의 재탄생에 반대하다가 확대된 비극적 사건이었네. 그 원인과 결과는 이미 상당히 밝혀졌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거론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네. 단지,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4.3과 6.25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유물론자들과의 대립 과정에서 발생한 민족적 비극이네. 또한, 6.25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진영(그리스도 교회를 인정함) 국가들과 북한을 앞세운 소련과 중국의 공산독재진영(그리스도 교회를 인정하지 않음) 국가들과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네. 제주 4.3은 남로당(공산주의자)의 선동과 난동에 휩쓸려 선량한 시민들까지 죽임을 당한 비극적 사건이네. 그러나 당시의 미군정(美軍政)은 대한민국의 헌정 수립을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을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네. 진압 과정에서 남로당으로 몰려 죽은 사람들이 많았네. 정말 가슴 아픈 역사라네.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과 갖은 혼란 속에서 넘어지고 비틀거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왔네. 이것을 보면서 인류 역사의 뒤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게 된다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힘을 하나님(God)이라고 한다네. 그래서 문학 작가가 비극적 현대사를 다룰 때는 극히 조심해야 하네.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 있고 서로 다른 관점들이 대척을 이루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을 어느 한쪽의 관점만으로 평하는 듯한 시각을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네. 잘못하면, 작가는 본의 아니게 특정 집단과 세력을 지지하는 홍위병 역할을 하게 되네.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그들에게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네. 국가비상사태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불가항력의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가해자인 경찰이나 군인이 자원해서 가해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소. 우리나라같이 두어 사람만 건너면 거의 다 알 만큼 높은 관계 밀도의 사회에서 이성적인 군경이 쉽게 총탄을 발사할 수 있겠는가? 시위 현장의 군경(軍警)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국가 권력을 집행하는 사람일 뿐이네. 그들도 우리의 동족이요 한 가정의 가장이요 아들이었네. 그들이 그 현장에서 죽었다면, 그들도 국가 권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네. 일반 시민이건 군경이건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네. 그래서 작가는 어떤 역사적 사건 속에 처한 인물의 모습을 그리되 그 사건의 진실 여부를 밝히듯이 풀어내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네. 특히 국내의 현대 역사를 바라볼 때 작가의 시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침반의 바늘처럼 움직여 그 진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세계의 명작이라고 하는 소설작품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풀어가고 있네. 예를 들자면, 5.18의 발발 원인은 몇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네. 나는 20대 중반에 그 시대를 살았고, 5.18의 시작이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남대 출신(1975학번)이네. 전남대 학생 40명이 5.18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네. 나는 대학 졸업(1979년) 후 1년여 동안 병역과 직장생활을 겸하던 중 1980년 5월 17일(토)에 친구들을 만나러 광주에 갔었네. 다음 날인 5월 18일(일)에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충남 태안의 근무지로 돌아가려고 군산행 16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네. 한두 시간만 늦었어도 광주에 갇혀 5.18을 겪어야 했고, 나의 기질상 그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네. (멀리서 5.18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오랜 세월 자책감에 빠져 있었네.) 만약, 당시에 ‘김대중 선생’이 한국에 없었다면 5.18이 일어났을까? 아마 5.18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네. 계엄령 선포 후 김대중 선생이 구금되었는데도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데모가 수그러들고 멈췄네. 그러나 광주는 데모가 더욱 심해졌네. 5.18은 민주화를 염원한 시민의식에서 기인했다고 하지만 그 원인을 한두 가지로 말하기는 쉽지 않네. 고대 일본에 찬란한 문화를 전수했던 백제왕국(678년간 존속)의 멸망부터 후백제(44년간 존속)의 멸망, 조선 선조 때의 기축옥사(호남의 지식인 1000여 명이 죽음), 호남인들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을 수호했다가 정유재란 때 일본의 보복을 당한 일(호남인 12만 학살설), 구한말에 호남에서 시작된 동학 전쟁과 일본의 호남 의병 수천 명 척결, 일본 강점기에 조선 분열 정책에 의한 호남 분리와 수탈, 1929년의 광주학생독립운동 후 일본의 노골적인 호남 탄압, 박정희 독재정권의 17년 집권 기간에 호남 홀대 등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배어 있었다네. 호남의 샛별 같았던 김대중 선생의 구금이 광주 사람들의 그런 피해의식 속에 배어 있는 분노에 불을 질렀다고도 할 수 있네.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23살까지 자라났다네. 지금도 내 고향 전라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부심은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한다네. 고향을 떠난 지 45년이 지났는데도 프로야구 해태․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한다네. 주위에서 누군가 전라도를 안 좋게 말하면 핀잔을 주기도 했다네. 대학 시절에 학생운동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흥사단 대학생 단체)에 두어 번 초청받았네. 하지만, 절대로 데모하지 말라고 통사정하시던 노모가 생각나서 그 단체에 발길을 끊었고 군사독재정권 반대 데모에 참여하지 않았네. 1980년대 초엔가, 학생운동을 했다는 고향 친구들이 국방연구기관에 근무하고 있던 나한테 ‘나라의 충견’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 그 친구들은 나중에 입시학원 강사로 취직해서 적잖은 돈을 벌었다네. 사회주의 이념에 물들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은근히 북한 공산체제를 옹호하며 우리나라의 정체(政體)를 부인하던 그들이 오히려 자유민주 체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이네. 나는 45년 동안 국방연구기관에서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면서 조국의 국방과 경제를 키우는데 내 인생을 통째로 바쳤네. 안전사고로 파열된 왼쪽 고막이 지금도 온전하지 않다네. 조카는 마치 이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못하여 살 만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작품을 몇 편 쓴 것으로 알고 있네. 여러 개의 국내 문학상도 탔네. 문학상 상금이 적잖은 금액일 것이네. 그런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오늘날 국내의 예술인들과 문학인들이 괜찮은 대접을 받는 것, 단편소설 한편의 원고료로 한 달 정도의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만큼 잘 살게 된 덕분이라고 생각하네. 조카가 30대에 한국 PEN협회에 선발되어 얼마 동안 외국을 순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네. 북한과 같은 공산독재 국가의 작가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네. 그 여행비용이 다 국민의 혈세에서 지급된 것이네. 우리나라의 산업일꾼들이 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라네.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모국 소련에서 추방까지 당했네. 중국의 몇몇 작가들은 인근 나라로 망명하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 공산주의 국가의 작가들처럼 추방당하거나 망명하지 않고 모국에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에 조카는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네. 아니, 종북 인사라고 비판받는 다른 작가들이나 정치인들도 그런 감사의 마음이 있는지 이 자리에서 묻고 싶네. 우리가 이만큼 자유롭고 넉넉하게 살게 된 것은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고 1948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지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6.25 한국전쟁에서 피 흘려 죽은 순국․호국 영령들의 희생의 덕이요, 우리 조국의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려 죽은 자유 진영 국가 장병들의 희생의 덕이네. 지금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도우려고 1만 5천 명의 군대를 파견한 것을 보소. 그리스도 교회를 잔해하고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체제를 보소. 현재 북한의 국민 복지 수준은 세계 172개국 중에 140위 권이라고 하네. 우리나라는 20위 권 안에 들어와 있다네. 오죽하면 그 많은 북한 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서 우리나라로 오겠는가? 8.15 광복 후 79년을 지나면서 한국의 자유민주 체제가 북한의 공산독재 체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었네. 이제 우리는 4.3과 6.25의 역사적 의미를 냉철하게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네. 다섯째,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학작품을 어떤 시각으로 쓰면 좋을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뜻이네. 그 이름처럼 ‘광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호남은 대체로 정의감과 의리와 단결력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네. 내가 태어나서 23살까지 살아왔고 24살부터 지금(68세)까지 외지에서 살아온 바로는 대체로 그렇게 느껴진다네. 한국 사회에서 3대 단체로 ‘대한민국 해병대 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와 ‘호남향우회’를 꼽는다네. 그래선지 호남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병대까지 나왔다면 국내에서 연결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우스갯말도 있다네. 내 고향 호남은, 조선 중기에 무능하기 짝없는 선조왕 때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의 공화주의를 표방하며 신분의 차이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고향 사람들에게 가르치다가 모반죄로 몰린 정여립 등 1000여 명이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죽었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그 사건으로 반역의 땅이라는 오욕을 뒤집어썼으면서도 기축옥사 1년 뒤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남해안 바다와 전라도를 사수했고 조선에서 제일 많은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그 의병들이 경상도(진주)에까지 원정 가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던 정의로운 지역이라네. 구한말에 탐관오리의 학정과 외세의 침략에 항거한 동학농민전쟁을 일으켰으며 잔존한 동학도들이 반일 의병 투쟁을 이어갔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던 정의로운 지역이라네. ‘의인은 고난이 많다’는 성경 말씀과 같이 정의감이 높은 호남지역은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었네. 6.25 한국전쟁 때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순교를 당했다네. 성경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과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씀과 ‘하나님께서 문을 열면 능히 닫을 자가 없다’는 말씀이 있네. 이 세상의 역사와 만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네. 이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네. 어떻게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느냐면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의 모델로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을 씻어내기 위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하여 이방 나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용하셨네. 70년의 바벨론 포로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포로들을 해방하셨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의 왕들을 세우시고 폐하시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네.(다니엘 2:21) 성경의 역사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관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알 수 있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우리나라에 이방 국가와 지도자들을 세워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네. 야만적이지만 선진화된 일본의 강점기에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500년 왕조 국가에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바꾸는 기초 작업을 행하시고 현대화의 기반을 놓게 하셨다고 생각하네. 이승만을 지도자로 세워 우리나라를 자유민주공화체제로 세우고 공산주의(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상) 세력으로부터 지키셨네. 박정희를 지도자로 세워 부강한 나라의 기초를 놓으셨네. 전두환과 노태우를 지도자로 세워 박정희가 다져놓은 기초 위에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만드셨네.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도자로 세워 경제의 터전 위에 자유와 인권과 복지라는 나무를 심어 우리나라를 명실공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드셨네. 하나님은 그 후로 세워진 지도자들을 통하여 나름대로 이 나라의 부족한 데를 채우고 부서진 데를 보수해 오셨다고 생각한다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아무리 독재정치에 항거해도 그 독재자나 지도자들이 자기의 역할을 다 할 때까지는 그 자리가 굳세게 지켜지는 것을 보았네. 때가 되면, 즉 지도자들의 역할이 다 끝나면 그들이 퇴임하거나 폐위되는 것을 보았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야만 국가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는 징계를 하셨지만, 자기 백성에 대한 뜨거운 긍휼지심(矜恤之心)으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셨네. 앞으로 4.3이나 5.18을 다루는 작품을 쓰는 문학 작가들이 이런 역사관과 시각으로 그 사건들을 다룬다면 어떨까? 5.18은 불의하고 야만적인 정권 탈취자에 대한 의로운 항거였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실패했네.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네. 그 후로 5.18은 명예 회복이 되고 그 피해는 보상되었네. 이제 문학 작가들도 이념이나 지역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세몰이에 영합하는 듯한 작품을 쓰지 말고 공평한 자세로 써야 할 것으로 생각하네. 또한,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파는 듯한 시각으로만 쓰지 말고 이제는 양쪽의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쓰면 좋겠네. 어둠을 말하되 빛을 말하고, 절망을 말하되 희망을 말하고, 다툼과 갈등을 말하되 화해를 말하며, 고통을 말하되 회복과 위로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한테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셨듯이, 양쪽의 피해자들과 상처받은 광주시민 모두를 위로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고 참다운 인류애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 게다가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게 있네. 5.18이 정당화(正當化)되고 국가 차원의 역사적인 기념비가 되려면, 이제 광주광역시도 유공자 명단을 온전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명단 관리를 국가 보훈부로 넘겨야 할 것이네. 유공자 보상금이 국민의 혈세인 국가 예산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네. 유공자 명단 관리를 국가보훈부로 넘기지 않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반국가적인 행위로 볼 수도 있네. 그것은 5.18 정신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네. 따라서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5.18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네. 광주는 정의로운 지역답게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네. 또한,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되네. 대를 이어가면서 후손들에게 분노를 물려주어서는 안 되네. 이제 5.18의 진상이 충분히 규명되었고 피해를 보상받았다면 과거를 용서하고 빛고을답게 밝게 살아야 할 것이네. 이제부터는 국내 작가들이 5.18을 그런 방향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광주시민을 비롯한 호남인들은 공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동성애(同姓愛)를 합법화하려는 세력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려는 불의한 세력이네. 광주시민과 호남인들은 영적 분별력을 갖춰서 그런 불의한 세력을 비판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협조해야 할 것이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이 건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네. 여섯째, 조카가 세상에 밝음과 소망을 주는 작가가 되려면 조카는 50세를 넘었네. 예부터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 하네. 하늘의 명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인간과 세상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아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조카가 세상에 빛과 소망을 주는 작가가 되려면 먼저 우리 인간의 근원을 알아야 할 것이네. 성경 이외에 세상의 어떤 책도 우리 인간과 세상의 근원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과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네. 지금도 나를 비롯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믿고 있다네.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되 자기 형상을 닮게 만드셨다네. 하나님이 자기를 닮은 인간 아담과 하와를 얼마나 사랑하셨겠는가? 우리는 자식 사랑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표현하네.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한 것이네. 다윗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하나님)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하고 노래할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네.(시편 10:10)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천사장 루시퍼(마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질시하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하였다네. 그것이 최초 인간의 타락이었는데, 그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것이네. 그 파괴된 형상은 후손에게 유전되고 있다네. 그 후로 지금까지 ‘하나님’과 ‘공중 권세 잡은 자(마귀)의 영’은 인간을 가운데 두고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네. 마귀는 자기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귀신)들까지 동원하여 인간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광분하고 있다네. 마침내 2000년 전에 하나님은 마귀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려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네. 이 세상을 불로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 인류를 구하려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네.(요한복음 3:16~17) 그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여기서 도둑은 마귀를 가리키네. 마귀는 우리 인간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일을 행하네. 그 일은 우리 인간이 육체의 일을 행하게 만들어 죄악 속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 어둠의 일이네.(갈라디아서 5:19~21) 즉, 십계명을 어기는 일들을 행하게 만드네. 우리 인간은 빛이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둠 속에 빠져 있다네. 아무리 세상 종교와 학문에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그는 몽학 선생에 불과하네. 우리는 태초에 범죄했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네. 다윗도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탄식했네.(시편 51:5) 결국에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셨다네.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부활)으로써 우리에게 영생(永生)이 있음을 보여주셨다네. 부활 후 40일 만에 예수님이 하늘(천국)로 승천하셨고, 그 10일 후에 우리에게 예수님 대신에 성령(聖靈)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살도록 만드셨다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나는 조카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가련한 인물들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네. 조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모르기 때문에 조카는 영적인 어둠 속에 빠져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조카같이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네. 그들의 상처 난 심령을 치유하여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네. 그들의 부부생활과 가정을 회복시켜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고 있네. 사람들 대부분은 원치 않게 태중에서부터 그 심령이 상처를 받고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부 환경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네. 107년 전에 어떤 어머니는 이미 5자녀를 두고 있는 데다 궁핍한 가계로 인해 임신한 막내를 낙태하려고 양잿물도 마시고 몇 번이나 언덕에서 뛰어내렸지만 결국 그 막내를 출산했다네. 그 막내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라네. 그분은 태중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겠는가? 1984년에 제작된 낙태 반대 교육 영화 “소리 없는 비명”(https://youtu.be/YXi7NmLw-nU)을 보길 권하네. 태중의 아이는 웃고 울기도 하고 음악․노래 소리와 부모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네. 나는 잉태 1년여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에 큰 장애를 입으신 아버지와 손위 누이의 출산 후유증으로 얼굴이 심하게 뒤틀려진(와사증) 어머니 사이에서 쉰둥이로 태어났네. 두 분의 절망감과 우울증과 열등감과 대인기피증을 물려받았는지 그 증상들이 유독 사춘기와 청년 시절에 극심한 허무감으로 나타났다네. 그 시절에 일어난 집안의 불행한 일들로 인하여 그 허무감은 극도에 달했다네. 자살도 생각할 정도였다네. 그런데 30세에 나의 상처받은 심령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다네. 하나님의 빛을 받은 것이네. 그 후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 전도자로 살아왔다네. 나의 영혼이 다시 태어남(거듭남)을 경험한 후부터, 나는 영혼이 마귀에 의하여 망가지고 깨지고 상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고 회복하는 일에 전념해왔다네. 하나님은 정신의학을 비롯한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영혼들을 치료․회복시키는데 나를 사용하셨다네. 성경은 일곱 귀신 들린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귀신이 쫓겨나가고 회복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네.(누가복음 8:2) 군대 귀신이 들려 미친 남자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사건도 기록하고 있네.(마가복음 5:2~4). 성경은 마귀의 졸개인 귀신들이 심령이 약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 영혼과 인생을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네.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도 귀신들의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네. 조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세상의 권력이나 인습 등의 억압으로 그 심령이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영혼들이 마귀한테 도둑질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질병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능력과 말씀으로 치유된다고 믿는다네. 우리 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네. 그런 사람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면 그들의 영혼은 살아나고 회복된다네.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정신질환자나 알코올․마약 중독자나 동성애자가 치유된 일들이 수두룩하고, 나의 교회도 그런 경험이 있다네. 조카가 부디 하나님의 빛을 받기 바라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축원하네. 영화 “벤허”를 알 것이네. 그 영화의 원작인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루이스 월리스’라는 대중 소설가의 장편소설이네. 지독한 불신자였던 그는 기독교를 혐오하여 성경 속의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관련 근거들을 찾다가 결국 회심하고 그 소설을 썼다네. 그 근거 자료들을 토대로 쓴 그 소설은 물론 영화가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넘치는 감동과 소망을 안겨주었다네. 그는 노벨문학상은 못 받았지만, 그 한편의 작품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밝은 빛을 비추어주고 있네. 나는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 영화를 서너 번 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하네. 10여 년 전에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읽어보았네.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사과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기무라 아키노리’의 체험담을 쓴 전기이네. NHK에서 방송했던 “기적의 사과”를 시청했던 어떤 아가씨는 자살을 계획하다가 포기하고 감사의 글을 기무라씨에게 보내왔고, 아오모리현의 조폭 야쿠자 두목은 자기 부하들을 보내서 기무라씨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네. 우리 부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르네. 나는 그 책을 한 권 더 사서 나의 자녀들에게 읽혔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선물했다네. 나의 사랑하는 조카가 앞으로는 그 같이 이 세상에 빛과 소망을 안겨주는 작가가 되길 바라네. 내가 조카의 책 수십 권을 사서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저자가 바로 내 조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일들이 진저리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에 어둠과 절망을 더 얹어주는 작품이 아니라 세상을 밝게 비춰 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작품을 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먼저 조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에 비추기를 바랄 뿐이네. 이 지구촌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요 인류를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핏빛 사랑의 편지인 성경책을 반드시 반드시 읽어보길 바라네. 나의 사랑하는 조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같이 뜨거운 사랑의 작가요 창조주 하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작가요 사람들한테서도 사랑받는 작가로 다시 태어나길 축원하네. 사랑하는 조카에게 다음의 말씀(전도서 12장)을 전하고 싶네.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맺는말 사랑하는 조카, 내가 지금까지 조카에게 한 말들이 조카의 마음을 아프게 찌를 것을 생각하니 나도 이 편지를 쓰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몇 번을 울었다네. 과거에 조카가 매스컴에서 “나도 빛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네. 그래서 더더욱 이번에 조카에게 ‘참 빛’이 무엇인가를 얘기해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네. 지금까지 조카는 그 ‘참 빛’을 모르고 살아왔겠지만, 이제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9~12)를 만나 온 세상에 사랑과 평화와 위로를 안겨주는 위대한 작가가 되길 기도하네. 30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쓰느라 너무 수고했으니, 이제는 쉬엄쉬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가길 축원하네. 2024년 11월 7일 한강 작가를 사랑하는 삼촌 한충원 목사대전 안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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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참고로 노벨 문학상 관련하여 언제나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일인 고은 작가가 노벨상 발표가 일을 때면 기자들이 집앞으로 몰려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한국인이 누구이겠느냐며 당연히 고은 작가를 지목할 정도다. 그리고 고은이 노벨상 수상이 불발되면 그 이유가 한글로 된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섬세한 한글의 선세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고은은 한국인중 가장 많은 후보에 오른 작가로 알려졌다.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가서 인지 언론과 댓글은 그의 역사왜곡과 관련된 작품들과 그를 수상한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시위를 국가적 망신이라며 뉴스를 싣고 있다. 같은 논리로 박근혜 탄핵을 외국에서도 주장했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국가 망신" "한심한 분들" 등 비판 제기
-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수상 때도 비슷한 사례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일부 보수단체가 수상을 반대한다며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온라인에서는 "국가 망신"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각주
- ↑ 1992년 2월 29일 폐교
- ↑ 한강의 가장 대포적인 문제적 작품이다.
- ↑ 입술 립스틱 화장
- ↑ 4.0 4.1 황석영도 이문열도 아니었다, 노벨문학상이 한강 선택한 이유, 중앙일보
- ↑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진짜 나은가?
- ↑ 이미 2024년 경제 지표등등에서 일본이라는 나라까지도 따라 잡았다.
- ↑ 김규나 작가는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선 단편소설 '내 남자의 꿈',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선 단편소설 '칼'이 당선됐다. 이후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등을 집필했다.
- ↑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데 비판을 해?라며 댓글테러, 마녀사냥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 ↑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로는 전광훈목사, 전주남목사, 홍동명목사, 조나단목사, 장학일목사, 장경동목사 등 그리고 신학학자로 청교도 신학원에서 강의하며 전광훈 목사의 설교와 신학적 배경등을 토크하는 멘토그룹이 있다.
- ↑ 직접 얘기해도 되지 않냐 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 연락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