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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는 자신의 방계 선조 김자점이 역신으로 처형 당하는 때에 같은 집안으로 몰려 쫓겨서 황해도로 이주하게 됐다고 하였으나, 김자점 쪽과는 계보가 나뉘어진지 오래라서 사실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김자점과, 같은 대의 김구의 선조는 사실상 남남 수준인 14촌간으로 벌어져 있으므로 한쪽이 역신으로 몰렸다고 해도 다른 쪽이 연좌죄로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범 김구는 자신의 방계 선조 김자점이 역신으로 처형 당하는 때에 같은 집안으로 몰려 쫓겨서 황해도로 이주하게 됐다고 하였으나, 김자점 쪽과는 계보가 나뉘어진지 오래라서 사실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김자점과, 같은 대의 김구의 선조는 사실상 남남 수준인 14촌간으로 벌어져 있으므로 한쪽이 역신으로 몰렸다고 해도 다른 쪽이 연좌죄로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와 같은 이들의 관계는 구 안동 김씨 족보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인터넷에서도 확인된다.<ref>[https://blog.naver.com/roaltlf/220016470486 구 안동김씨 익원공파 세계도] 네이버 블로그</ref>
위와 같은 이들의 관계는 구 안동 김씨 족보에서 확인이 가능하며<ref>[https://www.familysearch.org/ark:/61903/3:1:3QS7-996K-NDSJ?i=37&wc=4X9C-Z3J%3A1589984915%2C1589982393%2C1589984921%2C1589984917%2C1589982392%2C1589991110&cc=1398522 안동김씨대동보( 安東金氏大同譜), 1979, 권 8 p.48] : 김만묵 - 김재하 - 김구 - 김인, 김신</ref>, 인터넷에서도 확인된다.<ref>[https://blog.naver.com/roaltlf/220016470486 구 안동김씨 익원공파 세계도] 네이버 블로그</ref>


또한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의 3번째 조사 진술서에는 자신이 7대 독자라 했으나<ref>[http://kyudb.snu.ac.kr/pf01/rendererImg.do?item_cd=MGO&book_cd=GK26048_00&vol_no=0001&page_no=015a 건명 : 金昌洙 三招. : 015a] </ref><ref>김창수(金昌洙)와 치하포 여점(旅店) 주인 이화보(李化甫)에 대한 취조 기록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26048_00&vol_no=0001 『報告書』 0001권, 奎26048, 010a-020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ref>, 족보에는 부친이나 조부 모두 형제들이 다수 나오므로 사실이 아니다.
또한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의 3번째 조사 진술서에는 자신이 7대 독자라 했으나<ref>[http://kyudb.snu.ac.kr/pf01/rendererImg.do?item_cd=MGO&book_cd=GK26048_00&vol_no=0001&page_no=015a 건명 : 金昌洙 三招. : 015a] </ref><ref>김창수(金昌洙)와 치하포 여점(旅店) 주인 이화보(李化甫)에 대한 취조 기록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26048_00&vol_no=0001 『報告書』 0001권, 奎26048, 010a-020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ref>, 족보에는 부친이나 조부 모두 형제들이 다수 나오므로 사실이 아니다.

2022년 3월 27일 (일) 18:31 판

구 안동 김씨 (舊 安東 金氏) 姓氏
관향
경상북도 안동시
시조
김숙승(金叔承)
중시조
김방경(金方慶)
주요인물
김영돈, 김영후, 김수동, 김제갑, 김찬, 김시민, 김응하, 김시양, 김자점, 김구
인구
974,440명 (2000년)
동음이의.png 다른 뜻에 대해서는 안동 김씨 문서를 참조하세요.

구 안동 김씨 (舊 安東 金氏)경상북도 안동시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신라 경순왕의 후예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을 중시조로 한다.

분파

  • 파조 김숙영(金叔永) : 경순왕 후손으로 벼슬이 공부시랑(工部侍郎)이었다. (구)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장(金萇) :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으로 벼슬이 장령(掌令)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김희수(金希壽) : 김장의 5세손으로 문과 급제후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이었다.
    • 김홍도(金弘度) : 김희수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전한(典翰)이었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
    • 김첨(金瞻) : 김홍도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校理)였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
    • 김수(金睟) :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였으며, 시호가 소의공(昭懿公)이며,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 파조 김용(金龍) : 벼슬이 방약박사(方藥博士)였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정(金挺) : 벼슬이 지보주사[知甫州事였으며, 일파를 이루었다.[보주(甫州)는 지금의 예천(醴泉)으로, 지보주사는 지금의 예천 군수이다.]
  • 파조 김구정(金九鼎) : 벼슬이 직장(直長)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김광수(金光睟) : 김구정의 현손으로 진사(進士)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파조 김유선(金惟詵) : 벼슬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이생(金理生) : 벼슬이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후손 김선(金宣)[선(愃)이라고도 쓴다.] : 벼슬이 전법판서(典法判書)이었으며, 수안(遂安)으로 분적(分籍)하였다.

익원공파(翼元公派)

김방경(金方慶, 1212~1300) - 김순(金恂) - 김영후(金永煦, 1292~1361) - 김천(金蕆) - 김사형(金士衡, 1341~1407)
  • 김사형의 아들 김승(金陞)은 김종준, 김종한, 김종윤, 김종숙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장남 김종준(金宗浚) --> 18대손 김구(金九, 1876~1949)
막내 김종숙(金宗淑) - 김질(金礩, 1422∼1478) - 김성동(金誠童) - 김언(金漹) - 김억령(金億齡) - 김탁(金琢) - 김자점(金自點, 1588~1651)

백범 김구는 자신의 방계 선조 김자점이 역신으로 처형 당하는 때에 같은 집안으로 몰려 쫓겨서 황해도로 이주하게 됐다고 하였으나, 김자점 쪽과는 계보가 나뉘어진지 오래라서 사실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김자점과, 같은 대의 김구의 선조는 사실상 남남 수준인 14촌간으로 벌어져 있으므로 한쪽이 역신으로 몰렸다고 해도 다른 쪽이 연좌죄로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와 같은 이들의 관계는 구 안동 김씨 족보에서 확인이 가능하며[1], 인터넷에서도 확인된다.[2]

또한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의 3번째 조사 진술서에는 자신이 7대 독자라 했으나[3][4], 족보에는 부친이나 조부 모두 형제들이 다수 나오므로 사실이 아니다.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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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보기


각주

  1. 안동김씨대동보( 安東金氏大同譜), 1979, 권 8 p.48 : 김만묵 - 김재하 - 김구 - 김인, 김신
  2. 구 안동김씨 익원공파 세계도 네이버 블로그
  3. 건명 : 金昌洙 三招. : 015a
  4. 김창수(金昌洙)와 치하포 여점(旅店) 주인 이화보(李化甫)에 대한 취조 기록 : 『報告書』 0001권, 奎26048, 010a-020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