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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Militarism / )는 군사력을 국가의 최우선 순위로 두며 정복, 침략, 약탈, 무기 생산 등 일련의 전쟁 행위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는 이념이자 체제이며, 영토 확장을 국가의 목표로 삼는 사상이다.

국가에서,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 즉 정복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군대와 군사적 요소를 국가적 정책이나 제도의 제1순위로 위치시키는 사상 또는 정책 양식을 의미한다. 정치, 문화, 교육, 경제,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국가의 요소들이 군대에 종속되며, 결국 목적은 제국주의에 의한 정복이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군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흐른다. 또는 전시나 필요시에 전체주의가 군국주의로 옷을 덧붙이기도 한다. 양자는 항상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위기 사태가 끝나도 또 다른 위기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라도 해제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나라는 병영국가가 계속 유지될 수도 있게 된다. 보통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이용하며, 국가난이나 대외적 문제를 이용한다. 근대까지만 해도 종교를 이용했으며 우생학 등의 과학을 이용하기도 한다.

군국주의(Militarism)는 '군사주의()'라고도 하는데, 사실 어원까지 생각해서 영문을 직역하면 '민병대주의'라는 뜻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고대 스파르타나 로마 제국처럼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된다는 뜻의 전 국민 민병대화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의역하면 군국주의보다는 '군사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군사 조직의 특성상 효율성을 중시하므로 군부에게 정치를 위임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이게 전체주의와 결합되면서 병영국가로 재탄생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기는 한다. 정확하게는 군부가 무능하면 그냥 붕괴되는 수순이지만, 유능한 군부가 일개 대륙에 대한 완전한 정복이라도 성공하는 순간 세계의 패권국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완감조절이라도 잘 해서 전체주의와 결합되면 병영국가가 된다.

역사

군국주의는 근대 이후에 정착된 사상이 아니라 고대부터 흔한 사상이었다. 고대부터 이미 근대 이후의 군국주의 국가들과 일치하는 행보를 보인 나라가 많았다. 이 시기에 확실하게 군국주의 국가라 칭할 만한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스파르타가 있다. 스파르타는 군사력에 국가의 모든 것을 집중했다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군국주의 체제의 국가이며 군국주의의 예시이자 기준이라 할 만하다.

군국주의의 역사

근대 이후에 정착된 사상으로 고대에도 스파르타로마 제국 등이 군국주의 국가로 유명하지만, 군국주의가 문제가 되는 건 근대 이후이다. 고대 로마의 경우에는 정치가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군국주의가 아니었던 적도 있다. 로마는 법의 힘이 강했고, 한 사람의 독재를 막기 위해 두 사람의 집정관이 존재했으며(공화국 시절), 군사 지도자의 독재를 막기 위해 전시 혹은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에만 독재관(Dictator)이 존재했고, 전쟁이 끝나면 독재관에서 물러나도록 되어 있었다.

세간에서는 고대 로마를 군국주의 국가로 여기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반만 맞는 사실이다. 로마는 강력한 법치의 전통을 가진 나라였고 국민들 스스로도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공화정 시기에는 권력 분산을 위해 집정관을 두 명 뒀고, 전시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에만 임시직인 독재관(Dictator)을 두었으며, 그마저도 임명 사유에 해당하는 상황이 끝나면 곧장 물러나야 했다. 최초의 로마 제국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안토니우스와의 내전 직후 60만 명의 군단병을 15만 명으로 감축했다. 또한 유명한 군단병 이외에도 많은 보조병을 운용했는데, 이는 더 적은 전비로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는 로마 제국이 평화 상태의 경제력으로 무난히 돌아가는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군대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한참 후인 군인 황제 시절부터이다.

군국주의는 제국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나치즘 등을 낳게 되는 연쇄효과가 있었다. 특히 스파르타의 경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전하기는 했으나 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 온 그리스를 거의 황폐화시키는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리스 북부의 신흥 세력인 마케도니아에게 등 뒤에 칼을 맞고 멸망했다. 물론 마케도니아도 스파르타처럼 군국주의 국가였고, 마케도니아는 페르시아 제국까지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격하는 등 유라시아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병에 걸려 바빌론에서 사망하자 2대도 못 버티고 정복한 영토를 모두 잃었다.

군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근현대 국가 중에는 프로이센 왕국일본 제국이 있고, 가장 유명하다. 프로이센은 모든 사회 체제를 군사화 하고자 했고, 군대 뿐만 아니라 황제 이하 전 내각의 장관들과 공무원들이 제복으로서 군복을 걸쳤다. 일본 제국은 한술 더 떠서 아예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 시간에도 군복을 입고 허리에 칼을 찼을 정도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이렇게 했다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폐지되었다. 이런 문화는 프로이센 주도로 나타난 독일 제국과 그 이후의 독일 제3제국 역시 계속 계승했다. 프랑코 정권 시절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밖에 넓은 의미로 가면 북한에서 김일성의 불법 독재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 불법 독재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등장한 김정일의 정치방식인 선군정치 등도 포함될 수도 있긴 하지만 북한, 중공, 소련 등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스파르타, 로마 제국은 커녕 이탈리아 왕국, 독일 제3제국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독재자가 권력을 독식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민병대주의로부터 탄생한 군국주의(Militarism)로 보기는 어렵다.

현대에는 프로이센 왕국일본 제국의 군국주의가 유명하다. 프로이센 왕국은 황제 이하 전 내각의 장관들이 군복을 입을 정도였고, 이런 군복 입기는 독일 제3제국에도 계승되었다. 물론 군복만 입은건 아니고, 모든 사회 체제를 군사화 하고자 했다. 일본은 전체주의가 일본의 부시도와 결합하여 군국주의가 되었다. 1930년대 일본은 거대한 병영 사회였으며, 민간이 신성한 군대를 따라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흘러갔다. 이리하여 민간 정부가 폭주하는 군부를 제어하지 못해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이는 일본 제국은 물론이고 군국주의 전체의 멸망까지 초래했다.

군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국가 중에 전통 있는 전제군주정 국가나 제정 국가는 많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정복자 출신 군인이 황제를 참칭했을 뿐이라는 논리인데, 예시를 들자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 치하의 프랑스 제1제국이라는 경우이다. 로마 제국이나 대영제국, 태양왕 시기의 프랑스 등 권력이 강한 전제군주 치하에서는 오히려 문민통제적인 경향이 강했다. 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 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나 왕의 입장에서 군사비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자신의 권력에 대항할 반란군을 키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군대는 군비를 퍼먹는 데다 할 일이 없으면 딴 맘을 먹기 마련이므로 정복 활동이나 외침의 위협이 없는 한 최대한 군축하는 것이 정권의 안녕을 지키고 왕가 및 지지층의 재산을 늘리는 데에 유리했다. 물론 강대한 영토와 정권을 유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이 필요하기 마련이지만, 군사력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통제와 영토의 확고한 점유권이었다. 이것이 보장된다면 제국의 유지 자체에 그렇게 많은 군대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제국이 성립했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주변의 힘 좀 쓰는 군벌들은 전부 평정되었다는 이야기이므로, 특별한 전쟁 위험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거두어지는 세금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국력과 경제력에 의해 큰 병력이 필요 없이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중앙 권력이 강할수록 확고한 지배권 자체가 흔들리게 될 경우 손 한번 못 써보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군주나 황제 직속 상비군은 한 지역의 군벌 정도는 압도할 힘을 가지지만 여러 지역에서 징집을 거부하고 들고 일어난다면 막을 힘이 없다. 대체로 제국이 성립되고 나면 이후엔 군사적인 측면 보다는 인문, 문화적인 측면에서 크게 발달이 일어난다. 물론 주변에 다른 제국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제국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제국들도 군비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며 긴장이 높아지면 서로 편을 나누게 되기 때문에 제국은 주변에 다른 제국이 성립되는 것을 견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위해 이런 조짐이 있으면 군대를 키울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외에 좀 넓은 의미로 가면 프랑코 시절의 스페인 역시 군국주의에 포함되고, 3, 4, 5공 시절의 한국 군사정부 등 수많은 군사독재정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경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체주의의 정점을 찍고 그 체제 유지를 위해서 내부를 억누르는 목적으로 군사를 동원한 결과물이다. 비대해진 군사기구 또는 군대적 시스템이 사회 전체를 압박하고, 국가 경제에 비해 과도한 군사비 부담이 경제를 압박하며, 이에 대한 반발을 군사력으로 억누르는 과정에서 정치 시스템이 압박되는 포괄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남성이 군복무를 하기 때문에 군국주의적 성향이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교련 과목을 생각해보자. 대표적으로 정치권이나 언론이 군대의 여러 문제점을 비판하면 "민간이 군대에 간섭하면 안된다", "정치인들이 군에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식의 논리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군국주의적 논리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는 신성불가침이 아니고, 반드시 민간 정부의 명령을 받아야 하며 언론의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좀 넓게는 '까라면 까라'거나 '안되면 되게 하라' 등도 군국주의의 논리로 이해하는데, 이게 권위주의인지 전체주의 쪽의 문제인지 군국주의 쪽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물론 서로 워낙 연관되어 있어서 학자들도 분리하기 어려워 한다.

문제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국민에게 징수하는 세금은 군대가 지켜야 할 노동의 산물을 거의 삼켜 버린다. >---- >레프 톨스토이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이렇게 답했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력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이 믿게 하는 것이다(足食, 足兵, 民信之矣).”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병(兵)을 버려라.” 자공이 또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가지를 꼭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식(食)을 버려라.[* 이 당시의 식(食) 즉 먹고 사는데 필요한 쌀을 비롯한 곡식들은 현재에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욱이 경제의 근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식(食)은 경제력.]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 >논어 中[* 즉 하나의 정치체계가 존립하게 하는 데에는 '대중의 지지 > 경제력 > 군사력' 순으로 중요하다는 뜻. 군사력이 아무리 강한들 경제력과 대중의 지지가 낮으면 정치체계는 불안정해지고 궁극적으로는 무너지며, 경제력이 아무리 강한들 대중의 지지가 낮으면 역시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군국주의 국가는 이 우선순위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각 공들은 전쟁 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과 그것을 수행하는 조직, 규율에 대해 정통해지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 지도자에게 오로지 필요한 덕목은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를 보이는 국가는 자본주의적 이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중세시대 전쟁을 통해 가능했던 일들에 대한 미화된 기억의 발현일 따름이다. > >'A prince should thus have no other thought or aim than war, nor acquire mastery in anything except war, its organizations and discipline; for war is the only art expected of a ruler.'... It is manifest that this morphology of the State does not correspond to a capitalist rationality; it represents a swollen memory of the mediaeval functions of war. >---- >페리 앤더슨,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pp. 32-33.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병은 군국주의다. 전 국민으로 하여금 무장을 준비하게 하고, 국가를 거대한 '전쟁 기계'(Kriegsmachine)로 되게끔 하며, 모든 건강한 시민을 군인으로 만들고, 세금과 비용을 극도로 올리고, 상존하는 전쟁 위험을 야기하며, 사회적인 상황을 파괴하고 재앙을 불러와 걱정 없이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 >19세기 독일 제국의 가톨릭 신학자 게오르크 미하엘 파흐틀러(Georg Michael Pachtler).[* 아누아리우스 오세크(Annuarius Osseg)란 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볼프람 베테의 저서 <[군국주의(Militarismus in Deutschland)]> 에서 발췌.

군국주의 국가는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정치, 문화, 교육, 경제까지 국가의 거의 모든 요소를 군대에 종속시킨다. 이 때문에 군국주의는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로 흐르며 국민들의 인권을 탄압한다. 다시 말해 군국주의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대가 존재하는 게 아닌,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사회가 돼버린다. 그럼에도 군국주의 국가가 그렇게 국력을 쏟아부은 만큼 건강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냐면 그건 또 아닌데, 왜냐면 이는 오직 순전히 군부의 능력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능한 군부는 적보다 더 위험하고, 유능한 군부도 실수를 한다면 군국주의의 장점을 크게 잃어버릴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력은 곧 군사력에 가깝다. 괜히 테오도르 몸젠이 "괭이(=경제)로써 얻은 은 영원하다"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군국주의 체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거스르기도 한다. 본래 군대라는 조직은 전쟁 이외에는 생산적인 일을 딱히 하라고 만든 조직은 아니므로, 국가 경제는 군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군국주의 국가는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맡을 인재들과 경제적 역량까지 군대에 모두 쏟아 부어버릴 수도 있다.

군사력 증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 국가들은 경제가 부실해지게 되고, 정부는 이로 인해 약화된 군사력을 메꾸기 위해 더더욱 군비 증강에 힘쓰게 된다. 이것이 도를 넘으면 이는 다시 경제가 무너지는 끝없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군국주의 국가가 군대에만 모든 예산을 집중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활을 파괴하고 국가의 모든 요소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한 민중들의 불만을 막기 위해 군국주의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군대를 동원해 약소국들을 점령하여 식민지를 확장하거나 주변 열강들과 대전쟁을 벌이는 도박을 시작하여 약탈을 통해 국가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많다. 그러지 않으면 혁명과 폭력뿐이라서 끝내 정부는 민중의 지지를 완전히 잃는다.

비슷한 내용으로 북한선군정치가 해당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이 50년 이상을 버텨오고 있는 있는 것처럼 선군정치는 확장주의적이고 공격적인 극단적 군국주의라기보다는 군대를 동원하여 내부의 민간인들을 거의 완벽하게 감시하고 통제하고 탄압하는 극단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한 형태에 가까운데, 여기에 핵무장까지 하니 거의 영원한 지옥 그 자체를 구현해두게 되었다. 북한은 그것도 공산주의 독재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전체주의에 군국주의적 색을 조금 덧입힌 경우라서 군부통제가 조금은 되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쿠데타로 인한 붕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군국주의 국가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전쟁을 해서 타국을 약탈하거나 식민지를 경영하며 경제력을 충당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전쟁에 집중한 체제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식민지 경영은 현대적인 시장경제보다는 이득이 적은 경우도 있다. 군국주의 국가는 군수물자 외에는 시장경제를 운영할 생산력이 없으니 식민지 경영에만 기대야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제국주의 시기인 18세기~19세기에서 중점적, 장기적으로 식민지를 경영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같은 식민제국들도 군국주의 색채를 띈 적은 많았다. 이들은 식민지 체제의 장기적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일부 식민지인에 대해서도 본토에서 교육도 시켜주고, 시민권도 주고, 감투도 몇 줄 만큼의 최소한의 개방성은 있었고 법치성도 좀 있었다.

게다가 군국주의 국가의 이러한 운영을 위해서는 주변국의 군사력이 식민지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자국보다 현저히 군사적 역량이 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다시 말해 자신보다 강한 나라들에게 잘못 덤볐다간 그대로 끝장이다. 애초에 그 자랑스러운 조국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이 엄청 희생하는데, 실전에서 그 군대가 제대로 못하면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1970년대 키프로스 전쟁에서 튀르키예군에게 패하여 무너진 그리스 군사정권,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아르헨티나레오폴도 갈티에리 정권, 걸프 전쟁에서 미국 해병대에게 전멸한 이라크사담 후세인 정권이 전형적인 사례다.

사실 고대중세 같은 전란의 시대에서는, 약물처럼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수준으로만 사용된다면 군국주의가 유효할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사방에서 이민족이나 적국의 침공이 몰려와 나라나 민족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는 게 일상이었던, 그야말로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의 시대였다. 그러니 특히 작은 국가일수록 군대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었다. 전쟁이 만연한 무제한 전시체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물론, 해당 국가가 전쟁 외에도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산력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대영제국, 프랑스 식민제국, 독일 제3제국, 일본 제국 등 군국주의를 택했던 국가들이 서로 싸우다가 몰락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들은 근대화로 키운 막강한 국력을,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호간의 전쟁에서 과도하게 소모하며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리고 미국이 어부지리로 패권을 가져가게 되었다. 또한 무엇보다 전리품 자체를 소멸시키는 핵무기라는 결전병기가 등장하여 상호확증파괴가 성립하여 인류는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군국주의를 채택하는 나라는 없어지게 되었다.

물론 시대상을 초월한 담론으로 보면, 군국주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변호가 시민을 일괄적으로 교육하는 데에는 가장 효율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의무교육의 시초가 군국주의로 유명한 프로이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역시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나 "군대 갔다 와야 철든다."라는 속담 수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군대를 초, 중, 고 의무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종의 교육기관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있다. 이런 말들은 1950년대에 생겨났는데, 왜냐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10년대 한국의 문맹률은 무려 89%였고, 1931년에는 77%였으며, 막 해방되었던 1945년에도 78%나 될 만큼 매우 높았고 심지어 1950년대에도 한국의 문맹률은 거의 50%에 달했다. 이렇게 문맹률이 높다 보니 한국군에서는 병사들한테 한글 교육을 시켜 문맹 퇴치에 나섰고 농촌 출신 병사들에게는 농기계 사용법도 가르쳤다. 그래서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라는 격언이 생겨난 것이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정훈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방의식을 가지게 하는 좋은 교육기능도 했다. 군대는 국방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집단이므로 병력의 정신적인 정훈 및 훈육 시설로서도 제대로 기능해야 할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

이는 아테네 태생이었음에도 침략자인 스파르타를 자국인 아테네보다 선호했던 플라톤 때부터도 나왔던 논리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거쳐 보자면, 군국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주입식 교육을 통해 빠르게 대량의 지식을 습득함으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변증법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경제의 발달 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의 문맹률 해결이 첫 번째이며, 높은 지식 수준과 인식 체계와 관련됨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병영국가(Garrison State)로 재탄생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둘 다 군대에 집중하지만 군부를 통제할 민간 세력이 없다면 군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고, 통제가 가능하면 병영국가가 되는 것이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안보 위협에 시달리고 있어 강도 높은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이스라엘대한민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국가 모두 2024년 현재에도 전시 상태에 놓여있는 국가로, 대대적인 군사화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군국주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깔려 있다.

근현대 군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예시

물론 군국주의란 것이 학자들마다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논란이 될 수 있다. 라스웰의 군국주의 정의에 따르면 서구권 민주주의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 특히 그의 학설이 발표되던 1962년 당시의 소련과 같은 모든 국가들이 병영국가요 곧 군국주의 국가에 해당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지나친 이분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이 군국주의냐는 논쟁에 있어서 비군사 부문까지 군사정신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군국주의며, 비군인의 정신상태가 군인의 정신상태가 아닌 나라는 아무리 많고 강력한 군대를 가져도 군국주의가 아니라는 프리드리히 슈테른탈의 정의, 알프레트 바그츠의 군의 제도, 형태, 결정양식, 정신상태가 민간보다 상위여야 군국주의라는 '정서적 군국주의' 이론, 게르하르트 리터의 대외정책이 군의 영향으로 폭력적이어야 군국주의 국가라는 이론, 엑카트 케르의 군대가 민간 정치권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군국주의 국가라는 이론 등이 있어 매우 다양하다.

냉전 시대부터 나온 군산복합체 이론에 따르면 현대미국조차도 군국주의로 분류될 수 있으며 전체주의의 정점을 찍고 그 체제 유지를 위해서 내부를 억누르는 목적으로 군사를 동원한 결과물인 군사독재정권도 여기에 들어간다. 따라서 여기서는 가장 확고히 군국주의 국가로 분류된 국가만 서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밑에 서술되어 있는 국가들은 자국을 지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의 체제 유지나 전쟁 대비 및 노동력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 고대 스파르타 - 군국주의의 원조.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국가이며 실제로도 전 국민 모두가 군인인 나라였다.
* 아즈텍 제국 -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자유민 남성은 모두 전사로 키우는 국가였다. 인신공양과 식인을 제외하면 스파르타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어찌보면 고대 스파르타의 궁극 진화형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치남파 농법과 주변 부족에 대한 철저한 착취로 스파르타와 달리 월등한 경제적 번영까지 누렸다.
* 1945년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다만 이 당시에도 독일의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군국주의적이었다. 바이마르 정부도 대공황 이후 혼란기가 되면서 외형만 이원집정부제였지 실제로는 대통령 비상대권이 자주 발동되는 등 권위주의적인 정치가 행해졌다.] 시기를 제외한 독일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나치 독일)[* 애당초 군사국가였던 프로이센이 본격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이 가능했던 중요한 이유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대왕과 같은 계몽 군주, 그리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 같은 유능한 재상들이 군국주의는 물론 내부 기틀을 이것저것 잘 닦아놓으며 무섭게 성장시켰고, 군사력만 강한 그저그런 국가에서 군사력도 강한 진정한 열강으로서 성장한다.]
* 파시스트 이탈리아 - (1922년 ~ 1943년)
* 일본 제국 - (1932년 ~ 1945년)
*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1962년 ~ 1988년)[* 흔한 군사독재 정권으로 보기 쉽지만 GDP의 60%를 국방비로 쓴 경력이 있던 국가이다. 1977년 징병제를 폐지하지만 군사정권에 의해 여전히 공공연히 징병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청소년도 징병해갔다.]
* 이라크 - (1979년 ~ 2003년)[*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전국민 모두를 징병해서 진짜 말 그대로 100만 대군을 만들었다. 물론 걸프 전쟁에서 참패하고 이라크 전쟁 이후 사담 후세인이 실각당하면서 이라크는 군국주의적 성향을 버리게 된다.]
* 에리트레아 - (1993년 ~)[*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국방비GDP의 21%를 쓰는 국가이다.]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3제국

>개들아, 영원히 살고 싶은 게냐? >Hunde, wollt ihr ewig leben? >---- >프리드리히 대왕[* 콜린 전투에서 도망치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외친 말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1959년 작 동명의 독일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된 후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독일 국가를 상징하는 문구로 자리잡았다.]

>다른 나라들이 군대를 가진 국가라면, 프로이센은 국가를 가진 군대다. >---- >볼테르

>프로이센은 대포알에서 태어난 국가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아무 의미 없는 프랑스의 이상주의인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에 대하여, >우리는 세 개의 독일적인 현실주의인 보병대, 기병대, 그리고 포병대로 대응한다[* 프로이센의 보병은 엄격한 군율로 유명했고, 프로이센의 기병도 관찰자들로부터 유럽 최고라고 칭송을 받았다.]. >---- >베른하르트 폰 뷜로

독일은 군국주의 국가로서의 역사가 길기로 유명하다. 독일은 프로이센 왕국시절부터 군국주의를 고수했는데 튜튼 기사단으로부터 출발했다는 통념과 다르게 월경지가 많았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영토를 지키고 베를린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려 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가 쥐어짜낸 고육지책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프로이센 공국도 본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멀리 떨어져있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군국주의를 고수하게 된 주요 원인은 클레베, 라벤스베르크 등의 라인란트 월경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프로이센 공국-동프로이센은 어디까지나 주변부에 불과했다. 호엔촐레른 가문이 가장 중요시하게 여긴 곳은 베를린, 포츠담이 있는 브란덴부르크였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베를린 중심의 중앙집권화를 위해 프로이센 공국 출신의 융커들을 전부 갈아버렸다.] 자연스레 독일 국민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바짝 군기가 든 모습과 상명하복의 자세가 갖춰진 순종적인 국민성을 오랫동안 요구받았는데, 그래서 독일이 군국주의에서 탈피한 오늘날에도 "독일인은 완고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유럽에는 많이 남아 있다. 이러다 보니 군국주의 하면 생각나는 문화나 이미지는 많은 것들이 독일에서 유래됐다. 당장 거위걸음, 분열 행진 같은 군국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제식의 시초도 독일이다.

독일의 군국주의는 19세기빌헬름 2세가 즉위하고 편 독일 제국세계 정책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됐다. 많은 식민지와 땅을 갖고 싶었던 빌헬름 2세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땀 흘려 구축한 외교관계를 모로코 위기, 영국과의 건함 경쟁 등으로 모조리 박살내버렸다. 결국 그전까지는 서로 대립하던 영국과 러시아 제국은 이를 계기로 영러협상을 맺어 그레이트 게임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편을 들어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이전부터 유럽에 큰 전쟁이 곧 터질 것이라 예측했던 독일의 전쟁 준비는 철저했다. 하늘을 찌르는 사기와 최신 병기로 무장한 독일 제국군의 병사들은 하나하나가 그 어떤 나라의 병사들보다도 정예라 할 만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아이들은 매일 전쟁 놀이를 하며 군사훈련과 교련을 통해 전쟁의 정당성도 배웠다.

독일 제2제국은 강력한 군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구어 낸 세계 최강의 육군력을 통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슐리펜 계획만 뚝심 있게 밀어붙였으면 프랑스 정복과 유럽 정복은 기본이고 나아가 세계 정복까지도 가능했지만, 1차세계대전에서 군부의 판단 실수 한 번만에 슐리펜 계획이 어그러지며 파리 함락을 눈앞에서 놓쳐버리게 된다. 결국 독일 제2제국의 사례는 군부가 더 유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례일 뿐, 군국주의의 태생적인 결함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 군부는 슐리펜 계획을 사실상 스스로 취소해버렸다.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를 밀어내며 선전했지만, 슐리펜 계획의 취소로 인해 서부전선에서는 무의미한 소모전만이 반복되었으며 프랑스를 간발의 차이로 정복하지 못했다. 이윽고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독일 제국의 전쟁 역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 무렵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리히 루덴도르프빌헬름 2세를 밀어냈지만, 이들이 군사 정권을 수립해 독재를 하면서 독일은 더욱 군국주의가 강화되었다. 그러다가 무제한 잠수함 작전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미국까지 연합군으로 참전하자 끝내 독일은 독일 11월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독일은 군국주의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당시 독일 국민들은 자국의 정치 체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독일 제국의 군국주의적 정책과 군주정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로 세워진 민주정은 독일 국민들에게 굴욕적인 패전의 부산물로 여겨졌기에 독일 국민들은 이를 외면했다. 따라서 나치 독일 정권이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독일은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3제국의 수뇌부는 유능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서유럽은 정복했으나, 이번에는 독일 제3제국의 동맹이었던 추축국들의 군부들이 유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련 정복 및 정벌의 꿈을 눈앞에서 놓쳐버리게 된다. 이 파장은 너무나 커서 유라시아 대륙 다른 쪽의 끝에 위치한 한반도의 영구적인 분단까지 초래했다.

그렇게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쳐서야 독일은 강제로 민주주의문민통제를 도입당하며 더이상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현대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일인 1945년 5월 8일을, 군국주의와 결별한 '새로운 독일'이 만들어진 시점이란 뜻을 담아 '0시(Stunde Null)'라고 일컫는다. 또한 그와 동시에,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추구해 왔던 '정치에 귀속되지 않는 군대'라는 목표를 아예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문민통제의 원리에 따라 군대는 결국 정치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뿌리 깊게 박힌 군국주의적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군국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오늘날 독일 연방군은 '내적 지휘' 철학을 통해 군국주의화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언제까지 억제가 가능할 지는 미지수이다.

일본 제국

일본 제국전체주의가 일본의 무사도, 그리고 일본식 호국불교, 승병 문화와 결합하여 군국주의로 바뀌었다.

일본 제국이 본격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의 일이지만 그 전부터 전조는 보이고 있었다. 통합된 국민국가로서 외세의 위협을 극복해나가고자 충(), 효(), 의()와 같은 사상을 강조하고 기존의 봉건제동의 무사도를 변형하여 천황을 우두머리로 하는 가족국가를 형성하였고, 자연스레 천황의 사족이자 나라의 방패인 군대에게 힘과 명예가 집중되었다. 물론 군대가 존경을 받는 것은 여느 국가에서나 문제 없는 일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일본이 숱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부 자존심이 고양되면서 문제가 심해졌다. 결국 대공황 이후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의 확장으로써 해소하고자 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군대의 색이 짙어졌다.

1930년대 일본은 철저한 병영 사회였고, 군대는 신성화되었으며 민간이 군대를 따라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흘러갔다. 그 결과는 군대를 신성화하여 군대가 사회 전반을 이끌게 되는 일본식 군부 통치 시스템의 성립이었다. 메이지 천황이 하사한 군인칙유등을 근거로 하여 군대는 그 자신들만의 특별한 의미를 같은 신성한 황사(皇師)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민간 정부폭주하는 군대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 일본은 중화민국과의 경제 공영권 형성이 나가리된 상황에서 황도파가 전제 군주정을 내걸고 소요를 일으키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 전 조선 총독까지 암살당하는 등 내부가 혼란했다. 게다가 육군과 해군의 반목도 심했는데 이 상황에서 도조 히데키로 대표되는 통제파가 우위를 점하면서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결국 군부는 정부를 무시한 채 만주에서 화북으로 서서히 침략을 확대하다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세계의 제재로 인한 자원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인 태평양 전쟁을 불러왔다.

대전기에는 전선이 감당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자 최후의 발악으로써 군국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항공대 조종사들은 기적적인 승리를 희망하는 군부에 의해 비행기를 몰고 적함으로 돌진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지상에서는 칼 한자루 쥔 채로 전차에 돌격하라는 식의 극단적인 희생이 높임을 받았다. 종국에는 1억명의 신민 전체가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옥쇄를 외치며 죽창 등으로 민간인들을 무장시켰다. 미국 수뇌부조차 마지막 일본인을 죽일 때 까지 일본 산지 깊은 곳의 요새 하나하나에서 싸워야 하나 진심으로 우려했으나 이는 쇼와 덴노와 온건파 장교들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정규군이 명목상으로는 사라진데다 민주주의문민통제가 도입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다. 정규군의 역할을 대신하는 군사조직인 자위대병영부조리는 현재진행형이고 일본군의 그것이 상당부분 남아있다고 할 수 있으며, 체육계의 군기닛세이가쿠엔[* 80년대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교장이 바뀐 뒤로는 평범한 자사고로 탈바꿈했다.]이나 토츠카 요트 스쿨처럼 군대식으로 교육시키는 시설이 인기를 얻는 등의 잔재가 남아있다. 이러한 패전 후 잔재는 한국대만등 일본의 식민지 출신 국가들의 병영문화에도 일부 영향을 주었다.

사족으로 군국주의 시절에는 남성적이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하여 공문서나 유아 교육용으로 가타카나를 널리 썼다. 반대로 히라가나는 연약한 느낌을 준다고 좋지 않게 보았다. 아울러 어느 학교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린 학생들의 웃통을 강제로 벗게 하여 상반신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로 학교 수업을 듣게 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유는 그래야 강인한 체력을 가져서 용감한 군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도 신념에 따라 군국주의에 항거한 사람은 있었다. 창가학회(창가교육학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1871~1944)와 그 제자 도다 조세이(戸田城聖)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에 따라 신념을 굽히지 않고 군국주의에 반대했다. 따라서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와 천황에 대한 '불경죄'라는 두 가지 명목으로 투옥(1943년 7월 경)되었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투옥 약 1년 4개월 후, 1944년 11월 18일에 옥사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7월 3일에 혼자 병약한 몸으로 출옥한 도다 조세이는 창가교육학회를 '창가학회'라고 이름하였다. 현재도 창가학회가 창설한 공명당은 연립여당으로서 일본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을 주장한다.

대한민국

* 군사화 문서 참조.

대한민국의 군국주의 기조는 대한민국에 있어 당연했다. 1948년 처음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만 해도, 군사력 강화는 미국에 의해 억제되어 있었고,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국가를 방어하는 수준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군국주의 기조는 6.25 전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발발 직전, 94,000명 이었던 국군 총 병력은 3년 만에 약 60만 명으로 증강되었고, 휴전 협정이 맺어진 다음에도 2000년 때까지 병력 감축이 단 한번도 없었으므로 6.25 전쟁의 병력 증강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휴전 이후에도 60만 대군을 유지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은 당시 총 인구가 2,00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해도 언제든 북한의 재침공이 가능한 불안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전체 인구의 3%가 현역 군인이라는 건데, 지금으로 치면 군인이 150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비대해진 군대는 세계 최빈국 수준의 경제에 부담이 되어서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받는다 쳐도,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이 군대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으로 기습 남침을 벌여 생지옥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부분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고, 국군 장교들은 민간 사회보다 선진적인 업무 교육을 모두 마쳤으며 일부는 해외 유학 경험도 제공받은 엘리트 계층이었다. 장교들은 호사를 멀리하고 청빈하게 살았다. 당시의 장교들은 군기가 잘 들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어려우면서도 나라의 몸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봉사를 하고 자발적으로 민간인을 돕는 경우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재정을 블랙홀 같이 소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사실상 유일한 엘리트 계층으로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빨갱이들을 때려잡았다.

군사정부 시절의 장교들은 지금보다 더한 박봉과 열악한 환경에서 군생활을 했어야 했다. 대신 명예와 사회적 존중이 뒤따랐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 국군의 장교들은 고등교육을 이미 받았거나 받고 있는 계층이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장교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것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4.19로 집권한 민주당 장면 정부가 (미국의 제안을 수용해서) 20만 병력 감축을 추진하자, 군부의 격렬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5.16 군사 혁명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다. 박정희 정부는 거듭되는 북한의 대남 도발 때문에 군병력을 늘려서 한때는 70만 명을 넘어가게 된다.

박정희 정부는 군사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군국주의적인 기조는 매우 강해진다. 한국의 군국주의가 절정에 이른 때는 김신조 사건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반공 정서가 극에 달했을 때이다. 한국의 예비군 제도가 크게 강화되고 교련이 고등학교에서 의무과목이 되는 등, 병영국가에 가까운 수준으로 군국주의화되었다. 게다가 반공 정서에 맞물린 냉전적 명분과 경제·외교적 목적으로 같은 분단 국가였던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참전국들 중 가장 뛰어난 전과를 거두고 서독과 미국에게 얻어낸 막대한 원조와 특수를 누리면서 이는 더더욱 강화되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은 서독과 미국을 뒷배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제체제의 틀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으나 북한의 경제력, 군사력이 아직은 남한을 상회하고 군사도발이 매우 심각한 시기였기 때문에 한 나라에 자유민주주의와 이에 상반되는 군국주의, 병영주의가 당연히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6.29 선언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징병제예비군 제도가 유지된다. 대한민국은 분단된 상태이고 주변 국가들의 군사적인 압박이라는 영향으로 인해 군국주의 기조가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병영화 측면에서도 북한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모든 나이대의 남성의 90% 이상이 거부권 없이 징집되고, 그 기간 또한 18개월에서 36개월에 이를 정도로 매우 긴데 이는 이스라엘 등 적대 세력이 많고 주변에 극단주의적인 적들까지 많은 상태나, 전쟁중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극단적인 징집률이다. 따라서 사회에서도 제도상으로 군국주의가 드러나는 경우는 민주정부 이후로 많이 없어졌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서열)나 직장 문화 등 많은 곳에서 군대식 습관이 남아 있다.

이스라엘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언론들로부터 병영국가(Garrison State)라고 까이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도 징병된다. 한국과 유사하게 사회 분위기 전반이 군사화 현상으로 인해 몹시 보수적이고 또한 군국주의적이다.

이스라엘에도 군국주의와 군사주의 풍토가 정착되었다. 당연히 군국주의와 군사주의가 전쟁에 효율적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안보 환경은 한국 못지 않거나 좀 더 심각한 극악한 수준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국방에 많은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군국주의 국가나 병영국가는 국가의 최우선사항이 군대 유지이기 때문에 경찰도 군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은 무슬림 병역 면제, 결혼으로 인한 병역 면제, 양심적 병역거부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보다 징병제를 엄청 빡빡하게 시행하는 나라는 아니다. 예를 들어 바 라파엘리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하여 병역 면제를 따낸 후에 바로 이혼했다.

관련 인물

관련 문서

* 징병제 - 군국주의 체제에 해당되는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징병제를 시행하는데 체제 유지와 침략 전쟁을 목적으로 징병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군국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들도 징병제를 시행하는데 군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체제 유지와 침략 전쟁을 목적으로 징병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 독재자 - 군국주의 국가의 국가 수반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수련회
* 소년병 - UN 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어린이군인으로 징발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걸 위반해가면서까지 국력을 증강시키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병력으로 징발하려는 행위는 명백한 군국주의 국가들도 하지 않는 행위이지만, 패망 직전의 국가들은 가끔 하는 경우도 있다.
* 스파르타
* 스파르타식 교육
* 우생학 - 우생학이 유행한 국가들이 전부 군국주의 체제는 아닌데 군국주의 체제가 아닌 경우는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기 전인데다가 인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유행했지만 독일 제3제국의 대두와 그들에 의해 드러난 우생학의 도덕성 논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우생학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조직적으로 금기시하려는 극좌 세력들의 공작에 노출된 추세인 반면, 군국주의 국가에 해당되는 스파르타와 독일 제3제국 등처럼 그들 기준으로 부적합하다고 간주되는 장애인들이나 신체가 허약한 자들을 인위적으로 도태당하게 만드는 일을 국가 차원에서 실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생학과 군국주의 국가들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만 역사가 깊었던 스파르타의 경우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허약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도태당하게 한 반면 독일 제3제국의 경우 집권 기간이 짧았으므로 선천적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후천적 장애인들까지 도태당하게 했다는 점에는 차이가 있겠다. 일본에 존재했던 우생보호법이 장애인들이 발견되는 족족 강제불임수술을 통해 그들의 생식을 막았던 것도 우생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우생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군국주의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은 것과도 관련 있다. 물론 제국주의 시절부터 2차세계대전까지의 영국에도 우생학이 크게 유행했고 흑인들을 노예화시킨 적이 있으며 미국도 우생학에 따라 단종법을 통해 열등한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들을 성불구자로 만든 적이 있으므로 우생학 정책 시행 기간으로 따지면 나치 독일보다도 영국과 미국이 훨씬 길다.
* 국수주의
* 전체주의
* 전군 간부화
* 파시즘
* 나치즘
* 식민주의
* 제국주의
* 군사독재
* 군사 정권
* 세계 정책
* 병영국가
* 군사화
* 라코노필리아
* 학도병
* 선군정치


군국주의 논란이 있는 국가들

군국주의 논란이 있는 국가들까지 작성한다.

스파르타-어린 아이들까지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침략 경제를 갖췄다. 그리스 패권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전했다.

고구려-고구려 땅은 농사에 부적절하기에 수탈, 침략 경제가 고구려에게 중요했고, 자신이 침략할 나라의 농사가 잘되라고 제사까지 지냈을 정도다. 고구려는 한반도 역사에서 유일한 군국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제국-끈질긴 훈련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침략 경제를 갖췄으며 수백년간 세계의 패권을 유지했다. 다른 인종들을 노예로 부렸다.

몽골 제국-몽골 제국은 침략 전쟁을 통해 돌아갔으며, 몽골의 국민 전체가 기마병이었기에 모두가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거나 약탈하러 원정을 갈 수 있었다.

대영제국-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식민제국과 함께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로 불렸으며 전 세계를 호령하는 광대한 식민제국으로 번성하였다. 독일 제3제국에 의해 패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장군 출신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위대한 전술지휘력을 근간으로 건설된 프랑스 제1제국은 그의 프랑스 대육군을 당대 최대 규모이자 당대 최강으로 만들어주었으며 프랑스를 유럽의 맹주 국가이자 강대국으로 만들어주었다. 나폴레옹 법전은 현대의 법에도 중요한 틀이 되고 있다.

독일 제2제국-강력한 군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최강의 육군력을 통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독일 제3제국-마찬가지로 강력한 군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통해 부당한 베르사유 조약을 정상화시켰다. 청소년들에게 군기를 교육하고 국방 정신이 뛰어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학생들과 국민들을 양성해내기 위해 히틀러유겐트를 국가적인 교육 과정에 포함시켰다.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통에 따라 기본적으로 여성을 군대에 입대시키지는 않았다. 1945년에서야 여성을 포함한 전국민을 무장시키기 위해 국민돌격대 계획을 세웠다. 단, 징병된 여성은 대부분 의무병, 대공포병등의 후방 지원 임무에 투입되었고 시가전을 제외하면 최전방에서 싸우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본 제국-한반도, 만주보다 더 넓은 식민지를 획득하기 위해 일본 군부가 아시아 전체를 침공하였고, 2차대전 말기엔 학생, 여성들까지 군인으로 동원하였으며 1억 총옥쇄를 지시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핀란드를 침공해 겨울 전쟁, 계속 전쟁을 일으켰으며, 폴란드까지 독일과 함께 침공해 양분하고 한반도에 난입해 분단을 일으킨다음 6.25 전쟁을 일으키고 냉전까지 시작하며 바르샤바 조약 기구까지 창설하였으며, 청소년들을 세뇌하기 위해 피오네르를 운영하였고, 미성년자, 여성까지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에 동원했다.

북한 - (1990년대 ~ ) 빠르면 1960년대부터 보는 견해도 있다. 당장 1960년대 4대 군사노선을 발표하고 주체사상에 입각한 유일적 령도체계(김일성 신격화)를 확립했다. 이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는 선군정치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군국주의로 분류할 수도 있다. 북한은 선군정치로 인해 대한민국을 침공하기 위해 경제가 무너져도 핵개발을 하고 있으며, 남성 복무 10년, 여성 복무 8년이라는 세계 최악의 징병제를 시행중인데다 국가 예산의 40퍼센트를 군대에 쓰는 등의 행태도 보인다. 물론 북중러와 소련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근본부터 전통적인 군국주의인 보수주의나 권위주의 근본이 아니라 근본없는 공산주의 국가들이기 때문에 이런 공산주의 국가들이 공산독재정권을 완성하고 뒤늦게 더 강하고 효율적인 군국주의를 따라해본다고 해도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하다 가랭이 찢어지는 격일 뿐이다.

대한민국-침략을 위해 군인을 모집하는게 절대 아니기에 논란이 있지만, 대한민국 남성의 98퍼센트는 노모를 모셔야 하든,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장애 또는 지능적 문제가 있어도 현역 판정을 받고 군대에 끌려가며 이 수치는 일본 제국의 전쟁 말기 징집율, 독일 제3제국국민돌격대 징집율, 소련군스탈린그라드 전투당시 징집율을 극도로 상회한다. 사실 이 수치는 1년 6개월로 극도로 단축된 육군의 복무 기간, 저출산, 포퓰리즘적 페미니즘으로 인한 여성징병 거부등의 수많은 원인이 겹쳐저 병력 부족에 국방부가 시달리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했으며, 사회 분위기가 군국주의적이라고 평가된다.

이탈리아 왕국-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을 결성했으며, 로마 제국 또는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목표로 아프리카를 침공했다.

중화인민공화국-6.25 전쟁에서 북한군을 지원하거나 월맹군을 지원하고, 인도와 전쟁을 벌이거나 타이완을 포격하고 센카쿠 열도를 위협하고 필리핀을 위협하며 중국은 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를 시행중이다. 또한 중국은 동북공정서북공정같은 문화 제국주의 정책 또한 매우 열심히 시행하고 있으며, 한국, 일본, 인도, 베트남등의 국가들이 이 문화공정에 큰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 연방 공화국-체첸 전쟁, 조지아 침공,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으며, 아이들을 상대로 선전을 하기 위해 선전용 장난감 병력수송트럭, 장난감 탱크를 판매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같이 보기

제국주의

파시즘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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